개인적으로 장르소설을 좋아함에도 평소 대체역사소설이라 하면 다소 꺼려지고는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대체역사소설은 주로 대규모의 군부대 전체가 이동하거나 어마어마한 능력과 지식을 가진 히어로가 과거로 건너가서는 단순히 역사를 바꾸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과거 서구 식민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식민지를 경영하거나 이웃국가를 병침하는 조선/한국을 그려왔기 때문이죠. 물론 대체역사소설을 읽으며 현실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개와 서사에 있어 일말의 개연성과 논리성은 있어야 읽는 사람도 몰입하여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제가 읽어온 많은 대체역사소설은 단순히 엄청난 능력을 가진 개인 혹은 집단에 의존하여 서사를 쉽게 구성한다는 점에서 개연성 등이 결여되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식민 지배를 겪으며 다양한 역사의 굴곡을 겪어온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와 민족을 침략하는 내용에 환호를 보내는 모습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볼 때 적절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명의 세기를 처음 읽었을 때 제가 받은 감동은 여느 소설에서 받은 감동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조한민은 작품에서 사학도 출신입니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1년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가진 당시 국제정세 관련 지식을 총동원하여 망할 수밖에 없던 나라를 살려내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만약 작가가 기존의 대체역사물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식민제국으로 조선을 발전시키고 싶었다면 1901년이 아니라 19세기 혹은 그 이전으로 과학지식을 겸비한 천재를 보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선/대한제국이 최악, 즉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902년으로 소위 “머릿속에 먹물만 든” 문돌이를 보냈습니다. 게임으로 치면 난이도 극상을 찍고 가장 약한 캐릭터를 선택한 셈입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소설은 재미가 없을 수 없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하지?”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지만 작가의 순발력과 재치, 무엇보다도 해박한 역사, 정치, 경제 관련 지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마치 예능으로 대학 교양강의를 듣는 느낌을 자아내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여명의 세기에 감탄했던 것은 작가가 그린 이상입니다. 작가가 바라는 나라는 타국을 병침하여 식민지를 가진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인 조한민은 끊임없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와 서구 우월주의 등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던 인종주의, 성차별, 계급모순 등에 대해서도 작가는 조한민의 입을 빌려 가감 없이 비판하고 있는 장면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러일전쟁 중 함경도 등지에서 일본군 포로를 모아놓고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해 한민이 일갈하는 장면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감명 깊은 부분입니다. 그동안 어떤 작품이 이런 이상을 보여주었나요. 혹자는 유약한 주인공이 만든 허황된 이상향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해도 결국은 문학일진대, 문학을 통해 우리의 삶과 세상을 돌아본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비극으로 점철되었던 지난 우리 역사를 만들어온 모든 억압과 부정의에 반대하여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한민의, 그리고 작가의 노력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전히 연재 중이라 한민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주목됩니다. 이제 막 1910년을 넘었으니 곧 1차 대전의 서막입니다. 과거 일본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을 이용해 대한제국도 열강으로 거듭날까요? 아니면 역사의 흐름을 바꿔 작가가 바라는 이상향을 향해 대한제국과 조한민은 끊임없이 달려갈까요? 작가의 집필을 응원합니다!
p.s. 지금까지 타 플랫폼으로만 봤는데 문피아 오니까 신세계네요ㅎㅎ 여기서 쭉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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