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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왕의 남자'(개그 패러디)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4.03.12 21:05
조회
1,295

<무대 설명>
처선이 한쪽에 시립한 가운데 공길과 연산이 불빛을 받으며 그림자 인형 놀이를 하고 있다.

연산 "(느끼하게)이리 오너라, 길아."
공길 "(교태를 부리며)아이 참...." ㅡㅡ공길 인형, 연산 인형에게 등을 돌린다.
연산 "어허! 이리 와 보라는대두.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ㅡㅡ연산 인형, 공길 인형에게 다가간다.
공길 "전하한테는 녹수 마마가 계시온데 소인은 왜 자꾸 찾사옵니까?"
연산 "허허. 녹수는 녹수고 길이 넌 너 아니더냐."
공길 "흥! 소인이 비록 천한 몸이기는 해도 양다리 걸치는 총애는 그리 달갑지 않사옵니다."
처선 "(한쪽에 계속 시립한 채 중얼거린다)양다리? 문어 다리겠지."
연산 "왕은 원래 다리가 많은 법이니라.(무안하게 웃으며 공길을 와락 껴안았다가 그 자세로 굳어 버린다.)"
공길 "(심상찮은 기색을 느끼고)왜 그러시옵니까, 전하?"
연산 "(코를 움켜쥐며)너.... 옷 언제 갈아입었냐?"
공길 "(부끄러워 고개를 모로 꼬며)한 보름 되었습지요."
연산 "보름씩이나!"
공길 "냄새가....나옵니까?"
연산 "진동을 한다! 이놈 이거, 도대체가 왕의 품에 안길 기본 자세가 안 돼 있는 놈이잖아!"
공길 "아이, 냄새쯤이야 이 미모로 능히 상쇄되는 것 아닙니까."
연산 "그렇긴 하다마는.... 생긴 건 안 그런 녀석이 왜 그리 게으르냐?"
공길 "(볼멘 소리로)내가 뭐 옷 갈아입는 것이 귀찮아서 안 갈아입는 건가."
연산 "귀찮아서가 아니면?"
공길 "이 옷은.... 그 사람이 소인에게 선사하였던 옷이라서.... "
연산 "그 사람이라니?"
공길 "아이, 그런 사람이 있사옵니다."
연산 "그놈이구나! 장생! 그렇지?"
공길 "......"
연산 "왜 대답을 못해? 그놈이지?"
공길 "......  "
연산 "(질투에 후끈 달아올라)대답을 해!"
공길 "(그제서야 뾰루퉁하게)말없는 시인."
연산 "말없는 부인! 따라해. 말없는 부인!"
공길 "소인은 전하를 속이고 싶지 않사옵니다."
연산 "음.... 그건 기특하구나. 벗어."
공길 "네?"
연산 "그 냄새나는 누더기, 벗으라고!"
공길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이걸 벗으라굽쇼?"
연산 "아, 갈아입을 옷을 주면 될 것 아니냐. 처선아!"
처선 "예, 전하."

비단옷을 받쳐든 처선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연산 "그러잖아도 진작부터 새 비단옷을 선물하고 싶었단다."
공길 "(처선에게서 옷을 받아들고는 좋아서 환성을 지른다.)색깔이 너무 곱사옵니다, 전하!"
연산 "(흐뭇하게)마음에 드느냐?"
공길 "마음에 들고말굽쇼! 전하의 성은이 아니옵니까."
연산 "허허.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저렇게도 기뻐하는군."
공길 "이렇게 멋진 성은을 입게 되다니, 꿈만 같사옵니다."
연산 "(거북한 헛기침을 하며)어째 듣기가 좀 민망하구나. 성은을 입다니.... "
공길 "당장 갈아입고 오겠사옵니다!(병풍 뒤로 들어간다.)"
연산 "(아쉬운 듯)그냥 여기서 갈아입지 뭘 또.... "

조금전부터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던 무수리, 허둥지둥 무대를 가로질러 간다.
그에 따라 공길의 처소의 조명은 꺼지고 녹수의 처소의 조명이 켜진다.
녹수, 경대를 앞에 놓고 상궁의 손에 머리를 단장하도록 맡기고 있던 참이다.

