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ünter Grass. 1927.10.16-2015.4.13
제가 귄터 그라스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갓 대학교에 입학할 때였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을 죽 둘러보는데 넙치라는 소설이 있더군요. 제목도, 표지도 제가 좋아하는 ‘비꼼’의 의도가 있을 것 같아 빌려서 보았습니다. 그 날 저는 그라스가 알려준 풍성한 문화의 향연과 사색적인 질문의 정찬을 맛보는 한 명의 고객이 되었습니다.
귄터 그라스의 넙치는 원시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만들어 왔고 소비해 온 정찬(음식이야말로 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죠)의 시대적 변화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라스는 ‘넙치’라는 하나의 사물이자 주인공을 통해 많은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문명은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여성이 왜 주변적인 위치로 물러나 있는가? 왜 폭력이 정당화되는가? 왜 이 야만적인 문명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도 아직도 부서지지 않는 기념탑처럼 당당히 서 있는가?
그라스는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는 그런 시대를 통과해야만 했던 여성들을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시킵니다. 그 시대를 감내하고, 그 시대를 삭여야만 했던 여성들을 등장시키는 그라스는 절대 그 여성들을 딱딱한 군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유연하고 재기발랄한 사람들 뿐이죠.
넙치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되고(‘품위있게 물러나라!’), 여성중심의 사회를 배후에서 돕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요?
그라스는 소설 속에서 ‘3’이라는 숫자를 대단히 강조합니다. 3은 무수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3은 1와 2의 결합이며, 자식이고, 입체와 부피를 상징하지요. 3은 1과 2를 중재하고 보완합니다. 3은 완전무결한 신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3은 ‘제3의 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라스가 꿈꾸고 있는 해결책은 결국 제3의 길인 것일까요? 물론 소설은 직접적으로 답하려 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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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후로 양철북도 보고 그라스의 여러 글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넙치만큼 저를 들뜨게 하고 즐겁게 하고 고심하게 한 그라스의 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멸의 명성을 보장할 글만이 이제 우리 주위를 떠돌 것입니다.
작가란 패배자들이 서 있던 변두리를 서성거리면서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어했으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내막 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 귄터 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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