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르츠님의 홈피에서 가져왔습니다앙.
사실 백합물과 레즈물을 딱 구분짓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
합니다.
일본에서 마리미떼가 남성오타쿠층에게 히트하기 전까지, '백합'이란 단어는 소수의 여성향계열의 팬층에서나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간의 동성애를 지칭할 때는 '레즈'라는 단어가 대세였죠. 우테나도 카드캡터 사쿠라도 아키하바라 전뇌조도 사피즘의 현창도 레즈 요소가 있는 작품이라고 했지, 백합 요소가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일부를 제외하면).
하지만 마리미떼가 인터넷과 동인에 의해 히트해버리면서, 그전까지 오타쿠층에서 사용되던 '레즈'라는 단어는 모조리 '백합'으로 치환되어 버렸습니다. '레즈'라는 단어가 아직도 대세인 건 AV업계 정도일 겁니다.
실제 '백합자매'는 '백합'이라는 이름하에 기존의 백합, 백합이 아닌 동성애적 소녀만화, 남성향 레즈, 리얼 레즈비언 등등을 모조리 섞어놓고 있죠(하지만 백합자매도 휴간되어버려서...-_-).
사실 현재 국내에 들어온 '백합'이란 예전부터 일본의 여성향계열에서 사용되어 온 본래의 의미로서의 '백합'이 아닌, 남성층의 대량유입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의미로서의 '백합'이기 때문에, 진정한 백합이 무엇이라고 단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죠.
일본에서도 '백합'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는 사람들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기에, 저는 웹에서 '백합'이란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그때그때 문맥에 맞춰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백합의 정의, 백합물과 레즈물의 분류 등과 같은 문제는 각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이지, 누구 말이 옳다고 결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로 제가 백합과 레즈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백합물'과 '레즈물'의 구분은, 남성층을 위한 기호화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BL물에서 가장 거부감을 갖는 부분이 주인공이 대부분 '만년발정기' 상태라는 점인데, 특히 攻캐릭터들은 애정=성욕 상태인 것처럼 보입니다(...제가 본 BL물들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BL, 야오이를 좋아하는 여성층(일본쪽 표현을 빌리자면 腐女子)의 취향에 맞춰서 왜곡된, 남성간의 동성애상이 BL물에 존재합니다(뭐 그래도 재밌게 봅니다만-_-)
이와 마찬가지로 남성층의 취향에 맞춰서 남성층이 원하는 여성들의 관계, '모에'나 '에로'를 위해 왜곡된 여성간의 동성애 관계를 그린 작품을 '레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레즈'라는 건 메이드, 여동생, 소꿉친구, 연상 등의 '속성'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미소녀캐릭터'가 남성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면, 저는 이걸 '백합물'이 아닌 '레즈물'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마리미떼의 영향을 받은 '백합물'들이나 백합요소를 포함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솔직히 저는 이들 중 상당수는 '백합의 탈을 쓴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여학교가 등장한다고, 소녀들이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해서 백합물은 아닐 겁니다.
이들이 묘사하고 있는 건 '백합'이 아니라 남성향 오타쿠가 원하는 '기호화된 백합'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리미떼에서 남성향쪽의 오타쿠들이 매력을 느꼈던 요소들을 기존의 미소녀물에 이식했을 뿐이죠.
'백합자매'에서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소녀 사이의 발전된 애정'라고 백합을 정의했습니다만, 제 관점에서 봤을 때 백합자매의 편집방침은 '백합'이 아니라 '(백합의 탈을 쓴) 레즈'입니다(그래도 휴간해버려서...ㅠ_ㅠ).
아트리에 미야비의 후지에다 미야비씨는 남성향 동인계에서의 마리미떼 인기에 불을 붙인 장본인입니다만, 미야비씨의 오리지널 백합물이나 동인지는 백합틱한 레즈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체도 귀엽고 내용도 아기자기해서 여성에게도 평가가 좋지만, 후지에다 미야비의 만화는 단순히 소녀간의 관계에 모에하고 있을 뿐입니다. '백합'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호화된 '백합'을 그리고 있을 뿐이죠.
'백합물'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리얼리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상당히 환타지가 포함된 것이지만, 마리미떼에 '미화'는 있어도 '탐미'는 없었던 것처럼 현실감과 생명력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남성향 오타쿠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뿐인, 왜곡되고 기호화된 미소녀물에 불과한 레즈물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리미떼의 캐릭터들은 리리안여학원이라는 세계관에 맞춰서 조금 사고방식이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남성향미소녀물의 캐릭터들처럼 '이 캐릭터 어때요?'하고 아양을 떨지는 않습니다.
그녀들은 충분히 현실적인 사고를 하고 있고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느정도의 미화는 있을 망정 지나치게 왜곡, 기호화되어 있지는 않은, 생명력을 지닌 여성캐릭터 간의 (유사)동성애물이 백합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신무월의 무녀』의 경우, 원작만화는 분명 기호화된 백합으로서의 동성연애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니판은 원작만화의 남성향스러운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심리묘사를 확실히 하여,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백합'으로서도 충분히 가치를 갖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특히, 애니판에서의 치카네의 생명력은 독보적입니다.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소녀캐릭터가 동성연애를 하는 것이 아닌, 기호화되지 않은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여성간의 관계라는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저는 백합물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백합의 정의를 내리자면, 아마 '미화된 여성간의 친밀한 관계' 정도겠죠. 레즈물과 비교하기 위해서라면 '지나치게 남성향으로 기호화되지 않은, 미화된 여성간의 친밀한 관계' 정도.
ps.
그렇기에 저는 성적 요소의 유무가 백합과 레즈를 구분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분명 에로는 남성향 계열의 오타쿠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만으로 레즈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레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있고, 성적관계가 있어도 백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트락=나카』 같은 경우 에로신이 하드할 뿐만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도 많고 하츠네는 남성기까지 만들 수 있지만, 저는 『아트락=나카』는 분명히 백합 요소가 강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츠네와 카나코의 관계 묘사가 제대로 되어있으니까요.
『사피즘의 현창』의 주인공인 앙리는 육체관계가 있는 8명의 애인을 갖고 있는 카사노바적인 캐릭터지만, 그녀의 할렘은 남성층의 모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각캐릭터들의 심리도 일반소녀만화에 가까울 정도로 잘 그려져 있기에, 백합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舞-HiME』에 대한 반응은 조금 흥미롭더군요. 일본쪽 반응을 살펴볼 때 『신무월의 무녀』의 레이프신은 찬반양론은 있었지만 치카네 인기가 상승하는 큰 요인 중 하나였는데, 『舞-HiME』22화의 시즈루x나츠키는 '소름 돋는다'니 '지금 내 안에서 시즈루의 주가가 급강하했다'니 시즈루에 대한 비난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시청자의 취향 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묘하네요.
(개인적으로는 22화의 시즈루는 오랜만에 나오에 아저씨를 떠올릴 정도로 전율했습...-_-; 누가 시즈루x나츠키로 불꽃의 미라쥬 한번 찍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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