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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5 노레이션
작성
04.06.12 12:14
조회
843

       황새 쫓던 뱁새,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다.

       연참대전 쫓아가다가 머리칼만 숭숭  빠져버리고, 흑흑 울던 대머

     리는 그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재미있는 글을  찾아갔다. 그리하

     여 과연 위로를 받았다.

       푸하하-

       떠나가 버린 머리칼들에 대한 슬픔을 한바탕 웃음으로  떨쳐낼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감상문이라도 써서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1. 닫힌 공간 속의 그림자들.

       이종우 님의 전작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고독한 우울함과 뒤

     틀린 욕망의 그림자가 이야기 속에 갇혀 울부짖는다, 라고 하겠다.

       거친 말투에 과격한 성격, 잔인한 피의  향연...이는 다분히 무협소

     설의 영역 속에서는 자연스러운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어쩐 일인지

     이종우 님의 글 속에서는 그 자연스러워야 할 것들이 전혀 자연스럽

     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가를  표현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저, 왠지 묘하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노라면 혹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게 있기는

     하다. 물론 정답은 아니고, 이것 역시 내 느낌일 뿐이지만...^^;

       그는 자신의 글 속에 우울함과 욕망의 그림자를  담아놓기만 했을

     뿐, 그것들이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문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 갇힌 상태의 울부짖음이 읽는 사람을 답답하

     게 만드는 것인지도...

      

       2. 해빙기

       그러나 이 글은 다르다.

       제목부터가 정 반대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얼음이 녹는다' 라는 제목은 '문이 열린다'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

     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확실히 이번의 글 '해빙기'는 그 동안 그의

     글 속의 귀신으로 갇혀만 있던 우울함과  뒤틀린 욕망들이 시원스럽

     게 뛰쳐나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물론, 그 '해빙기'라는 제목은 그저 '얼음처럼 차갑게 닫힌 어느 남

     자의 가슴이 따스한 물이 되어 흐르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겠

     다.

       아무튼, 그 활짝 열려진 문 덕분에 글 속의 어두운 귀신들은 신명

     이 나서 달려나가고, 덩달아 글을 읽는 내 안의 귀신들도 달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쉽게 표현하자면, 가슴이 탁 트인다! 라고 하면 좋겠다.

       가슴이 탁 트인다...

       무협소설을 읽으면서 이보다 더 좋은 느낌이 어디에 있을까?

       '해빙기'는 내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주는 글이다.

      

       3. 검은 까마귀, 하얀 뱀, 누런 쥐 그리고 풀잎에 맺힌 구슬

      

       '해빙기'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건 이  네 사람이다. 어쩌면 앞으로

     두어 명쯤 더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인물은 이 네

     명인 것이다.

       주인공은 검은 까마귀,  흑오이다. 까마귀답게  참 성질도 더럽고,

     주둥이는 더 더럽다. 그 더러운 주둥이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욕의 홍수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그 욕설을

     얻어맞다 보면 슬그머니 흥겨워진다.

       어라? 불쾌해지는 게 아니라 시원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혹여 여성 독자라면 그의

     거침없는 욕설, 특히 여자를 마구 뭉개버리는 말투에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르겠다. 또 '욕은 나쁜 거야' 라고 생각하시는 근엄한  분들도

     계실 테고^^;

       이렇게 도입부에서 더러운 주둥이를 맞딱뜨리고 충격(?)을 받더라

     도, 딱 3분만 참아보시길.

       흑오의 상스런 욕이 어느새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흔히 남도의 걸쭉한 입담에서도  정겨움을 느낀다지만, '해빙기'에

     서의 욕설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남도의 입담은 언어의  향연이라는

     감탄에 가까운 느낌. 그러나 '해빙기'의 입담은 감정의 표출이다.

       뭐랄까...일단 내 느낌을 표현하자면, 차마 뱉어내지 못하던 말들을

     과감하게 해버리는 주인공을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에 가까운 카타

     르시스를 경험하는 듯 하다.

       그런 동시에, 마구 욕을 해버리고, 급하면 여자를 방패로 삼으면서

     히죽 웃고, 때로는 그 여자를 마구 패버리고...하는 그 인간이 무척이

     나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 그래서인가 보다.

       성격도 더럽고, 주둥이는 더  더럽지만 그게 불쾌하지  않았던 건,

     그 검은 까마귀가 눈처럼  하얗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였다. 그래서 나 역시 흑오를  보면서 그저 시원스럽게 푸하하-웃

     어버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매력적인 주인공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글에 작가는 더

     욱 재미난 인물들을 더해놓았다.

       백사...하얀 뱀. 자고로 백사는 섬뜩한  영물이라던가? 여기에 등장

     하는 백사가 바로 그러하다.  말보다는 칼이 먼저인  과묵한 도살자.

     영물답게 실력도 대단하고, 뱀답게 냉정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하

     얀 뱀답게 자신만의 하얀 마음이 있다.

       흑오가 걸쭉한 입담으로 나를 시원스럽게 해 주었다면, 백사는 과

     감한 칼질로 나를 통쾌하게 만들어 준다.

       거기에 슬쩍 누렇게 늙은 쥐, 황서가 등장한다.

       쥐답게 사기를 잘 치지만, 마음은 여리다. 흑오한테 구박받는 풀잎

     의 이슬을 '이쁜이'라고 부르며 감싸줄 지도 안다.  (사실 개인적으로

     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아...그리고 참 역설적인 여인, 초무령이 있다.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 흑오의 말에 따르면 '좆도 재수 없는 여자'

     인데, 어쩐 일인지 '풀잎에 스민 안개가 이슬로 맺힌'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이다. (그리고 나는 또 이  여자도 참 좋다^^) 그녀를 보면

     괜히 안쓰럽고, 이따금 가슴이 좀 저리다. 그녀가 '한 아이의 어머니'

     이기 때문이 아닐까?

      

       4. 사람들의 이야기

       설마, 검은 까마귀, 하얀  뱀...이라고 지칭했다고 해서 이솝우화를

     생각하시면 대략 곤란하다^^; 그들은 분명히  사람이고, 그것도 무협

     에서만 볼 수 있는 개성이 철철 넘치는 사람들이다.

       '해빙기'는 그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몹시도 산뜻한 문장, 산뜻

     한 분위기로 보여준다.

       읽다보면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 '쉿!강시'랑 '불패도'만으로 나를 평가하면 곤란하지. 나도 이렇게

     시원스럽고 산뜻한 글을 쓴단 말이다!

      

       내가 가장 기쁜 건 이 목소리이다.

       더욱 기쁜 건, 이야기를 정말  즐겁게 쓰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

     다는 점이다.

      

       5. 바람이 부는가?

       얼마 전에 나를 사로잡은 '청풍연사' 가 있었고, 이번에는  '해빙기'

     가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또 한 번, 무협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인가?

       무협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참 행복한 바람이다.

      

       p.s. 허걱- 일반연재란에서 보실 수 있다는 말씀을 빼먹었네요^^;


Comment ' 2

  • 작성자
    Lv.1 남훈
    작성일
    04.06.12 17:39
    No. 1

    이거 책으로 나온건가요? 감상을 잘 쓰셔서 그런지..읽고 싶다는 생각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ask13579
    작성일
    04.06.12 19:47
    No. 2

    일반연재란에 이종우님이 연재하시고 계십니다..
    가인님의 감상도 아~~~주 잘쓰셨지만...
    해빙기는 더재밌다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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