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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68 임창규
작성
10.01.31 00:36
조회
275

제가 이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최근 뿔미디어에서 게임 판타지를 출판하기로 한 동갑내기 친구에게 글을 보여주었는데, 그 아이가 제 글은 출판사에서 별로 원하지 않을 글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다른 것으로 무시를 한 것도 아닙니다. 스토리 전개나 필력 자체는 매력적이라고 말해주었으니까요. 물론 친구가 실망하지 않도록 빈말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 아이가 제게 지적한 문제점은 제 글이 길다는 점입니다. 보통 출판되는 책이 1줄에서 2줄 길면 3줄에서 4줄인데, 저는 기본이 3줄에서 4줄이고 길면 6줄은 기본적으로 넘기게 됩니다.

정말 장문인 책은 출판사가 달갑지 않아하고, 단문인 책은 출판사가 달가워 하는 걸까요.

밑에는 스크롤 압박일 것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작성한 15쪽 분량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만약 읽기 원하시지 않고 의견만 남기시겠다면 휠만 쭉 내려주세요.

-

하늘 높게 솟은 태양과도 같이 화사하고 웅장한 황금색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검푸른 눈동자를 보유하여 더욱 더 인상적인 소년의 얼굴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르게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소년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그와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졌으나, 날카로운 인상의 소년과 다르게 부드러운 인상의 소녀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소녀는 벌써 삼 일이라는 시간 동안 기절한 상태인지,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인지 모를 상태로 의식을 찾지 못했다. 장작을 구하기 위해 잠시 먼 곳까지 나가 있던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소년으로써는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장작은 필수적인 요소였고, 괜히 벌목을 하다 연쇄적으로 쓰러져 집과 소녀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먼 곳까지 나가 벌목을 한 것이었고, 소녀 역시 소년을 원망하지 않을 터였지만 소년으로써는 자신의 여동생이 쓰러져 깨어나지 않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잘못이라 여겼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집 밖에서 겨울의 찬바람을 쐬다가 감기에 걸려 몸살까지 생긴 것이라 여겼지만 소년의 예상이 틀린 듯 소녀는 삼 일이라는 시간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도중에 뒤척거리는 경우가 있어 깨어나는 것일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야속하게 소녀는 깨어나지 않고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기 때문에 소년의 근심은 줄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차라리 어딘가의 외딴 산골이 아니라, 도심 속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무슨 일이라도 해서 소녀의 병을 치료했을 테니까.

하지만 네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갓난아기였던 소녀와 같이 산 속으로 들어와 생활하기 시작한 소년으로써는 유일하게 도시로 나가는 길을 알고 있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없는 지금, 마땅한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마땅한 대책이 없는 가운데 하릴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소녀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으며 미동조차 없었다. 소녀가 쓰러진 이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기에 소년의 얼굴 역시 갈수록 초췌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 속에 작은 불꽃이 솟아올랐다. 기사 수업의 막바지라 볼 수 있는 오크 퇴치를 진행하다 일행과 흩어져 길을 잃은 두 명의 기사가 젖지 않은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운 것이었다.

“여유가 생겼으니 서로 통성명이나 하세. 나는 블리스 알드리언(Bliss Adrian)이라고 하네. 그냥 블리스라고 불러주게.”

“……”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앤셀 데 에그버트(Ansel De Egbert).”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블리스의 계속되는 물음에 앤셀이 눈살을 찌푸리며 짤막히 대답했다. 블리스는 앤셀의 이름 사이에 미들네임이 있다는 것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미들네임을 하사 받았다는 것은 적어도 남작 위 이상의 귀족이라는 의미이거나, 계승 귀족의 자손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건 간에 결국에는 귀족이라는 말과 같았기에 블리스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하지만 곧 전과 같은 웃음을 되찾은 블리스가 갑옷의 초록색 피를 헝겊으로 닦아내고 있는 앤셀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말했다.

“하하하! 뭐, 어떤가! 이런 객지에서 만난 인연인 것을!”

“내 몸에 손을 대지 않았으면 한다.”

블리스가 등을 후려치자 앤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블리스는 그런 앤셀의 말에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앤셀은 아무리 말을 해도 블리스가 말투나 행동을 고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경고 하는 것을 포기했다.

