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최소 1~2년 마다 한두 번 식 꼭 있습니다. 매체를 통해 다른 지역의 물난리 피해 뉴스를 접할 때지요.
전 고향 익산과 전주를 나눠서 25, 16년씩 산 셈인데요. 다른 지역에서 여러 날을 쭉 자야 했던 건 거의 군 복무를 한 26개월 그 시절뿐이지요. 1998년 8월에 의정부 306을 거쳐 자대를 9사단 .파주로 배치받음.
그리고 그 덕분에 경기도는 여름엔 저 남쪽 이상으로 똑같이 졸라 더운데 비 한번 꽤 온다 싶으면 군데군데가 물이 안 빠져 물난리 까지 겪는 동네구나의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후임들이 휴가 날 아침 위병소 앞 정문을 통과 못하고 오전 11시 경에서야 조금은 가늘어진 비속에서 우비 입고 뒷산을 타는 경로로 나간 게 생생합니다.
그게 평소 차와 인원이 다니던 부대 정면의 비포장 도로 양 옆으론 10미터 높이의 급한 비탈 아래로 논들이 주르륵 펼쳐져 있던 고로..
흐르는 흙탕물 안에 은신한 길의 양 경계를 자칫 헛딛는 순간 사람이든 차든 그대로 ‘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확정이었기 때문이었죠.
만 하루의 폭우에 없던 저수지가 훅 생긴 셈이었습니다.
비가 잦고 하루만에 도로는 바닥을 드러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옆의 논들의 물은 그대로여서 부대 6.0들이 3~4일 더 계속 좁은 우회로로만 다녀야 했죠.
그리고 제 휴가날 서울행 시내버스안에서 버스 앞문의 중간 계단까지 차올라 넘실대던 수위와..그러면서도 다행히도 목적지까지 쭉 나아갔던 버스..그리고 뭔가 너무도 태연해 보였던 기사님의 옆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윗 동네는 대체 어느 정도 되어야 버스 운행이 불가능인걸까요.
전북 태생의 홍수 촌놈에게 있어 물난리 뉴스가 전부 100% 사실이었구나 체감할 수 있었던 기억들이 죄다 경기도 (군대)에서의 체험이었습니다.
물론 전북도 그 정도 비라면 물 난리 겪을 곳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까 전북이 아닌 걍 전주- 익산 촌놈이어서 누리는 안전인 게지요.
20년도 더 된 기억 탓일까. 이번 중부 물폭탄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 매달려 버텨봤지만 떠내려가 실종된 분들도 있더라 뉴스에 우울해지면서도 진짜 사람이 그렇게도 죽나? 식의 생각이 스미기도 합니다. 우리 사람 대가리의 한계란..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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