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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1 푸른이삭2
작성
04.03.13 16:52
조회
400

그들의 원초적 욕망과 광기에 저항한다

< 1 >

2004년 3월 12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절차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허구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 원초적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탄핵 전날인 3월 11일, 노무현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홍사덕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이제는 도저히 노무현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파르르 떨리던 그 목소리와, 분노에 상기된

그 얼굴 표정을 기억하는가.

나는 홍사덕의 그 모습이 이 모든 사태의 축약본이라고 생각한다. 탄핵 과정에서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통곡하던 임종석의 모습도,

비참하게 들려나가던 유시민의 모습도, 비장한 얼굴로 구호를 외쳐대던 김근태의 모습도

아니었다.

마이크를 뽑아들고 상기된 얼굴로 의사봉을 두드리던 박관용의 모습도, 환한 표정으로

국회 건물을 나서던 이재오의 모습도, 국회 본회의장 한켠에 서서 난장판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조순형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 전날, 노무현의 기자회견을 규탄하면서, 기자 회견 자체가 탄핵감이라고, 이제는 도

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에 목소리까지 떨리던 홍사덕의 얼굴 표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노했을까? 바로 그날 노무현이 또다시 '총선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 마음을 비웠다'고 한 말 때문이라고 한다. 이거 참 이상한 일 아닌가?

선거에 이겨서 노무현을 몰아내면 얼마나 손쉽고 간단한데,

왜 분노에 몸을 떨며 굳이 국회에서 탄핵한다며 이따위 개판을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87년 대선 때 노태우의 필승카드 중 하나가 "임기중 재신임 실시"였다.

그리고 재임기간 내내 야당에서는 줄기차게 재신임을 요구했다. 물론 시행되지 않았고,

그 이면에는 김대중과 노태우의 이면 거래가 있었다.

재신임은 국민에 대한 협박? 먹히는 협박이었으면 노태우는 거짓말 공약이었다는

그 많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는다는 그 자체가 협박인 게 아니라, 국민에게 협박인 게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협박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 없고 득표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적 존재, 선거법 몇 조 위반 운운하는

논리들은 결국엔 다 그 두려움에 대한 논리적 치장에 불과하다.

IMF로 나라가 결단나고, 비리로 수천억의 돈이 날아가고, 핸드폰으로 해고를 통보당한

노동자들이 시위할 때, 그들이 언제 그토록 분노에 몸을 떤 적이 있었던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재벌 기업이 살아났다 죽었다 하고, 대형 사고로 수백명씩이 떼죽음

을 당할 때, 그들이 언제 그토록 비장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응징을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

그렇게 자나깨나 국가 대사만을 위해 사는 분들이 오래간만에 그토록 분개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부르짖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자기 정당의 이익과 자신들의 국회

의원 자리였던 것이다.

이번 탄핵안은 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따져봐도 노무현이 입당 안 한 채

여당 편들었다는 것 정도일까,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탄핵안이다. 왜냐하면 그 분노,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욕망이 만들어 낸 탄핵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저항하는 이유는,

노사모와는 거리가 먼 제 사회단체와 노조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2 >

김대중 이후에 우리는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것처럼 피해야 하고 그것처럼 위험하고 그것처럼 불온한 것은 없는 듯이 그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포퓰리즘적인 정권은 김영삼 정권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대중이 일어서면, 네티즌들이 뭉치면, 그 때 그들은 포퓰리즘이라 이야기한다.

재신임을 묻겠다 하니 첫날엔 쌍수를 들어 희희낙락하다가 여론조사가 불리하자 다음날은

준엄한 얼굴로 포퓰리즘이라 꾸짖는다. 유리할 때는 '국민여론'이었다가 불리할 때는

'포퓰리즘'이라 한다.

촛불시위 현장에 기웃거린 이회창의 행동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여론 수렴이고,

몸조심하느라 가만히 있었던 노무현은 포퓰리스트가 된다.

그것처럼 편리한 도구가 또 있을까. 2002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선,

그 국민의 선택을 깨끗하게 잊고 일거에 무효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힘은 바로 그 포퓰리

즘이라는 믿음이다.