앤셀이 입을 다물자 재미가 없어진 것인지 블리스는 허리춤의 주머니를 꺼내 들어 묶고 있던 줄을 풀었다. 앤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머니로 향했다. 블리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뒤집어 바닥에 탈탈 털었다.

놀랍게도 블리스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은 아직까지 식지 않아 온기가 느껴지는 초록색 귀였고, 모양이나 위치로 보아 오크의 오른쪽 귀임이 틀림없었다.

“꽤 많은 양을 모았군.”

이번만큼은 앤셀도 놀란 눈으로 블리스를 보았다. 귀족에게 인정을 받아 기뻐하는 것인지 몰라도 블리스는 우쭐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주머니 하나가 더 있었는데, 도망치는 길에 잃어버렸네. 자네는 얼마나 되는 오크를 죽였는가?”

“대충 아홉 마리 정도 된다.”

대화의 흐름을 끊는 것에 도가 튼 것인지 앤셀이 입을 열자마자 대화의 흐름이 명확하게 끊겼다. 블리스는 마땅히 꺼낼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다시다, 바닥에 떨어진 오크의 귀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끈으로 입구를 봉했다.

기사 서임식 때 영주의 눈에 띠게 해주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오크의 오른쪽 귀를 엮어 만드는 팔찌였고, 팔찌의 수가 많을수록 좋은 귀족의 휘하에 들어가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놓고 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눈앞의 앤셀이 블리스를 죽이고 오크 귀를 빼앗으려 들었다면 블리스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블리스는 앤셀이 자신에게 검을 겨누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것은 맞아떨어졌다.

그가 그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에는 눈앞의 앤셀이 귀족들이 평민과의 차별을 위해 사용하는 미들네임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앤셀 경(Sir). 먹다 남은 육포라도 있는가? 오크랑 싸우다 허기가 져 모두 먹고 남은 것이 없다네.”

“…준비성이 없나?”

기사는 기본적으로 싸움을 나간다거나 할 때 소식(小食)을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배가 꽉 차 있다 보면 더부룩한 느낌도 나는데다가, 배가 불러 있어 평소보다 민첩하게 움직이는 데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었고 앤셀은 블리스에게 그 점에 대해 지적한 것이었다.

블리스는 넉살 좋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할 뿐 긍정의 표시도, 부정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블리스의 대답이 없자 앤셀 역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꽤 어색한 분위기가 유지될 즈음, 산만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블리스가 산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일행 중 누군가가 그곳에서 봉화를 피어올린 것일 수도 있었기에 앤셀과 블리스는 모닥불을 발로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할 것도 별로 많지 않았기에 앤셀과 블리스는 봉화로 추정되는 연기가 지속적으로 피어오르는 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적은 수의 오크 정찰대를 만나기도 했으나 혼자서도 열 마리 가까이 되는 오크 전사를 처리한 앤셀과 블리스였기에 힘 들이지 않고 오크 정찰대 모두를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광이 나도록 닦았던 갑옷에 오크의 초록 피가 다시 묻은 탓에 앤셀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그와 반대로 갑옷이 더러워지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 블리스는 여전히 넉살 좋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대들도 길을……?”

연기 냄새가 코끝을 찔러오기 시작하자 블리스가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풀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곧 시야가 탁 트였고, 반가운 인사와 함께 질문을 건네던 블리스는 눈앞에 집 한 채와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만 덩그러니 있자 무안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릴없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소년이 집 밖에서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여태까지 오크 정찰병과 오크 전사들의 경계를 뚫고 정상까지 진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커튼을 쳐놓았던 창문 가까이 다가간 소년은 커튼의 끝자락만 들어올렸다. 집 밖에는 초록색 피를 뒤집어쓴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서 있었다.

한 명이 멋쩍은 표정과 함께 뒷머리를 긁고 있었으나, 오크의 피를 뒤집어 쓴 상태였기에 순박하게 보인다기 보다는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뒷머리를 긁는 우람한 체격의 남자와 반대되는 마른 체격의 남자가 집을 바라보았기에 소년은 황급히 들추고 있던 커튼을 내리고 벽 뒤로 숨었다.