무수리 "(자지러지게 뛰어들며)크, 크, 큰일났사옵니다! 녹수 마마!"
녹수 "(의젓하게)또 무슨 일로 방정이냐?"
무수리 "(기분이 상하여)또...라뇨?"
녹수 "아니다. 넘어가자. 그래, 무슨 일인데 방정을 떠느냐?"
무수리 "방정이라뇨?"
녹수 "(짜증스레)넘어가자고 했지? 지금 반항이야?"
무수리 "아, 아니옵니다."
녹수 "그래, 무슨 일로 그러느냐?"
무수리 "그 자가.... 공길이.... "
녹수 "(단박 긴장하며)공길이 왜?"
무수리 "마침내 성은을 입었사옵니다!"
녹수.김상궁 "(동시에)뭐어!"
녹수 "(부르르 몸을 떨며)올 것이 왔구나!"
김상궁 "어쩜.... 망칙하기도 하여라!"
녹수 "(침중한 얼굴로)망칙할 것 없다. 공길 그 자가 비록 사내이긴 해도 미색이 어지간한 여인들보다 뛰어나지 않던?"
김상궁. 무수리 "(힐끗 서로의 얼굴에 눈길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인다)하긴 그렇습지요."
녹수 "(한숨을 쉬며)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야. 전하는 사내 아니시더냐? 사내들이란 본시 미색에는 혹하게 마련이야. 그게 사내들이지.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던? (TV CF처럼 도전적인 표정을 잠깐 지으며)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김상궁 "(여전히 민망한 듯)그렇더라도.... 상감이신데.... "
녹수 "상감의 사랑은 특히 더 날렵하게 움직이지. 총애를 받은 여인이 어디 한둘이더냐? 조금 반반하게 생겼다 싶기만 하면 그저 눈을 못 떼시는 게 상감 버릇 아니시더냐."
무수리 "옳은 말씀이세요. 요즘 전하께서 쇤네를 보시는 눈길이 어쩐지.... "
녹수 "(단박 눈썹을 꼿꼿이 세우며)뭐야?"
김상궁 "(격분하여)고약한 것! 어디서 감히 주둥아리를 놀리는 게야!"
녹수 "(흡족한 얼굴로)잘한다, 김상궁. 계속해."
김상궁 "해도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어! 사람이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녹수 "(흐뭇하게)계속해, 계속해."
김상궁 "지엄하신 상감께서 고작 무수리 따위에게 눈길을 주실 리 있어? 어디서 허튼 소리를!"
녹수 "암, 암. 계속해."
김상궁 "지금 현재 전하의 눈길이 어디에 쏠려 계신데! 이 김상감에게 쏠린 전하의 눈길이 왜 네년 따위에게 가? 그게 말이 돼?"
녹수 "(얼굴이 딱 굳는다.)김상....궁?"
김상궁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허둥거리며)그, 그게....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옵고.... "
녹수 "김상궁 자네 방금 뭐라고 했지?"
김상궁 "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사옵니다."
녹수 "(칼처럼 매섭게)다시 말해 봐, 김상궁. 전하께서 자네를 보는 눈길이 어쨌다고?"
김상궁 "아니라니까요. 제가 잠깐 헛소리를.... "
녹수 "우리,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구. 넌 내 곁에서 시중을 드는 상궁이야. 라이벌이 아니라고."
