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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조선 선비 게이머 됨.

작성자
Lv.52 사마택
작성
20.06.01 07:20
조회
184

 뉴비가 된 선비.

 

 때는 선조가 왕위에 오른 지 20.(서기 1587)

 임선달은 집으로 가던 길에 희한한 기물을 발견하였다. 조선 천하에 볼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21세기 말에 생산된 VR 게임기였기 때문이다.

 범상치 않다고 느껴 집으로 가져갔다.

늦은 석식을 잡순 임선달께서는 사랑채에 홀로 앉아 재질을 알 수 없는 안대가 달린 금속 투구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보기와 달리 가벼웠다. 한동안 쓰다듬어도 보고, 두들겨 보기도 한 임선달은 정자관(사대부가 집안에서 쓰던 관모)을 벗고 투구를 써보기로 했다.

 검은색 안대에 분명 눈이 가려졌는데 눈앞에 사물이 그대로 투영된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윙윙.

 투구에서 듣기에 썩 좋지 않은 소리가 나더니 귓속에 남녀노소를 구분하기 힘든 괴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용자여-.”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란 임선달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곧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네 이놈! 사람이냐, 귀신이냐?”

 

 노성이 터져 촛불이 심하게 일렁였다. 기계음이 다시금 귓가를 울렸다.

 

 “용자여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무례하다! 군자의 길을 걷는 선비께 어디 감히 하대더냐.”

 “용자여 세상에 위기가 왔도다.”

 “닥쳐라! 나라님의 위엄이 삼한을 덮어 치세가 도래하였는데 이 무슨 천인공노할 소리냐. 난신적자로다. 모습을 드러내라.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임선달은 벌떡 일어서더니 거치대에 놓인 언월도를 집으려는 찰나, 눈앞이 껌껌해졌다.

 

이노옴! 감히 뉘 앞에서 사특한 수작질이더냐!”

 

한참을 노발대발하던 와중에 이번에는 눈앞이 하얘졌다. 눈이 부셔서 감고 떴을 뿐인데 낯선 풍경이 드러났다. 분명 밤이었는데 하늘은 높고 햇볕은 따스했다.

이 기이한 상황에 임선달은 몇 번이고 두 눈을 깜박였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것이 정녕 꿈인가 생시인가?”

 

이국적인 풍경과 갑주와 병장기로 무장한 꽤 많은 군중이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녔다

입을 떡, 벌린 채 방정맞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우리의 임선달. 선비 체면이 말이 아니시다.

 

 “유하.(유저 하이) 님도 뉴비시죠? 파티 없다면 같이 하실래요?”

 

임선달은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자연히 고개를 돌렸다. 쇄자갑(사슬갑옷)으로 무장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고운 얼굴의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 미남자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유비?”

 “? 유비라뇨? 아하! 삼탈워 즐기시나 보군요. 이번 신작 어제 나왔다고 들었는데. 벌써 구했나 보네요. 할만하던가요?”

 “아니, 이보시게 도령. 자네가 방금 유비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요. 뉴비요.”

 “그래 유비.”

 “, 비요!”

 

임선달은 고개를 모로 갸웃거리다가 이제 막 틀이 잡힌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뉴비? 허허. 이보게 도령. 난 군자의 길을 걷는 선비라네. 무과에 급제하여 임관을 기다리는 선달일세. ! 그렇군, 그래. 방언인가? 이곳에서는 선비를 뉴비라 하나 보군. 이보게 여기가 어느 고을쯤 되던가믿을지 모르겠지만 난신적자를 품은 괴력난신을 만났다네. 글쎄 눈을 한번 깜박였을 뿐인데 이곳일세그려.”

.”

 

 말을 계속 이으려던 임선달은 말을 잠시 잊은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미남자의 머리를 노려보았다.

 

 “! 자네. 머리 꼴이 그게 무엇인가? 얼굴에 귀태가 흐르는 것이 분명, 어느 지체 높은 사대부의 적자인 듯한데. 신체발부는 수지부모 하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 부모께 물려받은 귀한 신체를 어찌 함부로 훼손하였는가!”