삼 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소년이 다시 커튼의 끝자락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마른 체격의 남자는 여전히 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커튼의 펄럭거림을 확인한 마른 체격의 남자와 조심스럽게 바깥을 보고 있던 소년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

앤셀의 시릴 듯이 푸른 눈동자와 마주친 소년은 황급히 커튼을 내리고 뒤로 물러났다. 다시 창밖을 내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소년은 두 남자가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올까 싶어 황급히 의자와 탁자로 앞문과 뒷문을 틀어막았다.

그 직후 벽난로의 옆에 기대듯이 눕혀 놓은 쇠꼬챙이를 들어 올린 소년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한 차례 삼키고 소녀의 옆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했다.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두 명의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이 긴장을 풀고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의 끝을 들추는 순간, 바로 코앞까지 다가 온 앤셀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소년이 자신도 모르게 앤셀을 향해 쇠꼬챙이를 내질렀다. 창문을 깨고 다가오는 쇠꼬챙이에 당황한 것인지 앤셀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변했다.

순간적으로 쇠꼬챙이를 내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터라 당황한 것이었지, 잡지 못할 사각지대에 쇠꼬챙이가 날아와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앤셀은 어렵지 않게 쇠꼬챙이를 잡아채고 날아오는 유리파편을 피해냈다.

“얘야.”

쇠꼬챙이를 붙잡힌 채로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앤셀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소년은 황급히 쇠꼬챙이를 놓고 뒤로 물러나 앤셀이 소녀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했다. 소년의 의도를 알아챈 앤셀은 피식하고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소녀를 발견하지 못했었고, 누구 하나가 집 안에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은 상황에 소녀를 보이지 않으려 했던 소년이 황급히 움직여 소녀의 모습을 가림으로써 누군가 한 명이 더 집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웃음이 난 것이었다.

앤셀은 소년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한 발 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기에 앤셀은 한숨을 내쉬며 소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우리는 기사 수업의 마지막 시험인 오크 사냥을 마친 상황이야. 하지만 일행과의 약속된 집합 장소를 찾지 못해 현재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 중이란다. 곧 밤이 될 것이고, 산의 밤이 무섭다는 것은 너도 익히 알고 있을 테니 하룻밤만 이곳에서 자고 가면 안 되겠니? 너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고,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창고에서 자게 해주어도 괜찮다. 그것도 안 되면 마당에서 자도록 하마.”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처음 보는 앤셀의 모습에 블리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앤셀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한 차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안 되겠느냐?”

“그쪽 분들이 기사님들이라면, 맹세를 해주세요.”

“아직 기사는 아니란다. 곧 기사가 될 사람들이지.”

“그래도요. 언젠가 기사님이 되실 거잖아요. 기사가 되기 전에 맹세를 하건, 기사가 된 후에 맹세를 하건 그쪽 분들이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다면 상관없잖아요.”

당돌한 소년의 모습에 앤셀이 내심 웃음을 짓고는 블리스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블리스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혀를 내밀었다. 하지만 곧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맹세를 하기 시작했다.

“블리스 알드리언은… 네 이름은 무엇이냐?”

“루퍼트(Rupert)요. 제 동생은 앤젤러(Angela)예요.”

“알았다. 나 블리스 알드리언은 루퍼트와 앤젤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나 앤셀 데 에그버트는 루퍼트와 앤젤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제 된 것이냐?”

블리스가 묻자 루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을 집 안에 들어와도 된다는 승낙의 표시로 안 것인지 블리스가 걸음을 옮겼으나, 곧 루퍼트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집 안에 주무시는 것은 안 돼요. 조금 춥기는 하겠지만 창고에서 주무셨으면 해요.”

“그렇게 하마.”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거냐?”

앤셀과 블리스가 순서대로 대답했다. 블리스는 제 자리에서 여러 차례 투덜거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창고로 걸음을 옮겼고, 앤셀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창고 안으로 들어간 앤셀과 블리스는 생각 외로 안락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축들을 키우지 않는 것인지 몰라도 귀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젖지 않은 장작만이 가득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바닥에 깔고 누울 짚 같은 것이 없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노숙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블리스도 더 이상 투덜거린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쪽은 왜 나한테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아이들한테는 친절하게 대하는 건가?”

“나에게 넉살 좋게 말하면서 아이들에게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이유는 뭐지?”

블리스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앤셀이 물었다. 블리스는 혀를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

“아이들과 그리 좋은 추억이 없기 때문이네.”

