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자면, 중세시대의 기술력으로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제련법인 괴철로(Bloomery)는 산화철, 즉 산소와 철이 결합 된 상태의 철광석을 목탄으로 가열하여 목탄이 배출하는 일산화탄소가 산화철의 산소와 반응해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배출되게 하는 식으로 철을 제련합니다. 이때 괴철로의 온도는 철을 녹일만큼 높지는 않지만 슬래그를 녹일만큼은 높기 때문에 철은 녹아내리는 슬래그 사이에서 중력에 의해 괴철로의 바닥에 모이고 그렇게 형성 된 괴철(Bloom)에서 남은 슬래그를 두들겨 떼어낼시 연철이 나옵니다. 낮은 온도에서 철은 탄소와 쉽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철의 탄소함유량이 낮게 나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대로 녹이지 못해 불순물을 원하는만큼 제거하지 못한 괴철로 대신, 철을 아예 녹여버리려고 한다면 그때는 새로운 문제점이 생깁니다. 용광로를 예로 들어 얘기하자면, 녹아내린 철이 높은 온도 때문에 코크의 탄소와 필요 이상으로 반응해서 이번에는 탄소함유량이 너무 높은 주철이 나옵니다. 그렇기에 중세시대 기술력으로 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아예 철이 정량의 탄소 말고 그 다른 무엇하고도 반응하지 못하도록 밀봉해두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우츠 강, 다른 이름으로는 다마스커스 강이라고도 알려진 강철이지요.
우츠 강은 밀봉 된 용기안에 괴철로로 생산한 연철과 정량의 탄소(우츠 강의 경우에는 나무를 베어서 넣었습니다)를 집어넣은 후, 경우에 따라서는 슬래그와 반응해 액체의 형태로 윗쪽에 떠오를 플럭스 물질을 같이 넣은 다음 엄청난 양의 목탄을 이용해 그 밀봉 된 용기를 철의 녹는 점까지 가열해 만들어졌습니다. 목탄은 철의 녹는 점까지 도달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최대한 많은 양의 목탄을 효과적으로 불태워야 했습니다. 만약 용기가 밀봉되지 않았다면 목탄의 탄소가 녹은 철과 반응해서 주철을 만들어냈겠지만, 용기가 밀봉 되어 있었기에 오직 정량의 탄소하고만 반응할 수 있었고, 따라서 원하는 탄소함량의 강철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강철은 한번 녹였기에 불순물이 극히 적었고 탄소 함량을 통제할 수 있었기에 놀라울만큼 탄성 있으면서도 쉽게 상하지 않는 단단함 역시 갖출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래봤자 현대 제철소에서 그냥 찍어내는 강철하고 비교하긴 힘들지만요.
여담이지만, 재밌게도 흔히 미개하다 생각하는 바이킹들 역시 비슷한 강철로 만들어진 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사람들이 괴철로에서 생산한 칼로 싸울 때 정예 바이킹 전사들은 울프베르라 불리는 강철검으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숫자의 한계가 있으니 큰 영향은 줄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제법 재밌는 사실입니다.
여하튼, 보다시피 철의 제련은 화학적 반응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대장장이는 그 화학적 반응을 통제해서 원하는 철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비밀에 능숙해져야합니다. 흔히 머리 대신 몸 쓰는 직종으로 생각하기 쉬운 대장장이지만, 야금술에는 단순히 망치 들고 두들기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대장장이는 중세시대에 가장 마법사에 가까운 사람들 중 하나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걸 많은 소설들이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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