김상궁 "그, 그러믄요. 쇤네가 어떻게 감히 마마의 라이벌이 될 수 있겠사옵니까."
녹수 "확실하지?"
김상궁 "그러믄요, 그러믄요."
녹수 "(홱 무수리 쪽을 돌아보며)너도! 너도 정신차려!"
무수리 "(기가 죽어)예.... "
녹수 "어디서 감히.... 넌 무수리야, 무수리! 내 라이벌이 아냐!"
무수리 "예.... "
녹수 "따라해 봐. 난 무수리다!"
무수리 "(시무룩하게)난 무수리다."
녹수 "내가 왜 이럴까! 궁 밖에서는 안 이랬는데 내가 왜 이럴까!"
무수리 "(시무룩하게)내가 왜 이럴까. 궁 밖에서는 안 이랬는데 내가 왜 이럴까."
녹수 "너, 아직도 너가 내 라이벌이라 생각하니?"
무수리 "아니오.... "
김상궁 "당연하지! 상궁도 라이벌이 못 되는데 감히 무수리 따위가.... "
무수리 "(대뜸 반항적으로)어머머? 제가 어디가 어때서요?"
김상궁 "몰라서 묻니?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무수리 "(코웃음을 치며)사람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여자 팔자는 시간 문제예요. 성은 한번 입으면 저도 곧바로 귀인이에요. 이거 왜 이래요?"
김상궁 "(가소롭다는 듯)요즘 왜 이렇게 한탕주의가 늘어났지? 여자 팔자가 뭐 어쩌고 어째?"
녹수 "어이, 측근들ㅡ "
김상궁 "지금 나랑 맞먹겠다는 거야? 하극상이야?"
무수리 "여자 대 여자로서 별로 꿇릴 것 없다는 거죠."
녹수 "어이ㅡ "
김상궁 "꿇릴 게 없어? 정말 없을까? 거울이나 보고 하는 소리야?
무수리 "거울을 왜 봐요? 제 미모는 제가 잘 알아요."
녹수 "어이ㅡ "
김상궁 "착각에서 깨어나. 넌 성은을 입을 주제가 못 돼."
무수리 "방금 그 발언, 책임질 수 있어요?"
녹수 "어이ㅡ "
김상궁 "책임지지. 여자는 여자가 정확하게 보는 법이야. 어느 눈먼 성은이 하필이면 너한테 가겠니?"
무수리 "상궁에게 가는 성은이 무수리에게 오지 말란 법 있어요?"
녹수 "(빽 소리지른다.)측근들!"
김상궁 "죄, 죄송합니다."
무수리 "잘못했사와요, 마마."
녹수 "제발 이러지들 좀 마, 응?  이러면 나 섭해."
김상궁 "주의하겠사옵니다."
무수리 "다시는 안 이럴게요, 마마."
녹수 "(피곤한 한숨을 쉬며)이거야 측근이라고 있는 것들이.... 아무튼 이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 내, 공길 그자와 정식으로 담판을 지어야겠어. 가자, 김상궁."
김상궁 "무얼....담판 지으시겠다는 것이온지요?"
녹수 "몰라서 묻느냐? 상감이란 남자가 누구의 남자인지 그 자로 하여금 똑똑히 깨닫게 해줘야겠다!"
김상궁 "(회의적으로)자신...있으세요?"
녹수 "(분개하며)당연히 있지! 내가 누구니? 카리스마 하면 장록수 아니니?"
김상궁 "그래도.... 저쪽의 포스도 만만치 않던 걸입쇼."
녹수 "걱정할 걸 걱정해! 포스 장! 내 별명, 아직도 모르니? (문득 기세가 가라앉으며)뭐....정.... 정 안 되면.... "
김상궁 "정 안 되면?"
녹수 "그땐 공길 그 자를 유혹하면 돼."
김상궁 "(경악하여)예에?"
녹수 "놀라기는. 생각해 봐. 그 자가 나한테 빠지면 더이상은 상감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지 않겠느냐고."
김상궁 "그렇긴 하겠습지요마는.... "
녹수 "뭐해? 출발해, 출발."

