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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블레이드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6.01.13 19:27
조회
4,246
표지

유료웹소설 > 연재 > 판타지, 무협

유료 완결

후두마루
연재수 :
477 회
조회수 :
1,638,288
추천수 :
67,993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눈이 가는 작품은 아닙니다. 최소한 제가 이 소설을 처음 추천 받았을 때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저는 무겁고 어두운 소설을 좋아하지만 드렁큰 블레이드란 제목은 뭔가 가볍고 라이트하게 느껴졌고, 그래도 추천을 받았으니 예의상 대강 흝어본 앞부분도 딱히 저를 크게 자극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상황의 맥락을 알고 있을리 만무하니 비장한 도입부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고, 그 이후 이어진 이계로의 소환은 골수까지 우려먹혀진 클리셰라 따분했습니다. 제가 만약 그때 고통스러울정도로 지루해하고 있지 않았다면 저는 거기서 정독을 중단했을겁니다. 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저는 지루함에 정말 질려 있는 상태였고, 달리 할만한게 없는 저는 이 글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진 내용은 저를 정말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다면적인 캐릭터, 복잡하게 얽혀있는 플롯, 살벌한 음모와 사건의 극적인 전개까지. 스포일러를 자제하기 위해 글의 자세한 내용까지 말하진 않겠지만, 뚜껑을 열자 튀어나온 내용물은 정말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이였습니다. 한국 장르소설에서 처음 이루어진 시도라 말할 순 없지만, 매우 오랜만에 이루어진 시도였죠. 맨날 똑같은 내용만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소설들에 질리신 분이 있으시다면, 드렁큰 블레이드를 한번 읽어보시라 추천해보고 싶습니다.


다만, 세가지 불만스러운 점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우선, 서양검술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이 소설에도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풋워크부터 얘기해보죠. 작가님은 제국의 검술은 풋워크를 중시하지 않으신다 말씀하셨는데, 물론 그 세계는 작가님이 만드신 곳이고 작기님이 원하시는대로 설정을 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현실세계와 흡사하게 돌아가는 곳이라면 그 사람들도 풋워크를 중시할겁니다.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무술은 풋워크를 매우 강조하니까요. 갑주를 차려입은 기사를 상대하던 평복을 차려입은 적수를 상대하던 그건 변하지 않고, 몬스터가 상대라해서 딱히 예외가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몬스터가 상대라해서 거리 조절, 타이밍 선점, 무게중심 배분이 갑자기 안 중요해지는건 아니니까요.


그 다음으론 검술이 있겠네요. 갑주의 발달이 검술의 퇴보를 불러일으키진 않습니다. 전쟁터에서만 검술이 쓰이는 것은 아니고, 전쟁터의 모든 군인들이 온몸을 판갑으로 칭칭 두르고 다니는 것 역시 아니니까요. 서양검술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꾸준히 발달을 이어갔고, 근세 초기에도 여전히 사용되었습니다. 평복을 입은 자를 상대할 때 쓰는 검술과 갑주를 입은 자를 상대할 때 쓰는 검술에 차이가 생길 뿐이죠. 몬스터를 상대하며 검술이 발달했다해서 사람들과 싸우지 않는건 절대 아닐테니 그냥 몬스터를 상대할 때 쓰이는 검술이 따로 발달했다는게 가장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서양검술이라해서 투박하고 무식하단건 일종의 편견입니다. 오히려 매뉴얼을 흝어보면 사람들이 짱구 굴려가며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흔적이 쉽게 눈에 띄입니다. 평복검술 기법들은 매우 효율적이고 간결하며 똑똑하고 날렵하죠. 자연선택 이론이 실제 현실에 적용되서 튀어나온 결과물이니까요. 실전에서 먹히지 않는 방식들은 말 그대로 도태되어 대가 끊겼습니다. 수련자들이 다 죽었으니까요. 검술을 배우지 않고 무식하게 달려들거나 힘만 믿고 위력을 최대화한답시고 동작을 크게 해 칼을 휘두르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죽었습니다. 지면 졌으니 죽고 이기면 상대랑 같이 죽습니다.


아, 물론 마법이 발달하긴 했죠. 그런데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거랑 무술 수련자들이 다 멍청해지는거랑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로는, 떡밥의 부족이 불만스럽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긴 한데, 이야기를 아주 깊이있게까지 파고들기에는 떡밥이 좀 부족합니다. 1부의 가장 큰 떡밥은 주인공의 행보, 멜토우가의 사정, 조력자의 정체였고 1부 시점에선 아직까지 크게 두각되지 않은 떡밥으론 교단의 계획, 제국의 내부사정, 적룡대공/콴의 야망, 추영의 자식들 + 기타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떡밥들중 그 어느것도 깊이있게 파고들며 무언가를 예측해본다기보단 그냥 작가님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대로 끌려간다란 느낌이 강했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경우에는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걸 통해 독자들이 파고들만한 떡밥을 수없이 던지는데, 개인적으론 비교가 되며 좀 아쉬워졌습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죠.


