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인터뷰 전문 보고 있는데, 요약본이랑 별 차이 없군요. 사실 기사는 신문사를 잘 선택하는게 중요하죠.
더 잘 살 수 있다면 왕정이라도 상관없다라는 이야기는 중우정치에서 벗어날 기반이 갖추진 사회에서 시대 착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예를 든 박정희 대통령이 플라톤의 철인정치의 예에 들어가면 모르겠으나, 철인정치와 박정희 대통령의 예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카이사르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발전시킨게 아니라, 이미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의 실패군인독재가 일어나 이미 공화정이 무너진 상황에서 카이사르가 출연을 했죠.
페리클레스의 예를 든 것도 오류가 보이는데, 당시 민주적 발전이 이루어진 까닭은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보다 페리클레스의 500인회와 민회개혁이 더 민주주의 체제에 부합했기 때문에 그리 평가하며, 그 체제를 통해 페리클레스가 계속적으로 재임하기는 하나 그 권력을 통해 독재체제를 구축하지 않았고 전쟁을 기피하여 반대여론으로 장군에서 쫒겨나기도 합니다.
핀란드에 우르호 케코넨 같은 경우도 20년간 재임을 했지만,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지는 않죠.
기존의 이야기와 중국의 대통령 선출 체제에 대하여, 인기영합주의적인 한국의 민주주의의 선출 방식보다 낫다라는 이야기까지 종합했을때,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가치를 낮게 잡는 경제 중심, 효율 중심에 물신론적인 사고 방식이라 생각이 듭니다.
가장 문제 발언은 1960년대에 민주주의가 정착했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같군요. 개발독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 선정착 경제 발전의 사례로는 포르투갈의 예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개발독재를 통한 발전 사례도 그 반대 사례도 세계에서는 많이 없죠. 민주화 이후 발전 사례도 존재하고요. 전체를 통해 일반화 시킬 어떤 이론으로 성립되기에는 하자가 많은 주장입니다.
게다가 그 개발독재가 일본에서 주창된 이유는 식민지의 정당화라는 상당히 정치적 이유와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주장은 상당히 전형적이지요. 386세대에 운동권에 대한 반감을 가진 집단에 속한 대학생들의 경우 이런 사고가 보편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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