녹수, 김상궁을 앞세우고 기세등등하게 무대를 가로질러 간다.
그에 따라, 녹수 처소의 조명은 꺼지고 공길 처소의 조명이 켜진다.
공길은 경대를 앞에 놓고 립스틱을 바르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다.

김상궁 "희빈 마마 듭시오ㅡ "
녹수 "뭐야. 화장하는 중이었어?"
김상궁 "(기성을 지르며)어머어! 그 립스틱 색깔 너무 이쁘다! 새로 나온 건가봐. 어디 거야? 응?"
녹수 "김상궁ㅡ "
김상궁 "나 한번 발라 보면 안될까? 한 번만! 응? 응?"
녹수 "김상궁ㅡ "
김상궁 "이런 색깔 처음 봐, 나. 어디 거냐니까?"
녹수 "김상궁!"
김상궁 "죄송하옵니다, 마마.... "
녹수 "그래, 어디 거야? ...가 아니라, 너가 왜 화장을 해! 사내가 왜!"
공길 "(태연하게)사내는 화장 좀 하면 아니 되옵니까?"
녹수 "화장은 여자의 특권이라구! 가뜩이나 사내들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여자들이 누리는 몇 안 되는 특권마저 사내들이 넘보는 건 너무 뻔뻔스럽다고 생각 안해?"
공길 "(태연하게)전 어차피 사내로서의 특권 따위는 누리고 있지 않은걸요."
녹수 "너만 누리지 못하는 거니? 신분제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는.... "
김상궁 "(뒤에서 넌지시)마마, 사회학적 고찰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어서 작전 개시를 하셔얍지요."
녹수 "맞어. 내 정신 좀 봐. 작전 1! (갑자기 냉철한 실무자의 태도를 취하며)우리, 분명히 하자구. 상감은 너의 것이 아니야. 너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알아들어?"
공길 "그렇긴 합지요."
녹수 "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공길 "상감께서는 이 나라 억조창생의 것이옵지요. 어떻게 소인이 독점할 수가 있겠습니까요."
녹수 "(고개를 갸우뚱하며 김상궁에게)이건 또 예상치 못한 반응인데? 상감을 포기하겠다는 소리야, 못 하겠다는 소리야?"
김상궁 "작전 2, 작전 2."
녹수 "작전 2! (생글생글 웃으며 공길을 향해 바싹 다가간다.)화장 따윌 왜 해? 그런 거 안해도 충분히 이쁜 사람이."

장생, 문득 녹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마치 그제서야 녹수의 미모에 눈을 뜨기라도 한 양....

공길 "마마.... "
녹수 "(상냥하게)응. 얘기해."
공길 "화장품 바꾸셔야겠습니다."
녹수 "....!"
공길 "피부가 엉망이옵니다.(그러고는 다시 경대 앞으로 가 화장에 몰두한다.)"
녹수 "(치욕에 몸을 떨며)이 자가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야, 공길!"
공길 "네?"
녹수 "(씨근덕거리며 공길에게 다가서며)너가그렇게 잘났어? 너가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문득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아닌게아니라.... 정말 예쁘긴 엄청 예쁘구나."
공길 "(쑥스러운 얼굴로)원, 별 말씀을 다.... "
녹수 "아니야. 여자의 눈에도 이렇듯 아리따우니 사내의 눈에는 꽃이 따로 없지 않겠느냐. 상감께서 너에게 매혹되신 것도 충분히 이해하겠다. "
공길 "(겸손하게)이해하시겠습니까?"
녹수 "(부르르 몸을 떨며)이 살인 미소! 간드러진 눈웃음 뒤에 이글거리는  이 뜨거운 열정!"
공길 "(석연치 않은 얼굴로)열정?"
녹수 "너무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보지 말아 줘! 내 마음이 흔들리려 해. 아니, 이미 흔들렸어."
공길 "소인이 흔들진 않았는데.... "
김상궁 "(뒤에서 끼어든다.)마마, 정신차리세요. 원래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잖습니까."
녹수 "괜찮아, 괜찮아. 아무튼 나오는 결과는 같잖아. 이 일을 어쩔꼬. 내 마음을 이 남정네가 흔들어 버렸어."
공길 "(집요하게 다가오는 녹수로부터 이리저리 눈길을 피하며)저기.... 마마.... 이러시면 곤란하옵니다."
녹수 "(다시 부르르 몸을 떨며)이 짜릿한 목소리! 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공길 "(곤혹스럽게)그래두....웬만하면 거부하셔야 하지 않을까.... "
녹수 "이건 운명이야! 우리는 처음부터 사랑에 빠질 운명이었어!"
공길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상감이 있습니다."
녹수 "(맹렬한 성욕을 주체하기 힘들어 씨근덕거리는 목소리로)상감은 여기 없어. 지금 여기엔 너와 나 둘뿐이야."
김상궁 "저도 있사옵니다, 마마."
녹수 "(돌아보지도 않고, 여전히 씨근덕거리는 말투로)측근은 좀 빠져."
김상궁 "(시무룩하게)알았사옵니다."
녹수 "(시선은 여전히 공길에게 고정한 채, 여전히 열정적인 말투로)가끔 넌 나설 데 안 나설 데 분간을 못하더라, 김상궁. 제발 주제 파악 좀 해줘."
김상궁 "(토라져서)이미 빠졌사옵니다. 계속하시옵소서."
녹수 "이러면 안 되는데.... 상감에게 바쳐야 할 내 마음을 어쩌다가 당신에게 빼앗겨 버렸을까."
공길 "소인이 빼앗진 않았습니다요."
녹수 "(감정이 상한다.)자꾸 이상한 반응 보일래? 좀 진지하게 해."
공길 "어떻게 진지하게요?"
녹수 "러브씬에서 엉뚱하게 김빠지는 소리 좀 넣지 말란 말야."
공길 "러브씬요? 녹수 마마와 소인이?"
녹수 "왜? 우리 둘은 러브씬 찍지 말란 법 있어?"
공길 "원작에서 너무 벗어나는 건 곤란합니다요."
녹수 "독창성이 부족하군."
공길 "이 작품의 포인트는 어디까지나 왕과 공길의 관계에 있습니다요. 보십시오! 제목부터가 '왕의 남자' 아닙니까."

