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필리핀에 갔었어요. 어렸고 여행하러 간 것이라 그저 놀러만 다녔어요. 세부와 마닐라에서 놀다가 다바오라는 곳에 예쁜 곳이 많다해서 또 갔죠. 당시 만원이 500페소.
사실 유럽에 가려 했는데 왜 그랬는지 갑작스럽게 동남아로 돌렸어요. 어쨌든 거기서 놀다가 다바오에서 여러 한국인 형들을 만났습니다.
형들은 거기 어학원에 공부하러 온 것이었고 주말마다 나오더군요. 주중에 마사지 샵에서 만나서 엄청 반가웠어요. 당시에 다바오라는 도시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고 그만큼 만나면 반가웠죠.
거기서 그 형들과 있다가 주말에 같이 룸에 갔습니다. 외국인들을 위한 룸이었는데 하필 업주가 한국인인지 한국식 노래방기계가 있어서 정말 재밌었어요.
당시 룸 비가 두 당 천 페소였어요. 한화로 2만원. 다섯이서 십만원인데 그거면 잭 다니엘, 블랙 라벨이 들어왔고 맥주무한에 과일안주 무제한. 돈에 대한 감각이 사라질만 했습니다.
그렇게 네 시간을 놀고 거나하게 취해서 형들과 같이 호텔 지하의 그곳에 갔습니다. 최대배팅액이 5만원이하. 하루에 환전 가능한 돈이 백만원. 정해져 있었어요.
거기서 저는 십만원을 환전했습니다. 오천페소를 칩으로 바꾸니 열개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으로 간 곳이 룰렛이었습니다. 모든 게임 룰을 모르니 룰렛이 제일 만만했어요.
이미 어떤 형이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룰렛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54까지 숫자가 있고 숫자마다 35배를 받았어요. 그리고 1부터 9, 10에서 18씩 9단위 배팅 가능하고 줄마다 배팅 가능했어요. 줄 배팅은 2배 9단위는 3배인가 그랬어요.
그 형은 10페소짜리 칩. 그니까 200원을 배팅하는데 ㅋㅋ 34개의 공간에 배팅을 했어요. 딸 확률이 60퍼센트라고. 이렇게 10페소씩 모아서 버티는 게 최고라고. ㅋㅋㅋㅋ 저는 맨처음에 빵터졌지만 그 형은 진지했어요. 8년전 서른 두살이었던 그 형. ㅋㅋ
갑자기 저도 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겁이 없었나봐요. 확률 54분의 1에 제가 가지고 있던 칩의 30퍼센트를 걸었어요. 한국돈 3만원.
제가 건 숫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팀 던컨의 백넘버 21이었죠.
겁없이 3만원을 21번에 놓았는데.. 거기서 룰렛을 하는 모든 분들이 그 형처럼 적은 돈을 많이 깔았어요. 그러니 21번에 3만원을 거는 제가 미친놈처럼 보였겠죠. 모두가 헐! 뻑! 왓더 크레이지! 아유슈얼? 오마이갓! 맨! 유아 퍼킹 어썸!
저는 왜 그랬을까요? 제가 정말 확신에 차서 21번에 걸었더니 지금껏 구경만 하던 분들도 슬며시 따라서 걸더군요. 그리고 돌려진 룰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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