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비디오로 영화 데어데블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마블 코믹스 사의 만화 작품을 원작으로 한 슈퍼 히어로물이지요.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서 무협지를 읽는 독자로서 상당히 흥미로운 몇몇 장면들과 요소들이 눈에 띄어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첫째. 암기의 달인 - 불스아이(연기자:콜린 파렐)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처음 등장할때 말 그대로 '우모침'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가느다란 침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나, 주인공인 데어데블(연기자: 벤 애플렉)과 교회에서 싸울 때, 표창이 다 떨어지자 스테인드 글라스 유리를 말 그대로 '꿰어 맞춰' 서 암기로 쓸 정도의 달인(으로 설정된 듯)입니다.
암살자라는 직업,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무기의 소지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칼 한 자루를 허리나 등에 매단다고 하자. 일단 상당히 눈에 띄며 튀지 않는가.)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암기의 달인' 이라는 이러한 설정은 상당히 사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헐리우드에서 불스아이와 같은 식의 '암기의 달인'은 거의 등장한 예가 없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무협의 세계에서 암기로서 가능한 여러가지 경지중 최고로 여겨지는(일반적으로) 것이 바로 '만천화우(滿天花雨(한자가 틀린곳 있으면 답글 달아주십시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제한을 둔다면 암기술로서 다다를 수 있는 경지는 바로 '손에 잡히는 것이 무엇이든 무기가 되는'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
장난감 자동자의 바퀴 축에서부터, 연필이나 유리조각, 심지어 돌맹이와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손에 잡히는 어떤 것이든 무기로 할 수 있는 이러한 경지야말로 암기술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초인적인 감각의 소유자 - 데어데블(극중에서의 마크 머독)
말 그대로 초인적인 감각의 소유자 입니다. 시력을 제외한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초음파(?)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감각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은 물론, 무림의 고수들(무협지에서의)보다도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감각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여러가지 약점을 갖추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매우 큰 소음(지하철이 다니는 소리 등)에 매우 약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불스아이 역시 그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주인공을 몰아붙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데어데블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보통사람보다 휠씬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주로 청각),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말, 혹은 약간의 소음조차도 크게 들려서 정신적으로 혼란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렇다고 소리를 줄여주는 특수한 보청기와 같은 것을 사용하면 그것은 이미 '초인'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자신의 능력을 억제하는 결과가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무협지에서 간혹 등장하는, 오감의 수련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데어데블의 모습입니다.
무공을 익히면서 절정고수로 발돋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에 하나가 바로 오감의 수련입니다. 안법(眼法)의 수련을 통해 안력을 키움으로서 '필요한 때에 정확하고 빠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눈'의 수련에 비해 '귀'의 수련은 무협지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청력을 비롯한 나머지 오감을 수련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요?
예를 들자면 폭포수 밑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여 자연스럽게, 새소리만을 듣는 등의 수련을 통해서 역시 '필요한 것만 들을 수 있는' 훈련을 한다면 극중에서 데어데블이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는 것이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데어데블이 본격적이고 정통적인 감각의 수련을 한 것이 아니고, 무림의 고수들에 비해서도 너무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기에, 일상생활에는 무리가 없으나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자극에는 약점을 드러낸다는 설정은 어느정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데어데블에서 보여지는 극중 인물들이 지닌, 몇 가지의 무협적인 요소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데어데블은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지니는 장점중의 일부를 잃은만큼 나머지를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은(주인공과 그 맞수인 불스아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길고,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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