공길, 벽에 붙은 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를 가리킨다.
녹수, 공길이 가리키는 포스터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다가 씩씩거리며 포스트에 다가가, '왕의'와 '남자' 사이에다 '여자의'라고 적힌 종이쪽을 탁 덧붙인다.
그러자 '왕의 남자'가 '왕의 여자의 남자'로 바뀐다.

녹수 "(군소리 말라는 듯)해결됐지?"
공길 "......"
녹수 "이제 포인트는 너와 나 사이의 러브 스토리에 있는 거야. 막강한 권력자에게 속한 절세미인! 그 여인에게 매혹된 불나비! 질투에 눈이 먼 권력자가 사내를 해칠 것을 두려워한 여인은 사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으나....사내는 너무도 열정적이었고 여인은 너무도 외로웠기에.... 결국 사내의 열정 앞에서 허물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스토리는 이렇게 진행될 거야. 협조해!"
공길 "(내키지 않는 얼굴로)별로 매혹되지 않았는데.... "
녹수 "(위협조로)협조하랬지? 아아, 이제 어쩌면 좋아. 이제 우리 둘을 기다리는 운명은 어떤 것일까."
공길 "(투덜투덜)왜 내가 협조해야 하지?"
녹수 "자꾸 삐딱하게 굴래? (신경질적으로)이제 우리 둘을 기다리는 운명은 어떤 것일까!"
공길 "(어설픈 대로 녹수에게 장단을 맞추기 시작한다.)용서해 주오. 내 차라리 그대를 얻지 못해 피를 말리는 그리움에 시달릴지언정 그대를 위험한 길로 끌어들이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
녹수 "그런 소리 마오! 그대 없는 삶이 아무리 안전한들 그건 공허 그 자체인 것을.... "
공길 "공허한 삶이라도 위험한 삶보다는 낫지 않으리까?"
녹수 "그대 없는 안전보다는 그대와 함께 하는 위험을 이 몸은 택하리다!"

이때, '자알 헌다!' 하는 소리와 함께 장생이 등장한다.

녹수 "너는 광대 장생!"
공길 "(반갑게)자기!"
장생 "자기? 아직도 나를 자기라고 부를 자격 있어? 태도를 좀 분명히 해주기 바란다. 내 라이벌이 누구야? 상감이야, 이 여자야?"
녹수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김상궁을 홱 노려보며)이런 소리는 너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김상궁 "맞아! 무엄해! (녹수에게)한 템포 늦었을 뿐이옵니다."
장생 "당신은 빠져."
김상궁 "또 빠져야 해?"
장생 "바람을 참 다양하게 피우는구나, 너. 응?"
공길 "내가 무슨 바람을 피웠다고 그래? 난 가만 있는데 지들이 일방적으로 야단법석들인 걸 나더러 어쩌란 말야."
녹수 "공길!"
공길 "난 협조하기 싫었는데 자꾸 협조하라고 해서.... "
녹수 "(장생에게)왜 쓸데없이 나타나서 가뜩이나 복잡한 스토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거지? (포스터를 가리키며)보라구! 여기에 너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장생, 멀뚱멀뚱 포스터를 들여다보더니 '왕의 여자의 남자' 뒤에다 '의 남자'라 적힌 종이쪽을 다시 덧붙인다.
이제 제목은 '왕의 여자의 남자의 남자'가 된다.

