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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6.09.22 20:00
조회
1,744

권력을 집중시키면 정치반대세력의 위협이 줄어들고 군주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총량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만약 그 군주가 (지금 자신처럼) 명군이라면 그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군주가 범재라면 현상유지도 버거울 것이고, 과도한 중앙집권은 그 자체로서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으며, 반대세력과의 세력균형을 무너트렸으니 시스템의 모순점을 반대세력이 아니라 시스템 스스로 보완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울만큼 세상이 간단하진 않죠. 


하지만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반대세력과의 균형을 유지하려한다면 군주는 결국 자기 스스로를 체제와 전통의 굴레로 묶어야만합니다. 자신이 더욱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못마땅한 범재에게 맡겨야만하고, 지금 당장 자신을 가로막는 장벽을 부수는 대신 힘겹게 옆으로 돌아가야합니다. 그것은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이고 단기적으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싶다면 그건 국가의 기회와 미래를 깍아먹는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겠고요.


그럼 결국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생존을 가장 큰 기본전제로 삼고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묶어 범재의 손에서도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을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마누엘 1세 콤네노스의 죽음 이후 비잔틴 제국의 체제가 붕괴한 것은 전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군의 존재를 기본전제로 삼은 체제가 모두 역사의 흐름 속에 붕괴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세의 시각으로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혹스러운 우연의 연속이 명군에 의해 남겨진 시스템의 모순을 파고 들어가고 나서야 체제가 붕괴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누일 사후 라틴인들로 구성 된 섭정정부가 콤네노스가 내부의 불만세력과 충돌을 한다는 사건에, 안드로니코스가 마누일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우연이 겹치고, 그런 안드로니코스를 하필 콤네노스가 불만세력이 불러들였으며, 그런 안드로니코스가 부상할 때 하필 비잔틴 제국에 반라틴 정서가 오랫동안 쌓여왔고, 하필 안드로니코스는 친라틴 외교정책을 포함한 마누일 콤네노스의 유산을 모두 파괴하고 싶어했던 최악의 군주였다는 우연까지 모두 겹친 와중에 하필 엔리코 단돌로가 4차 십자군을 콘스탄티노플로 돌리기까지 하고 나서야 비잔틴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그런 우연이 없다면 시스템은 명군이 있을 때만큼 능률적이진 못하더라도 붕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남은 체제는 전자가 아닙니다. 역사는 명군의 생존에 의존하는 체제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결국 증명해냈습니다. 왜냐면 저희는 그러한 우연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그런 우연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0.1%의 적중률을 가진 점쟁이가 1만명에게 각기 다른 1만개의 예측을 한다면 그 중 대강 10개 정도는 맞출 것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건은 발생하기 힘들지만, 사건 자체는 언제나 저희 주변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그 중 절대다수의 사건들은 유의미한 결과를 남기지 않아 저희의 기억 속에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건들이 모든 사람에게 끝없이 일어난다면 그 중 몇개는 필연적으로 최악의 결과를 야기하게 됩니다. 그걸 보고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는거지’라 말하는건 마치 1만명에게 예측을 한 점쟁이를 보고 ‘어떻게 점쟁이가 10개나 되는 예측을 맞춘거지’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현대사회에 남은 체제가 후자인 것 역시 아니지요. 현대 국민국가는 폭력의 완전한 독점을 이룩했으며, 이건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성질입니다. 근대 이전의 역사를 보면 그 어느 사회도 산업화 된 국가의 정부처럼 폭력의 무제한적 독점을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 ‘공화국’에서의 ‘공화’가 의미하는 ‘공화주의’는 특출난 능력을 갖춘 시민들의 공공을 위한 기여를 부르짖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사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통치가 아닌, 평등한 만인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를 추구합니다. 권력의 분권은 민주주의의 종교이며 선거제에서는 모든 시민이 능력의 유무에 상관 없이 단 하나의 표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는 저 두 선택지 모두 엄밀히 말해서는 정답이 아니며, 진정한 정답은 그 둘 사이의 매우 혼란스러운 중간지대 어딘가에 놓여져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정답이 정확히 어디에 있고, 두 극단 중 어디에 더 가깝게 치우쳐있느냐 역시 하나의 정답이 있는게 아닐 겁니다. 시대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정답은 첫번째 선택지에 가까울 수 있고 두번째 선택지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적절한 균형을 잡는게 그토록 어렵고 수많은 천재들마저 실패했던게 아닐까하고 오늘도 평범한 범재는 생각해봅니다.


Comment ' 2

  • 작성자
    Lv.68 개백수김씨
    작성일
    16.09.22 20:19
    No. 1

    왕 중심의 중앙집권화 - 권력의 독점 - 유지기간이 길어질수록 권력층이 고착화 - 부정부패, 파벌화 - 국력 약화

    첫 스타트를 끊은 왕이 제도를 잘 정비한다 한들 결국 권력층의 고착화로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후대 왕으로 넘어갈수록 그 힘이 약화됨.

    역사책들을 살펴보면 전성기를 찍은 왕을 기점으로 국력이 쇄락하다 망하거나 다시 쇄신해서 제 2의 전성기를 찍거나.

    누군가가 정치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라고 말했는데 정말 맞는 말인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水流花開
    작성일
    16.09.22 20:23
    No. 2

    한국은 좀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되면 그 자리에 누가 와도 어느 정도는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0 | 반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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