“저만한 동생들이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둘 다 같은 병으로 목숨을 잃었지.”

“…그런가. 미안하네.”

“그럴 필요 없다. 애시 당초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으니.”

앤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블리스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늘진 앤셀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얼굴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도중에 봉화를 볼 만한 장소도 아니었기에 침묵이 깨어지지 않았다. 블리스는 이런 분위기를 좀이 쑤셔할 정도로 싫어했다.

블리스가 좀이 쑤셔 몸을 이리저리 비틀 때였다. 닫혀 있던 창고의 문이 열리고 루퍼트가 안으로 들어왔다. 루퍼트의 두 손 위에는 수프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었다.

딱딱하고 질긴 육포만 먹어 입에 물렸던 앤셀과 블리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음식이었다. 루퍼트는 앤셀과 블리스에게 수프가 담긴 접시를 나눠주었다.

블리스는 감사의 인사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수프를 빨아들이듯이 들이마셨다. 그와 반대로 앤셀은 루퍼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접시 안에 놓여 있던 숟가락을 이용해서 천천히 수프를 먹었다.

그릇은 곧 깨끗이 비워졌다. 창고 안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루퍼트는 깨끗하게 빈 접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우물 가까이서 접시를 깨끗하게 닦은 루퍼트는 물기를 말리기 위해 자연적으로 잘린 것이 아닌, 무엇인가에 의해 날카롭게 잘린 넓적한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루퍼트가 무엇을 하는지 창고 안에서 문을 열고 지켜보던 앤셀이 눈을 빛냈다. 바위가 잘린 이유가 자연적이 아닌, 인공적이었고 잘린 단면이 너무 매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라면 단 한 번에 주춤거림도 없이 바위를 잘라냈다는 말과도 같았고, 높낮이까지 같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력과 공간지각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은 앤셀의 고국인 에델린 왕국(Kingdom of Edeline)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았다.

‘…저 아이가 한 일은 아니겠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저 흔적은 채 십 년도 지나지 않았다. 누가 한 걸까.’

저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산 속에 은거하고 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루퍼트라는 아이 역시 또래보다 총명한 듯했고, 바위에 흔적을 남긴 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면 대답을 하지 않고 숨길 가능성이 높았기에 앤셀으로서는 궁금하면서도 성급하게 묻지 않았다.

“뭘 그렇게 보는 건가?”

“…아무것도.”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앤셀이 바위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대답했다. 무미건조한 대답에 블리스는 한 차례 혀를 차고는 창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볏짚 같은 것이 있었으면 푹신하고 좋았을 텐데. 농사 같은 것은 안 짓나.”

“하루 잠깐 신세를 지는 건데 원하는 것이 많군. 저 아이가 창고를 빌려준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라.”

“내가 뭐 고마워 안한 줄 아는가. 그 정도 염치는 있다네. 그나저나 아무리 많이 쳐줘도 열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저 아이들의 부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군.”

“혹시라도 해서 말하는 것인데, 저 아이에게 부모님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으면 한다. 이 시간까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없는 것 같군.”

앤셀의 말에 블리스가 헛기침을 했다. 얼굴 표정과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니 루퍼트에게 부모님에 대해 물으려 했던 것 같았다. 앤셀은 넉살만 좋고 눈치는 없는 블리스를 보며 한 차례 혀를 찼다.

여전히 어색한 헛기침을 하던 블리스는 몸을 돌려 뒹굴어 앤셀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그런 블리스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앤셀은 다시 바위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루퍼트는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바위를 만져보고 루퍼트에게 누가 바위를 잘라냈는지 묻고 싶었지만, 피곤이 몰려오는데다가 그런 것까지 묻기에는 염치가 없었던지라 관심을 끄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곧 블리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고, 앤셀은 쌕쌕거리며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정상의 모든 생명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Comment ' 16

  • 작성자
    슬로피
    작성일
    10.01.31 00:39
    No. 1

    요새 대부분의 애들은.

    투명드래곤이 울부지져따.


    크아아아아앙.