장생 "있네. 끼어들 자리."
녹수 "......"
장생 "이제 포인트는 광대 장생과 공길의 끈끈한 사랑에 있는 거야. 막강한 권력자를 굴복시킨,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 그러나 그는 왕을 뿌리치고 한낱 비천한 광대 장생을 선택했다! 왜? 그 광대는 왕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왕이 휘두르는 속된 권력보다 영혼의 비상이 더 아름다우니까! 스토리는 이렇게 진행된다. 협조해. (녹수에게)넌 빠지고."
공길 "(투덜거리듯)또 협조하라고?"
장생 "영혼의 비상을 추구하자고."

이때, '영혼의 비상 좋아하네!' 하는 소리와 함께 연산이 처선과 함께 등장한다.

공길 "전하!"
녹수 "전하! 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연산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야말로 이 누추한 곳에 왜 얼씬거려? 나랑 경쟁해 보겠다는 거야, 뭐야?"
녹수 "소첩이 어찌 감히.... "
연산 "(장생에게)영혼의 비상을 추구하고 싶냐? 비상 한 사발 마실래? 사발을 비우기도 전에 영혼이 비상하게 될 거다."
장생 "(무안하게 웃으며)다 들으셨군요."
연산 "다 들었다마다! 뭐? 속된 권력? 속된 권력 맛 좀 볼 테야? 엉? 삼족이 멸하는 꼴을 봐야 정신들을 차릴 거야? 처선아!"
처선 "자나깨나 상감 조심! 삼족멸 후에 후회 말고 멸하기 전에 상감 조심!"
연산 "다들 똑똑히 들었냐?"
녹수 "권력으로 여인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사옵니다."
장생 "치사하게 굴지 마시지요, 상감.
김상궁 "맞사옵니다, 전하. 조금 치사하옵니다."
연산 "김상궁은 빠져."
처선 "빠지랍신다."
김상궁 "(불만스럽게)왜 다들 나만 보면 빠지라고들 하지?"

연산, 포스트를 향해 홱 매서운 눈길을 던지더니 녹수와 장생이 붙여 놓은 종이쪽들을 떼어낸다.

연산 "구질구질한 것들은 필요없어."
녹수.장생 "(불만스럽게)구질구질하다뇨?"
연산 "(단호하게)원작을 능가하는 패러디는 없는 법이야! 왕의 남자, 그거면 충분해!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언제나 마음은 허허로웠던 사나이! 권력을 내팽개치고 사랑을 좇을 것이냐? 사랑을 포기하고 권력을 지킬 것이냐? 잔인한 결정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야!"
녹수 "(입을 비죽이며)시시해."
장생 "맞어! 그리고 유치하고."
녹수 "맞어. 그리고 진부하고."
장생 "맞어. 그리고 통속적이야."
연산 "처선아!"
처선 "(다시)자나깨나 상감 조심! 삼족멸 후에 후회 말고 멸하기 전에 상감 조심!"
연산 "(공길에게)본인이 결정해. 이 작품 제목이 뭐야?"
공길 "이 작품의 제목은.... "
연산 "왕의 남자지?"
녹수 "왕의 여자의 남자지?"
장생 "왕의 여자의 남자의 남자지?"

공길, 포스트로 다가가 '왕의' 위에 '모든 이의'라 적힌 종이쪽을 덧붙인다.
제목은 '모든 이의 남자'가 된다.

공길 "(나르시시즘에 도취하여)모든 이의 남자! 모든 이가 원했던 남자! 너무나도 아름다왔기에 마주치는 모든 이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남자! 그를 본 사람은 모두 매혹되었고, 모두 파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숙명적인 매력이 피를 부른다! 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이옵니다."

잠시 벙 떠 있던 연산. 녹수. 장생, 일제히 우루루 공길에게 덤벼들어 쥐어박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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