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시하
작품명 : 여명지검
출판사 :
글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존칭을 생각하겠습니다.
시하의 여명지검을 봤다. 그의 다른 글은 아직 보지 못했다. 찾아 볼 생각이다. 그의 다른 글이 궁금해진다. 여명지검이 하나의 색다른 시도인지 아니면 그의 일련적인 작품성의 연장선인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전자라면 그는 자유로운 인물일 것이고 후자라면 그는 강인하고 고집있는 인물일 것이다. 왜 그럴까.
시하의 여명지검을 현학적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명지검의 인과관계와 기타 인물들의 습성은 한학고전과 유사한 면이 많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늘어놓는 대화 안에서 나오는 많은 사상과 용어들이 현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것이라 그런 느낌을 가일층시킨다. 나도 이전에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즉 하나의 신비한 이야기정도로 여명지검을 이해했다. 그때 나에게 있어 시하는 신비로운 재담꾼으로 비췄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6권을 일고 나서는 바뀌었다. 시하가 분명한 목적으로 가지고 글을 쓰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담꾼에게는 이야기가 본련이다. 하지만 목적으로 가지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에게 이야기는 단지 옷일 뿐이다. 옷감을 짜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시하가 짠 옷(이야기)을 걸친 사람(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변형된 계몽주의라 생각한다. 송대의 중국을 배경으로, 유불선을 넘나드는 재담으로 시하가 최종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계몽주의의 틀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인 사문의 존재와 악심의 존재로 인해 설명된다. 사문은 세계를 조율하여 인진을 바라고 악심은 기를 것은 기르고 죽일 것은 죽여 새로운 세계(여명)을 열려고 한다.
작중 가장 강대한 두 힘이 모두 인진을 말하며 서로 반목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주인공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직은 오로지 배우는 것이다. 작중에서 영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행태는 바로 배움이다. 여섯 권이 책이 나올동안 영사가 한 것이라곤 오로지 배움뿐이라고 봐도 좋다. 하나를 배워 하나를 행하고 둘을 배워 둘을 행한다.
이 과정에서 신선한 것은 영사가 때로 훈육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악심의 경우에 의해) 그래서 영사의 배움은 변증법적이다. 이런 배움은 작중에서 오로지 영사에게로 집중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나아간 영역은 곧 전 인류의 영역이 된다." 한 사람은 두 말을 할 필요없이 영사다. 아직은 그렇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영사가 나가는 영역은 곧 전 인류의 영역이 된다. 환원하자면 영사의 배움은 곧 전 인류의 배움이다. 배움으로 완성되어 가는 영사의 인진이 곧 전 인류의 전진이다. 그렇다면 영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사가 성장해나가는 방향을 보면 철인과 초인의 두 가지 방향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초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사는 절대로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영사는 긍정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역경과 적의 존재마저 긍정한다. "적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구절에서 니체의 초인을 떠올린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작가는 또 "다른 사람"들이란 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란 싸울 수록 강해지는 도잠. 스스로 길을 찾는 파검. 상황을 조율하고 제어하는 필연생등이 있다. 이들의 재능을 산지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 길에 하나가 영사의 길이다. 작가가 이들 다른 사람들 중에 영사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길을 찾는 파검이 무협의 특색에 어울림에도 작가는 교육(또는 훈육)된 후에 비로소 나아가는 영사를 선택했다.
아직까지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작가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전혀 다른 형태로 쓰여졌다면 작가는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는 단지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세계에 대해서. 하지만 무제본기와 윤극사전기가 모두 이렇게 쓰여졌다면 그는 강인하고 고집있는 사람일 것이다. 묻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교정하려 하는 것일테니까!
아직은 단정짓기 이르다. 무엇보다 여명지검 자체가 완결이 되지 않았다. 완결이 된다고 해도 여러 날 고민하고 공부해야 작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훑은 정도라 아직은 심상의 단계에서 이정도의 글밖에 남길 수 없다.
여명지검은 내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정제된 언어로 쓰인 무협이다. 현재 출간되는 장르문학의 대부분이 장르적 장치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그 작품들에게 장르적 서사의 특색을 빼고 나면 생각할거리가 남지 않는다. 즉 비평불가의 언어로 쓰였다는 말이다. 그런 글들은 또 다른 글을 생산해내지 못 한다.
여명지검은 그러한 글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른" 작품이다. 여명지검의 언어는 정제되어 있기에 장르적 장치를 제하고서도 이해가능한 생각할거리를 남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의도대로 완결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가 내게 건넨 사유의 즐거움에 한동안 흠뻑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 할 것이다.
여명지검의 세계에 다른사람들이 태어났듯이 현 장르계에도 이런 다른 작품들이 많이 출간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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