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尙書) 라고도 불리우지만 아쉽게도 작자는 미상입니다. 하지만 이후 서경의 분산된 각 편질을 공자가 정리하여 책본으로 낸 것으로 유명하다지요? 현재는 오십하고 여덟 편의 고문, 금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산은 백 하고 삼십 이 편에 이르렀다고 전해만 지고 있다지요? 정확히 몇 편으로 엮였는지는 건성건성 책을 보는 전 모릅니다 헌데 며느리는 알까요?)
보통 서경은 중국 고대국가들의 정치문서를 하나로 편집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어가 많고, 문서의 특성상 성어를 많이 사용하였다지요? 게다가 글자가 생각보다 잘못되고 빠진 부분도 많았다네요, 이 대목에선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그 내용들의 원어 자체를 수용해서는 안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나라가 망하는 기조가 되기도 했었다지요 전서의 한 끝 차이 때문에요~
그래도 서경은 동양 정치사상을 가늠하는 그 원류로서는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때 서경을 상서라고 부르면서 대접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달은 관료들이 부랴부랴 이 서경의 기조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지요, 순자는 이 서경을 "정치의 기" 라고 불렀으며, 공영달은 군주의 법전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호응은 대단했지요, 물론 그 호응에 맞게 군주가 이토록 어려운 과거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게 문제지만요
워낙에 많은 편본이 합치되어 공자에 의해 편집된 본이라 사실 작자가 누군지도 모르며(은나라 시대의 소유영(小由零)과 주희만(周囍灣) 이라고도 하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실존인물도 아닌 것 같고요)
서경은 요순-하나라 시절의 요전, 고요모, 우공, 감서 등의 문건이 합치된 부분과 은나라의 탕서, 탕고, 서백감려, 미자 등이 합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주나라 때는 민생의 안정과 은나라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관료들이 황제를 배우는 것으로 얼마나 억압했는지 진서, 비서, 태서, 목서와 같은 "서(誓)" 강고, 주고, 소고와 같은 "고(誥)" 로 얽어매었다지요 말 그대로 황제에게 헛짓하지 말고 정치나 하십쇼! 라고 억누른 겁니다. 그 덕분에 제후들이 하도 난리피는 바람에 난세가 오긴 했지만요 -_-;;
오행에 기초한 정치원리를 제시하고, 도읍을 관리하는 요령, 군주와 제후, 관리의 직분, 직무책, 군주의 도리, 왕업의 계승, 형벌에 대한 이 모든 것이 서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문을 하나 하나 해석할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서, 좀 어렵지만 중국역사를 알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정독해 보실 것을 권하고 싶네요... 명문당이나 한국 전통문화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본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고대문화 연구소로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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