마지막 세번째로는 세계의 묘사에 있어 깊이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과거의 사학관은 몇몇 영웅과 중요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 서사시적 성향이 강했다면, 현대의 사학관은 초점을 그것으로부터 돌려 대신 다른 곳에 맞추고 있습니다. 피지배자들이 지배자의 정책과 결정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고, 어떻게 그들이 국내/국제의 정세에 있어 어떻게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기후변화, 지진, 전염병, 무역 같은 같은 거시적 사건들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는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가. 정복자는 어떻게 피정복자를 지배했고 피정복자는 어떻게 정복자와 공존했는가. 즉, 왕과 군주들로부터 그 아래의 귀족, 성직자, 상인, 시민 등의 나머지 99%에게 시선을 돌리고, 여러 집단들이 내린 결정과 그 후 맞이한 결정들을 좀 더 다각적이고 깊이있게 분석하는거죠. 


예를 들어 얘기해보겠습니다. 소아르메니아라고도 불리는 킬리키아 땅에 자리잡았던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은 레오 1세라는 군주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레오 1세는 어려서부터 안티옥 공작 보에몽과 뿌리깊은 악연을 가지고 있었고, 레오 1세의 성장은 안티옥 공령에 대한 투쟁과 여러모로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레오 1세가 3차 십자군의 후폭풍이 잠잠해지고나서 바로 성경의 도시 안티옥을 탐냈다는건 그리 놀랄만한 사실이 아닙니다. 레오 1세는 안티옥 공작 보에몽을 포로로 잡아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강탈했고, 군대를 이끌고가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원래라면 여기서 해피엔딩이 이루어져야할텐데, 현실은 영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죠. 안티옥의 시민들은 레오 1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성직자/귀족들이 이끌은 시민봉기는 레오 1세의 군대를 도시로부터 몰아냈고, 그 이후에 레오 1세는 여러차례 다시 도시를 얻으려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며 고배를 삼켜야 했습니다. 안티옥 공령과 아르메니아 왕국 사이의 분쟁에서 안티옥 시민들은 아주 분명히 실재하는 플레이어였습니다. 분쟁은 단순히 군주와 군주간의 서사적인 충돌이 아니였다는거죠.


12세기 중후반의 콘스탄티노플도 매우 흥미로운 예입니다. 이곳에서는 시민들의 손에 수만명의 피가 흐른 정치적 학살이 일어났거든요.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맥락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탈리아인 상인들에게 느끼는 경제적인 위협감, 로마인들의 제국이 더 이상 유일한 그리스도의 제국이 아니란 박탈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서유럽인들에 대한 정치적 위협감,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낙원을 이방인들이 전혀 특별케 여기지 않는다는데 대한 문화적 충격감. 그런 복잡한 요인들은 12세기 중후반 비잔틴 제국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지식인/상인/귀족/시민들은 극단적인 편집증에 빠져 도시에 머물던 라틴인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것은 비잔틴 - 서유럽 관계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쳤죠. 비잔틴 제국의 미래와 정체성에도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요.


13세기 테살로니키도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이곳에선 중세판 코뮌 봉기가 일어났거든요... 일반 부두 노동자나 장인 같은 사람들도 참여하며 시민들이 도시를 운영했고,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코뮌이 매우 놀랄만한 기간동안 성공적으로 유지됬습니다. 그것은 당시 제국의 시민사회가 얼마나 발달되어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중 하나입니다.


제가 여러 예를 들어 얘기했듯, 추기경이니 공작이니 왕이니 황제니 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일반 시민, 지식인, 하급 귀족/성직자 들도 복잡한 국제정세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며 참여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작중에서 거의 보여지지 않았단 점은 제법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매우 즐겁고 중세 후기/르네상스 시대의 살벌한 느낌이 물씬 풍겨나오는 멋진 판타지 소설이였습니다. 2부도 계속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Comment ' 21

  • 작성자
    Lv.94 맛있는새우
    작성일
    16.01.22 01:32
    No. 21

    중학교때부터 27살 현재까지 읽은 작품들 중 적어도 20위 안에는 들어올 작품
    최근 1개월간 읽은 작품 중에선 3위안에는 들어올 작품.
    안 읽으면... 작가님도 손해지만 독자들도 손해일걸요???? 읽으세요. 헤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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