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자하
작품명 : 그 마법사의 사정
출판사 : 로크미디어
많은 분들이 마공서로 손꼽는 남궁세가소공자를 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가 워낙 그런 귀환류의 설정을 좋아라한 점도 있었지만 신인 답지 않은 필력과 글 사이 사이로 비춰지는 일종의 광기와 같은 감정묘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더랬습니다. 특히 고노무 깜찍한 괴물 소공자가 '난 아직 헬파이어같은 대량 살상 마법은 쓰지도 않았다구..'라고 중얼거리는 부분에서는 전율마저 느꼈었죠. 물론 많은 독자들이 지적하는 BL코드라던가 근친의 향기마저 풍기는 질척질척한 사내들의 끈끈한 정(?)에 경약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워낙 스토리 전개가 신선하고 탁월해서 그런 점은 그러려니하고 대충 넘겼습니다. 그 후로 자하님의 작품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습니다. 이번에 나온 신작 '그 마법사의 사정'을 포함해서요. 그렇게 쭈욱~ 보다보니 자연스레 자하님만의 스타일이랄까.. 특징이라고 할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강점: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시도
자하님이 여태까지 써온 작품들의 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분 정말 만만치 않은 분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장르가 조금씩 바뀝니다. 그런데 더 미치고 환장하겠는게 단순히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재를 가지고 슬쩍 비틀어 놓는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습니다.
남궁세가소공자: 이 작품도 따지고 들어가면 차원이동판타지무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지요. 보통 차원이동물이라하면 한쪽 세계에서 다른 쪽 세계로 넘어가서 고생 좀 하면서 기연같은 거 얻어가며 주인공이 용되는 그런 내용인데.. 이 작품에서는 무림에서 판타지로, 판타지에서 다시 무림으로 돌아오는 것도 모자라 그 왔다갔다하는 동안에 내용은 다짤라먹고 무림으로 귀환하는데서 내용이 시작됩니다. 제가 여기서 단번에 필이 꽂혔죠. 구질구질하게 주인공이 강해져가는 그 지긋지긋한 반복재생을 지켜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천우반생기: 세계관은 무협이나 그 실질은 체험!! '평범한' 삶의 현장 - 조폭갱생물에 가깝습니다. 무림의 킹왕짱 주인공이 무려 '은거'하면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팔불출 아빠로 변하는 모습이 눈물 겹습니다.
파락호무림: 역시 무협이긴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파락호'랍니다. 요즘말로 하면 반백수 + 양아치에 가까운 개념이죠. 보통 주막같은데서 무림고수한테 깝치다가 개털리는 역할을 많이 하는데.. 여기서는 지가 무림고수를 털고 다닙니다.
테라의주인: 일종의 전생물 + 차원이동판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평범한 전생물은 아니죠. 차원이동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혼만 쏙~ 빠져나와서 판타지 세계에 정착합니다.
비인비검: 이것도 전생물 + 차원이동판타지입니다만... 이번에는 주인공이 검입니다. 이제는 사람도 아니고 검이 주인공랍니다. 파락호는 그래도 사람이기는 했지... 심지어 판타지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마검이라 나름 뼈대있는 검이랄까요... 하여간 그 검이 무림으로 와서 사람도 되고 그럽니다..
마도병기 세기언: 기갑물입니다. 배경은 SF가 아니라 판타지지만 그래도 기갑물입니다. 거인들이 막 나와서 칼싸움도 하고 레이저도 쏘고 그럽니다. 완전 점입가경입니다.
그 마법사의 사정: 게임판타집니다. 자하님은 결국 게임판타지에도 손을 대셨습니다. 당연히 그냥 단순한 게임판타지일리가 없지요. 사람이 게임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게임 캐릭터가 사람 세상으로 나옵니다. 이건 뭐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도 아니고..
무협, 판타지, 기갑물, 게임판타지, 차원이동 등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되 항상 기존의 식상한 소재에서 벗어나는 자하님만의 신선한 발상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매번 어쩜 그렇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약점: 변하지 않는 주인공
하지만 자하님의 작품세계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이죠. 자하님 소설의 주인공은 항상 극단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하나같이 '우리 편 최고, 나머지는 상관없어' 내지는 '내 사람 건드리면 다 죽인다'라는 일종의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편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에는 남궁세가의 소공자가 되었건, 공작가문의 후계자가 되었건, 얼떨결에 사람 몸 차지한 검이 되었건 예외가 없습니다.
남궁세가 소공자 이후로는 비교적 감정의 폭주를 자제하시는 듯 합니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울타리 안 사람들에게는 부처님급의 관대함을 보이면서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가차없는 냉혹함을 발휘합니다. 물론 여기서의 관대함은 무조건 따뜻하게 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제 할일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고 챙겨주고 뭐 그런다는 뜻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주인공은 필수적으로 똑부러지고 제 앞가림 잘하고 능력도 출중하고 의지도 굳건한 그런 녀석들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넘들은 처음 한두번 볼 때는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계속보다 보면 그놈이 그놈같고, 이놈이 저놈같고.. 그렇게 무감각해진다는 겁니다. 너무 일관성이 있는 나머지 얼마보지도 않고서도 주인공의 행동패턴이 예측이 된달까요..
양과같이 똑똑한 놈이 있으면, 곽정같이 우직한 놈도 있고, 위소보같이 입만 살은 놈도 있으면 좋을텐데.. 다들 하나같이 과묵하고 철통같은 의지를 지닌 싸나이니.. 각자의 작품에서는 멋들어지게 활약하지만 전체 작품들을 놓고 보면 다소 개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그것에 대처하는 캐릭터가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똑똑한 놈인지 멍청한 놈인지에 따라서 여러 개의 분기, 여러 개의 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자하님의 작품세계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항상 새로운 장르와 소재로 찾아오는 자하님은 필명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몇 안되는 작가입니다. 이번에 나온 '그 마법사의 사정'도 톡톡 튀는 소재에 현대물이라 더 관심이 갑니다. 앞으로 자하님의 건필을 기대하면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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