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잠없는 밤의 요요네 처음 인사드립니다.
좋아하는 무협소설들을 읽으면서 가지게 된 느낌으로 제 나름대로
작가들의 인상을 그려 보았습니다.
터무니 없다고 느끼더라도 그냥 한 독자의 오롯한 느낌이라 이해해 주시길.
1. 풍종호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그의 글은 그 시기 혹은 그 국면에서 늘 산뜻한 재료를 갖고 출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소설에 적용함에 있어 첫 시작의 신선함에 비해 뒤로
갈수록 단조로와 지거나(경혼기), 억지스런 마무리(광혼록)를 하게된다.
개인적으로는 광혼록의 1부가 당시에는 너무 인상적이어서 2부가 나왔을 때
(1부도 소장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보에 가서 2부 3권을 구입해서
집에 날아와 펼치고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견디기 힘들었었다는.
아이디어를, 그 뛰어난 재능을 작품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준비, 인내, 호흡
들을 왜 갖추지 않았나, 못했나가 아니고 왜 안했나고 몇번이나 물어보고픈.
완성된 시놉시스없이 출발시킨 글이 수렁에 빠지자 억지로 질질 끌어내 새운
듯한.
2. 설봉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설봉의 독왕유고가 나왔을 때 읽고는 구매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판단되어
사서 서고에 꽂아 놓은 이후엔 이상하게 더이상 손이 가진 않더군
애들이랑 놀아주기 보다 수십번도 더본 무협소설을 또 잡고 있다고 주먹매섭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마나님의 위협과 실제 실력행사의 와중에도 정신을 못차리는
서치(書痴)인데도 말이다.
(구매해서 손이 안가고 있는 무협소설이 그외에도 많지만 설봉의 것은 하찮은 게
아니란 말이다)
그 이후로 설봉의 다른 책들도 읽기는 했지만 소장하고 싶은 욕망을 일지 않기에
왜 그럴가 자문해 보다가
혹 설봉은 자기 머리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걸 토해내는 데 진력하느라 작품의
완성도를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재와 재료에 집착한다는 느낌도요.
3. 유사하는 꿈꾸는 소녀 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작가는 다섯 손가락 겨우 넘을까 하는데 유사하는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꿈속에서 빠져 나오기 싫어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몽롱하게 계속
수라이환경 하나에 집착하고 있는데 그 집착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 꿈속에서 만나는 온갓 군상들에 애정을 주고 같이 놀면서 영원히 지내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꿈이 깼는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무협계를 떠난 것이
아닌지요
나는 수라제일마에 대한 그녀의 약속을 여전히 꿈결처럼 기억하고 현실속에서
목매이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는 목마를 타고 떠나버렸죠,
나는 방울소리 대신 반인기, 추혼유기 광풍기를 뒤적이며 그녀를 기다립니다
4. 임준욱은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현실세계의 비정함과 부조리함이나 무협세계의 마쵸적 피비린내에 대해 외면하
려는 듯한 모습에서 저는 임준욱이라는 사람이 생래적으로 겁이 많지 않나
느낍니다.
그는 환상을 그리고 그 안에서 희열을 느끼고 싶어하지만 그 환상이 히로뽕에
의한 마취 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 안에서의 엑스타시 혹은 카타르시스
가 되기를 절실히 아주 절실히 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데 그러한 임준욱이 저는 아주 좋습니다. 촌검무인은 저의 많지 않는 경전
중의 하나죠
5. 한상운은 영민한 사람이다
비정강호를 보기전까지 한상운은 내게 재치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비정강호를 보면서 나는 한상운을 영민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재치있는 사람이란 사람보다 재치를 먼저 생각케 하지만
영민한 사람이란 사람 그자체를 생각케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과거 그는 때로는 그 재치를 번뜩이며, 때로는 헛되이 이죽거리느라 낭비하며,
때로는 그냥 게으른 시체가 되어 살았지만 이제는 돌아와 내앞에서 영민한
사람이 되었다.
5. 진산은 현실적 여자이다
진산은 얄미운 사람이다.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애증이 교차한다.
그녀가 떠난 자리의 온기가 이미 식어 싸늘해 졌건만 정과검, 대사형을 들추며
그 자리가 아직 식지 않았다고, 나는 아직 그녀를 보내지 않았다고 독백한다.
그녀가 딴 남자랑, 귀에 귀걸이를 하고 댄디한 캐주얼을 입고 요즈음 한참 폼을
낸다는 "에로스 소설"이라는 젊은 놈이랑 연애한더라고 아랫집 젊은 아낙이
우물가에서 수군거리는 소릴 귓결로 들었지만 나는 그 젊은 놈과 놀아나는
진산을 찾아가진 않는다.
젊은 놈의 매력이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턱없는 오기하나로 그녀가
제풀에 지쳐 돌아올 바라지만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은 사실 진산이 돌아올
탕녀가 아니라 지극히 계산이 빠르고 현실적인 신여성이라 돈 없고 밤일도 못하고
나이 마저 꺽어져 홀애비 냄새나는 무협이란 늙은 놈의 품에 다시 안기지는 않으
리라는, 한번쯤은 지나치며 애교스런 눈짓을 할 수는 있겠지만 헤벌쭉 기뻐할
홀애비와 그 이웃들의 기대를 또 무참히 짓밟고 스쳐가리라는 우울한 상상을
해본다.
그녀는 이자리에 앉아 있었을 때도 매정하리 만치 딱 제 손에 있는 재료로만 밥을
지어 상에 올렸다. 그 밥을 먹어줄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최소의 노력으로 순전히 자기 만족을 위해 상을 차렸다.
홀애비에 딸린 식구중의 하나인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지덕지하게 그 상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먹었었다. 상을 차리는 그 솜씨, 그 맵시는 다른 사람 특히
남정네들의 투박한 그 것과는 차원이 달랐기에.
나는 그녀를 보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자리를 만지며 하는 회한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그리고 그녀가 차렸던 밥상을 이젠 잊고 싶다, 잊을 수만 있다면.
6. 좌백은 장인(匠人)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거지를 묘사하길 거지는 운수불길하기 전에 이미 인간으로서
먼저 망가진 부류이다 라고 표현 했는데 그말을 그대로 돌려주겠다
좌백은 작가이전에 이미 장인이었다. 무협작가가 됨으로써 그는 그가 앉을
자리와 그가 만질 재료를 만났을 뿐이다.
그는 온전히 그의 기질로 작품을 만들 뿐이다. 때로는 머리로 때로는 몸으로, 또
때로는 열정으로 때로는 분노로. 조을증 처럼 희열과 침잠이 교차하는 것은
장인의 숙명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작품을 생각하고 손에서 놓지 않는 것 또한 장인의 숙명이다.
만들어진 작품이 남의 손에 넘어가면 장인은 이내 그걸 까마득히 잊어버리곤
또 다른 재료 속에서 만날 그만의 형상을 찾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밤이나
낮이나
나는 그를 질투한다, 노골적으로.
p.s 백야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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