 “저기 님아. 혹시 컨셉? 제 머리카락이 뭐 문제라도?”

 “! 어찌 사대부가 팔천의 하나인 천한 중놈도 아니고 머리를 그리 짧게 자른단 말인가. 효는 나라의 근본이자, 근간. 성리학을 국시로 받든 아름다운 군자의 나라에서 어찌, 사대부 자제가 어찌!”

저기 님아. 노잼인데. 아니 내로남불 쩌시네님 직군 버퍼러 클래스인 몽크잖아요. 자기는 머머리면서.”

 “그게 무슨 말인가?”

 “. 머리카락 한 올도 없다고요.”

 “뭐라? 그 무슨.”

 

임선달은 머리를 만져봤으나 상투가 잡히지 않았다.

 

" , , 이게? 끄아아아아!"

 

임선달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자 허전한 민머리를 마치 목탁을 치는 중처럼 찰싹찰싹 두들겼다.

 

이런, 이럴수가.”

 

찰지게 찰떡 찧는 소리에 절망한 그는 결국 뒤로 나자빠졌다. 오직 외길인 군자의 길만을 걷던 선비 임선달그는 이제 평소 팔천 중 하나라 하여 멸시하던 승려인 몽크(무승)로 전직했다.

 

* * *

 

임선달은 바닥에 주저앉아 동공이 풀린 채로 축 늘어져 망부석처럼 미동도 없이 굳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흥미롭게 지켜보던 미남자는 곧 질렸는지 이맛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 컨셉 질도 좋지만 좀 과하네요. 장인 정신 쩌시네. 여기 계속 이러고 있을 것임? 컨셉 한번 괴랄하십니다. 혹시 겜방(게임방송) ?”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던 임선달은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뭐라, ? ! 이보시게 도령. 갱방이라는 절간이 어느 산속에 박혀있는지 모르네만!”

 

임선달은 흥분하여 차오르는 숨을 잠시 고르며 말을 이었다.

 

내 꼴이 현지하고 참담하여 잠시 각주구검 하였으나, 어이 군자의 길을 걷는 선비에게 담하용이 한단 말인가. 그게 사대부 자제로써 할 언사인가! 도령은 언사를 과물탄개 각골 함으로써 필히 언사가 되어 바로 잡으시게.(의역: 지금 내가 잠깐 정신 나가서 병신으로 보이나 본데 말조심해라. 네 집안에서 그리 가르치더냐! 앞으로 말조심해서 훌. . . 애새끼로 자라서 싸가지 고쳐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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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짧은 음향에 이어 낯설지 않은 남녀노소 분간하기 힘든 기계음이 들렸다.

 

난신적자?”

 

임선달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곧 눈썹 양 끝을 사납게 치켰다. 감히 선비의 머리를 이 꼴로 만든 분노였다.

 

네 이놈! 이번에야말로 내, 이 언월도로.”

 

임선달은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본인의 사랑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허전한 마음에 오른손을 두어 번 쥐었다 폈다.

아쉬움은 잠깐이었다.

 

. 칼이 없기로서니 네놈을 때려죽이지 못할쏘냐! 내가 바로 군자의 길을 걷는 선비오, 선달이니. 난신적자 이놈!”

 

버럭 노성을 터트린 임선달은 어깨가 순간 뻣뻣해지고 오른 손목에 묵직함을 느껴 의아하여 팔을 들어 올렸다.

 

에구머니나!”

 

본인이 인식도 못 할 사이 손아귀에 언월도와 비슷하게 생겨먹은 대도가 쥐어진 것이다.

철그렁!

화들짝 놀라 본인도 모르게 손에 쥔 것을 팔을 뻗어 던짐과 동시에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쪽으로 접어 올렸다.

 

이게 무슨?”

 

의아함을 제대로 음미할 새도 없이 임선달과 미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뭐 하세요?”

 

미남자의 뚱한 말에 임선달은 민망한 자세 그대로 몸을 굳었다.