국민이 평가하는 재신임은 위험한 것이고 자기들이 평가하는 대통령 탄핵은 국가와 역사를

위한 것이라고 너무나 쉽게 믿을 수 있는 힘도 바로 그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다.

그들에게 대중은 우매한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고 아무 생각없고 비위만 맞춰주면 좋아하는 군상들이다.

돼지저금통 들고 다녔던 사람들보다, 인터넷으로 송금했던 사람들보다,

단체로 동원돼서 한나라당 유세장 머릿수 채웠던 아줌마들이 더 거기에 가깝다는 말은

물론 아무도 하지 않는다.

놀라운 언어의 마력이다. '포퓰리즘' 그 한 단어로 인해 그들은 마음껏 노무현을 조소하고

마음껏 분노를 발산하며 거리낌없이 '국익을 위해' 대통령을 몰아낸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만이 옳고 국민이 판단하는 국익은 싹 잊어버릴 수 있는 놀라운 힘,

나는 그 힘에 경탄한다. 그 강력한 에너지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홍사덕의 얼굴에서 본 것은 그 힘이었다. 그것은 광기였다.

< 3 >

그들은 노무현이 총선을 친노/반노 구도로 몰고가려 한다고 규탄했다.

그러나 정작 오는 17대 총선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성적인 반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군중심리로 움직인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원초적 욕망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먼저 드러낸 장본인은 그들 자신이었다.

그들은 노무현이 일부 홍위병들을 동원해서 적은 숫자로 목소리만 크게 낸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정작 대중을 두려워 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전면전을 두려워한 것은 그들이었고,

그런 그들이 탄핵안 통과로 오히려 사태를 전면전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노사모도 아니고, 이라크 파병안 처리 당시 노무현을 규탄했으며,

노빠들의 지나친 노무현 옹호에 눈쌀을 찌푸렸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광화문으로 간다.

내 주변의 수많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합류할 것이다.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원초적 욕망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모든 정치 체제는, 왕정이거나 민주정이거나,

정당성을 기초로 한다. 전 국민이 저항한다면,

87년 6월이 그랬듯이, 몇만명 되지도 않는 경찰은 통제력을 상실한다.

질서가 유지되고 사회가 돌아가는 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지하고 복종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힘이 바로 정당성이다. 그런데 그 정당성이 깨졌다.

국가를 유지하는 힘이 깨져 버렸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익'의 가장 큰 부분이 깨진 것이다.

그들 자신이 깨 버린 것이다. 입만 열면 국익을 외쳐대는 그들이 말이다.

그 정당성을 회복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이익인 정치 정당성을 되찾아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국익'을 외쳐대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고 우리들 자신의

몫이 되어 버렸다.

합법적이었노라고, 헌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노라고, 그만 대통령 갈아치우자고,

그들이 뻔뻔한 얼굴로 지껄이지 못할 그날이 결국 올 것이다.

우리가 그 쿠데타를 진압하는 순간 말이다.

/최내현 ([email protected])


Comment ' 2

  • 작성자
    작성일
    04.03.13 17:06
    No. 1

    멋지다~~ ^^
    오랜만에 시원한 문장 가슴에서 올라오는 글을 봤읍니다.
    이글을 읽게 해주신 푸른이삭님게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2 진짜자몽
    작성일
    04.03.14 01:40
    No. 2

    저도 이상하리만큼 홍사덕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파르르 떨림이 반박자 정도 빨라서 '의아함'으로 오래 남더군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파르르 떨면서 "그게 무슨 사과냐"고 호통칠 만반의 준비 속에 잘 연출된 표정으로만 비춰졌습니다.

    이번 탄핵정국 속에서 홍사덕의 역활이 그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병렬식이 '도 아니면 모', '빨갱이 아니면 대한민국'이란 조선일보 특유의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뻣뻣한 역활이었다면 홍사덕은 앞뒤에서 기름을 칠해주고 여기저기 미사려구를 붙여가며 명분을 만들어주는 역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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