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감상글이 좋아 쭉 읽어 보다 코끼리손님 글애서 조금 웃었습니다.
"시하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면 이런 감상문을
쓰시진 못하셨을텐데ㅎㅎㅎㅎㅎ " <= 위에 김에밥님이 시하님의 여명지검도 읽지 않고 감상글을 작성하셨다는 뜻입니까?
"혹평하고 싶어서 근질거리지만 이미 마음 떠난 사람
작품에 욕하는 것도 비례. " <==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이 감상글을 클릭하고 거기에 댓글을 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고 글을 적을 때 읽어 보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감정과 입장만 이야기 하는것이 이미 비례(非禮)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더 무슨 비례(非禮)를 말씀하시는지.
"시하님은 천재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몽상가입니다.
그럴듯한 언어로 독자를 갖고 노는 작가죠."<==위에 감상글에서 시하님을 천재라는 표현을 쓰신적 있으신가요? 그의 글은 정제되어있어 현학적으로 보일수 있으나 충분한 이야기 꾼이고 앞으로 내용이 기대되면 자신에게 사유(思惟)의 즐거움을 주다는 내용인데 감상 글을 충분히 읽어 주시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독자를 갖고 노는 작가란 말은 조금 칭찬 같지만 님의 비꼬는 느낌이 들군요.
글을 적으실때 표현에 조금 신경을 쓰시고 그 글을 보고 느끼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지 생각을 한번 더 해보시고 적으시기 바랍니다.
구경자님의 말에도 동의합니다.
재밌는 것은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아서는 분명 계몽주의의 틀 안에 있는데 그 속에 태동하는 영사의 모습이라는 것이 니체적 초인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론에 가 영사가 악심에서도 사문에서도 자유롭게 된다면 이것이 이루어지겠지요.
악심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 글 속에서 인진의 흐름이란 것이 간명하게 드러나는데
혼자 공구해서 혼자 깨닫는 선종을 부정하고 악심이 나아간 바가 바로 정토종입니다. 악심의 정토종이란 아미타불 염을 외는 것만으로 정토에 나아가는 것이니 이것은 어찌보면 동양적 religion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악심이 세운 토대 위에서 각개는 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행위(염을 외우는 행위)를 통해 나아가는 것이죠. 줄여 말하면 신앙시대로 보입니다.
근데 악심은 이런 신앙시대가 끝난다고 말합니다. 자기 말의 수명이 다 했으니 자신은 부처가 되어 떠나고 악심만 남는다고 합니다. 굉장히 간략하게 말하면 중세후기의 태동으로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시기적으로도 대략 맞아떨어지고요.
그러니 악심은 자신을 베어 새로운 시대를 열라고 합니다. 그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검의 길이란 것이 바로 배워서 나아가는 영사입니다.
스스로 길을 찾는 파검은 안 된다고 말하죠. 그도 왕재상처럼 죄를 지었을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악심이 영사를 택했고 영사는 "배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신앙시대의 종말 다음에 악심이 택한 것이 "배움"이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만약 영사가 정말 위버멘쉬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영사는 한 인간 안에서 두 단계를 이루는 것이 될터이고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배움"에서 만족하게 되겠지요.
멋진 주잉공감인 파검은 안 되고 영사가 새벽을 여는 주인공이 된 까닭은 용기가 읽으면서도 조심스런 고양이 같은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보이는 영사는 아주 인간적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신앙의 시대를 넘어서 인간의 시대를 말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악심이 왕재상과 주고받던 대화에서 나온 "좋은 세상"은 우리가 사는 현대와 근 미래를 말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들에는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심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것은 당연한 건인데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군요. 1권부터 또 읽어봐야겠습니다. 읽다보면 못보고 지나쳤던 또 다른 게 보이겠지요.
의미 없는 글에 자꾸 의미를 부여할수록
스스로 초라해질 뿐입니다.
제가 시하님, 백야님을 자꾸 공격하는 이유는
그들이 쓸만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자꾸 삽질을
하기 때문이죠.
백야님은 대중적인 트렌드에 맞는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림포두 같은 실패작만 양산하고 있고
시하님은 장르소설이 아니라 철학서를 쓰셔야 할 분입니다.
시하님과 비슷한 사람을 꼽자면 독일의 철학자 니체입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한
아포리움적인 서술입니다.
근데 짜루트스트라는 작가의 의지가 명확 강고한 반면
시하님은 그렇지 않죠. 그것이 명작과 실패작의 차이입니다.
자신이 없으면 글을 쓰지 말아야죠.
독자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스스로를 독자에게 열어나갈
적극성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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