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장르문학에 손을 댄 것이 2000년대 후반쯤의 일입니다. 아마 그 때쯤 장르문학은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카오스 등의 클리셰가 유행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던전 로드는 그 때의 정서를 되짚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능력의 설정, 그리고 천사와 악마가 지구를 전장으로 하여 싸우고 있다는 점이 제게 그 때 느꼈던 감성을 그대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이 글을 간단히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악마들이 지옥의 문을 열고 인세로 기어나옵니다.
천사들은 인류 중에 용사들을 뽑아 자신들의 힘을 쓸 수 있게 합니다.
전쟁 끝에 악마가 승리하였고, 주인공 윤하빈은 마왕의 손에 죽어 과거로 회귀합니다.
여기까지는 종종 보이는 레이드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설정입니다. 회귀하는 과정 속에 주인공이 악마, 그리고 천사와 융합된다는 점이 좀 특이하긴 합니다만, 이 또한 어떻게 생각해보면 단순한 파워 업 특전 정도로 여길 수 있겠죠.
던전 로드가 다른 레이드물, 던전물과 차별화되는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융합된 악마의 힘을 빌어, 그 악마가 가졌던 던전을 운영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지물과 던전물이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죠.
주인공은 던전을 운영하며 과거에 있었던 인류의 실수, 혹은 패인 등을 제거해나갑니다. 예를 들자면 최근화에 전개된 악의 꽃 편이 있겠습니다. 악마를 숭배하며 인류를 배신한 변절자들이 있습니다. 악마 숭배자라 칭해지는 이들입니다.
주인공은 이들이 같은 인류라는 것에 잠시 망설이긴 합니다만, 결국 단죄하게 되죠.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만, 매우 거친 방법이고 보기에 따라 악하게까지 느껴지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통쾌한 방식이기도 하죠. 지지부진하게 고민하고 질질 끄는 면 없이 바로 빠른 전개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작가님이 호흡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글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 글의 초입부가 그랬습니다. 특별한 색감을 갖지 못한 전개라 생각했고, 그냥 관성에 따라서 보고 있었죠. 하지만 한 10화쯤 가기도 전에 제 태도는 바뀌었습니다. 몰입하게 되었고, 재미를 느꼈죠. 저는 그 비결이 준수한 필력과 세심한 설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보다는 세계관이 매력적입니다. 정말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 것 같아, 배경이 꿈틀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느낀 이 기분을 여러분들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추천글을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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