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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14 구작가
작성
15.04.13 22:47
조회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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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ünter Grass. 1927.10.16-2015.4.13


제가 귄터 그라스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갓 대학교에 입학할 때였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을 죽 둘러보는데 넙치라는 소설이 있더군요. 제목도, 표지도 제가 좋아하는 ‘비꼼’의 의도가 있을 것 같아 빌려서 보았습니다. 그 날 저는 그라스가 알려준 풍성한 문화의 향연과 사색적인 질문의 정찬을 맛보는 한 명의 고객이 되었습니다.


귄터 그라스의 넙치는 원시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만들어 왔고 소비해 온 정찬(음식이야말로 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죠)의 시대적 변화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라스는 ‘넙치’라는 하나의 사물이자 주인공을 통해 많은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문명은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여성이 왜 주변적인 위치로 물러나 있는가? 왜 폭력이 정당화되는가? 왜 이 야만적인 문명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도 아직도 부서지지 않는 기념탑처럼 당당히 서 있는가?

 

그라스는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는 그런 시대를 통과해야만 했던 여성들을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시킵니다. 그 시대를 감내하고, 그 시대를 삭여야만 했던 여성들을 등장시키는 그라스는 절대 그 여성들을 딱딱한 군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유연하고 재기발랄한 사람들 뿐이죠.


넙치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되고(‘품위있게 물러나라!’), 여성중심의 사회를 배후에서 돕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요?


그라스는 소설 속에서 ‘3’이라는 숫자를 대단히 강조합니다. 3은 무수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3은 1와 2의 결합이며, 자식이고, 입체와 부피를 상징하지요. 3은 1과 2를 중재하고 보완합니다. 3은 완전무결한 신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3은 ‘제3의 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라스가 꿈꾸고 있는 해결책은 결국 제3의 길인 것일까요? 물론 소설은 직접적으로 답하려 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저는 그 후로 양철북도 보고 그라스의 여러 글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넙치만큼 저를 들뜨게 하고 즐겁게 하고 고심하게 한 그라스의 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멸의 명성을 보장할 글만이 이제 우리 주위를 떠돌 것입니다.


 작가란 패배자들이 서 있던 변두리를 서성거리면서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어했으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내막 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 귄터 그라스



Comment ' 13

  • 작성자
    Lv.13 사하(娑霞)
    작성일
    15.04.13 23:06
    No. 1

    그래도 양철북이 한국에서는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요? 제목만이라도 들어본 분들이 많으실 듯.
    그리고 한국 보수성향인 분들이 싫어하시는 분이셨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즘 작가들 별세 소식을 자주 듣는 것 같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구작가
    작성일
    15.04.13 23:09
    No. 2

    작품만큼 논란도 많고,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던 작가입니다.
    다만, 지금만큼은 논란보다는 추모를 우선하고 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5.04.13 23:12
    No. 3

    SS 친위대 경력 꼭꼭 숨기다 들통난 후로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구작가
    작성일
    15.04.13 23:16
    No. 4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주홍글씨입니다. 차라리 작가가 솔직하게 고백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해보고는 합니다. 하지만 복수불반분, 그가 작가로서 쌓은 명성만큼 그의 오점도 영원히 남겠지요. 다만 거장이 스러졌는데 추모글 한 줄 쓰지 않는 것은 영 그렇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管産
    작성일
    15.04.13 23:25
    No. 5

    친위대 경력은 스스로 고백한 것 아니었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구작가
    작성일
    15.04.13 23:32
    No. 6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밝혀진 후에 인정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라앤주
    작성일
    15.04.13 23:35
    No. 7

    거기까지는 몰랐네요. 에효, 양철북을 좋아해서...
    '넙치'는 읽다가 포기했지만...
    서정주 경우도 있지만, 문학과 인간을 별개로 볼 수는 없죠.
    여엉감님 말씀처럼, 그의 이름이 남아 있는 한 명성과 오점이 함께 가겠네요. 슬픈 일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민가닌
    작성일
    15.04.13 23:35
    No. 8

    한일월드컵때 초청되지않았었나여?
    그래도 천수를 누리셨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민가닌
    작성일
    15.04.13 23:40
    No. 9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logId=1356192&userId=linegang

    친위대 사건은 본인이 고백한거로 알고 있어서 찾아봤는데, 맞나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탄탄비
    작성일
    15.04.13 23:50
    No. 10

    숨긴것 맞습니다.
    일반군인으로 징집당한 것처럼 말하다가 나중에 고백했는데 이걸 스스로 고백했다, 고 하면 그렇게 말 할 수도 있겠네요.
    특히나 독일인들은 귄터 엄청나게 싫어합니다. 전쟁피해를 입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7 민가닌
    작성일
    15.04.14 00:21
    No. 11

    아그럼 자의적으로 친위대 활동한건가요?
    한국도 친일파는 아우 싫어하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탄탄비
    작성일
    15.04.14 01:35
    No. 12

    친위대는 징집이 아니라 모집입니다.
    친일파로 예를 들면 친일 했던 사람이 군대 끌려갔었을 뿐이라고 친일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나중에 친일 했었다고 자백하는 거죠. 말년 즈음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7 민가닌
    작성일
    15.04.14 02:21
    No. 13

    그는 당시 또래와 마찬가지로 징집통지서를 받았고, 17세에 드레스덴에 도착했으며 도착한 뒤에야 자신이 친위대 일원이 됐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친위대라는 사실에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치 전력이 죄의식으로 작용해 큰 부담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라스는 나치 전력을 포함한 전쟁 회고록 ‘양파 벗기기’를 다음달 출간한다.

    말미에 이런 글이 있어서 헷갈렸네요. 음... 블로그의 잘못이거나, 돌려말하는거 같긴하네요. 친위대라면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히 모집일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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