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 조조는 기본적으로 초세지걸 이라고 할만큼 영정 유방 유수 이후 4번째로 중국의 7~8할 사이를 정복했다.
- 많은 문인들을 키우고 보호하여 문화의 중흥을 이끌어 냈다.
- 이민족을 잘 통제하여 촉한 동오 외의 세력과는 거의 전쟁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 위나라 이후의 왕조인 서진에게 통일의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잘 활용하였다. 설사 본인에게 큰 위협을 끼쳤던 정적이라도, 적과 내통한 혐의가 있더라도 통제범위내에서 유능하다면 기용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 동탁 이각 이후로 땅에 떨어졌던 한왕실을 잘 활용했고 겉으로나마 존중하는 척 했다.
- 본인이 찬탈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 곧바로 해버리지만..)
암
- 2차례에 걸쳐 서주에서 대학살을 일으켜 호曰 계곡과 하천 강이 온통 시체로 가로 막혀 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라고 할 정도로 큰 범죄를 저질렀다.
- 원소와의 전쟁 이후 항복한 5~10만의 장정들을 산채로 땅에 묻어버렸다. 이는 장평대전 때 30~40만의 조나라군을 묻어버린 백기나, 거록에서 큰 승리후 항복한 진나라 군 15~20만명을 묻어버린 항우 이후 가장 큰 살육중 하나로 뽑힌다.
- 백성들의 강제 이주를 즐겼다. 특히 회하이남 지역의 백성들을 모두 강제 이주 시키려 하다 100만여 백성들이 손권에게 귀의할 정도. 한중이나 서량지역 등의 지역에서 행했고 매우 강제적이라 백성들의 원망이 컸다.
- 둔전제를 실시하며 세금과 군복무기한을 크게 늘렸다. 세금같은 경우 무려 6할에 가까운 곡식을 내야 했기에 백성들 삶이 퍽퍽했다고 한다. 더구나 이후에는 여러 세금이 더 붙어 위말기와 서진시기에는 더 힘들어 졌다고 한다.
- 여색. 그중에서도 유부녀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져 연주 사례지역의 많은 사대부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는 그 부인을 탐하는 경우가 잦았다.
- 통제 범위를 벗어난 천재는 크게 시기하여 한직으로 내쫏거나 죽이는일을 자주 하였다. 대표적으로 자기 아들 조충이 죽자 조충과 비슷한 재주를 가졌다는 주불의를 죄없이 죽인 예가 있다.
- 비록 부하라도 생명을 함부로 거두는 일이 잦았다. 예컨데 전쟁중 식량이 떨어져 불만이 높아지자 보급관이 착복했다는 누명을 씌운후 죽인다던지, 암살이 두려워 일부러 자기 호위병을 죽이고 꿈에서도 근처 오는 사람을 파악해 죽일 수 있다고 소문낸다던지.. 수도에 큰 불이 나자 그 불을 끄러 온 신하들을 의심하며 반란가담자거나 불낸놈들 이라고 말하며 모두 죽인다던지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