    이런거 좋아하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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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8 임창규
    작성일
    10.01.31 00:40
    No. 2

    슬로피 // 하하 ;ㅁ;. 저는 그런 글을 싫어해서 효과음 같은 것도 되도록 안 넣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그래서는 시장에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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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고사리동
    작성일
    10.01.31 00:40
    No. 3

    로크 미디어에 가보세요. 흥행과 작품성 의 중간에서 있는 곳이죠. 대부분이 대중성에 맞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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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슬로피
    작성일
    10.01.31 00:41
    No. 4

    글은 괜찮은데요.
    혹시 그 친구분이 출판하면 읽어보게 제목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나이가??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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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8 임창규
    작성일
    10.01.31 00:45
    No. 5

    올해로 열여섯 살 됩니다. 제 친구는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실에 대해서 알려준 것이니 기분도 나쁘지 않고요.
    아, 작품은 조아라에서 모래술사를 연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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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 회색
    작성일
    10.01.31 00:50
    No. 6

    뿔 미디어라면 환상미디어 못지 않은 아주 훌륭한-,.- 출판사죠. 뭐 친구 분말이 영 틀린건 아닙니다. 한줄 치고 엔터치고 하면 출판사 입장에선 잉크값이라도 좀 아낄테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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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천기룡
    작성일
    10.01.31 00:51
    No. 7

    문장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드니까요.
    일반적으로 일년에 책 한 권 안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금 읽기가 거북해지죠.

    일반적으로 장르 문학을 보시는 분들중에는 장르문학 외에는 안 보시는 분이 상당히 많은데 그런 분들이 볼때는 긴 문장의 책은 재미도가 조금 깍이게 되겠죠.

    당연히 매니아층에서는 몰라도 대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하는 측면에서는 불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조금 꺼려지는건 사실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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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nacukami
    작성일
    10.01.31 00:57
    No. 8

    사실 좋은 문장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만, 제 의견을 말해보겠습니다.
    문장이 길면 안 좋습니다. 단번에 읽을 수가 없고, 한번에 이해하기 힘듭니다. 긴 문장은 대체로 가독성이 떨어져요.
    안톤 체홉이 이 비슷한 말을 했지요. '좋은 문장은 1초 안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임창규님의 글을 대충 훑어 봤습니다만, 읽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읽는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쓰시진 않은 것 같네요. 끊으면 더 좋을 문장들이 많이 읽힙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글이 루즈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임창규
    작성일
    10.01.31 00:59
    No. 9

    nacukami // 의견 감사합니다. 달갑게 받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닐니
    작성일
    10.01.31 01:03
    No. 10

    으아아 무지하게 잘쓰셨는데요 ㅠㅠ
    일단.. 일단 문피아에 연재..좀...
    ..죄송합니다.
    뭐 여러 사이트에 연재하다보면 출판 제의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임창규
    작성일
    10.01.31 01:07
    No. 11

    닐니 //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나중에 200쪽 분량이 마련되면 바로 정규 연재란 카테고리를 얻고 시작할 예정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0.01.31 01:12
    No. 12

    저는 문장의 길이는 상관없어합니다만, 글쓴님의 글에는 비문이 많네요. 문장이 길어지다보니 생기는 모양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sydm
    작성일
    10.01.31 02:23
    No. 13

    음... 문장은 짧은 문장이 좋지요. 음.. 창규님 글은 그래도 가독성이 좋은편이라 괜찮은 듯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치카
    작성일
    10.01.31 03:14
    No. 14

    문장에 너무 멋을 부리려고 하시네요.

    [하늘 높게 솟은 태양과도 같이 화사하고 웅장한 황금색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검푸른 눈동자를 보유하여 더욱 더 인상적인 소년의 얼굴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르게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결국 금발에 푸른 눈 남자애가 수심에 차 있다는 표현을 이리도 길고 손발 오그라들게 쓸 필요가 있을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Personacon 염소의일격
    작성일
    10.01.31 12:32
    No. 15

    문장을 더 짧게다듬는것이 독자입장에서도 읽기편하고 좋지 않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Solace
    작성일
    10.01.31 12:41
    No. 16

    계속 쓰다 보면 어떤 단어/문장이 중요하고 어떤 단/문이 필요하지 않은 지 아는 날이 온다고 합니다. 글쓴이가 쓰는 단/문은 독자에게 전달하는 바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중요한 분은 강조하고 아닌 부분은 버리는 법 등을 터득한다네요. 제 생각에는 글의 강/약이 미미해서 인터넷 연재하시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좀 부족하다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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