 

선비 체면에 이 어인 견망인가.’(의역: 망신, 망신 개망신.^)’

 

임선달은 망측스럽게 올라간 다리를 힘있게 진각을 밟고 엉거주춤하게 뻗은 손을 빠르게 접었다가 강맹한 기세로 몇 번 내질렀다.

 

하압! 허허. 오늘따라 이 각이 안 나오네, 각이. 군자의 길은 수행의 길이기도 하지. - 허헛. 흠흠. 어허허허. 나는야, 선달.”

 

.”

 

주먹으로 입을 가리면서 슬며시 눈치를 살피는 우리의 임선달은 묵묵하게 바라보는 미남자의 시선에 괜스레 뜨끔했다.

 

하아압! 용호투! 제 삼식. 오초!”

 

기마자세를 취하고 양손을 단전 아래로 모으고는 그대로 보법을 밟아 순식간에 당도하여 쌍수를 펼쳐 그대로 미남자의 빗장뼈 쪽으로 빠르게 내려가다가 머리 뒤로 절도 있게 올렸다.

 

아뵤오오~.” 잔망. “끼요오호오옷!” 경망.

 

기합 소리에 동작을 맞추어 머리를 방울뱀처럼 흔들었다. 얼쑤~ 지화자 좋고!

임선달은 종아리에 힘을 주고 허리를 당겨진 활시위처럼 뒤로 꺾으며 제 키보다 높게 몸을 띄웠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3회 돌은 후 착지하자마자 옆으로 다리를 뻗으며 세 번에 나누어 올려 찼다.

, , 하압!”

 

다리를 접어 땅에 닿자마자 교차하여 왼 다리를 뒤로 빼 뒤돌려차기를 멋지게 성공시켰다.

 

 

후우우. 어떤가? 내 박투가. 가문에서 비전으로 전해지는 용호투일세.”

 

미남자는 성의 없게 박수쳤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 ~ 멋있네요. 누가 후원이라도 쐈나 보죠? 그나저나 뇌지컬 상당하시네. 몽크는 컨 난이도가 높은 편인데.”

 

이 고을 방언은 너무 고약하군.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겠네만. 좋게 봐주는 거 같아 고마우이. 그나저나 도령 내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네.”

 

물어보세요.”

 

임선달은 된침을 몇 번 삼켰다.

 

이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내가 평소 애용하는 애도인 언월도가 없어 아쉽다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 글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도와 비슷하게 생겨 먹은 대도가 내 손에 쥐어져 있던 게 아닌가. 허허. 저기로 던졌 어허? 분명 저기에 있었는데. 도령. 내가 실없이 자네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이. 참말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네.”

 

글레이브 말하는 거면 지금 님 손에 있잖아요.”

 

미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직함을 느껴 보니 저만치 던져 버린 대도가 어느새 손아귀에 있었다.

 

으아아핫허어어어!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놀라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전과 같은 우를 반복할 수는 없어 급히 비명을 감탄사로 바꾸었지만, 모양 빠지는 소리만 나왔다.

 

그야 인벤토리에 귀속된 아이템이잖아요. 죽어서 떨구지 않은 이상 떨어지면 인벤토리 안으로 다시 들어가잖아요. 설마 VR 게임 쌩 초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구먼. 그런데 여기가 정녕 어디인가? 주변이 산이 없어 탁 트인 거로 보아 변방인 듯한데. 사람들 복장도 특이하고. 서북면인가?”

 

아니, 아니.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진짜 처음이에요? 방송하시는 분이? 대박이네. 진짜 뇌지컬 쩐다. 잘 보세요.”

 

눈을 감은 미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이보시게. 뒷간이라도 급하신가?”

 

미남자의 손에 작은 투척용 도끼가 나타나 쥐어졌다.

 

보통 투구나, 보조 무기는 비전투시, 편의상 인벤토리에 넣거든요. 바로 넣다 꺼내기가 쉽지 않아요. 보통은 물건 꺼낼 때 인벤토리 창을 아예 열던가 하지. 근데 그게 좀 번거롭거든요. 저도 뇌지컬 어디서 후달리는 편은 아닌데. 님 쩌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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