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네덜란드 선적의 모리스호가 1616년에 동인도(인도네시아)에서 싣고온 화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디고(암청색 도료) - 354포
생사 - 40상자
도자기 - 2만 3023개
후추 - 1600포대
절인 생강 - 60항아리
정향나무 꽃 - 39680kg
이걸 고스란히 유럽까지 갖고온 상인이나 선장들은 때돈을 벌었겠지요.
지금에 비교하자면 당시의 해외무역은 벤처 사업보다 더 위험하고 빡신 사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500톤도 안 되는 나무 범선에 화물을 꾸역꾸역 실어서 산같은 폭풍우와 해적을 피해서 목적지까지 도달해야 했으니...
더구나 당시 서인도 제도 왕복은 500~600일, 브라질은 1년, 필리핀의 경우는 대략 5~6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보다 빠를 때도 있었습니다만...
중간에 기착항 마다 며칠씩 머물기도 하고, 폭풍이 불 때는 출항 못하고 죽치고 있는 때도 있으며, 해적들 피해 다니다 보니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네요.
1600년대 초 네덜란드 화물선들은 튼튼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서 북해와 대서양에서 활발히 활약했습니다. 한자동맹에 기항하는 4000척의 선박 중에 3000척이 네덜란드 선적이었지요.
이러다 보니 영국에서 나중에 항해조례를 터트리게 되는데,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와 한딱가리 치르기 전에 영국 사나포선들은 16세기 보다도 스페인 선박들을 더 많이 괴롭혔습니다.(...)
이걸 보고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과 그의 후임인 콜베르도 '질 수 없뜸!'...이라며 사나포선을 장려하여 스페인을 많이 털어먹었다는군요.(공인 금셔틀 스페인)
이렇게 활발한 해상진출(?)에 매진하던 유럽의 국가들은 재정이 튼실해지고 번창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시궁창이었습니다.
고기와 설탕은 평생 몇 번 밖에 구경하지 못했고, 삶을 연명해주는 빵을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겼습니다.(그래서 지금도 식사 전에 기도를 하는 풍습이 남아 있습죠.) 평균 수명은 20~25세 정도였고, 아이들의 30%가 청년이 되기도 전에 죽었습니다.
중세 말에 악명을 떨친 페스트는 이 시기에도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 넣었지요.
여기에 종교전쟁의 폭풍에서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후대 벨 에포크 시대도 그렇지만, 나름 화려하게 보이는 시대의 이면에는 밝은 만큼 어둠도 짙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극심한 생활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물론 그렇사옵니다. 보통 동아시아 무역에 가면 이익률이 2,000%까지도 가는 경우가 있어 유럽인들이 위험 부담을 많이 무릎쓰는 경우를 볼 수 있었사옵니다.
항해 기간은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쾌속 범선 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중국까지 200일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평균 수명의 경우에는 함정이 숨은 것이 영유아의 높은 사망률이 포함된 것이라.. 실제 5세 이상으로 올라가면 평균 수명은 45세 이상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스페인 보물선 약탈건은... 본문과 상관없지만 말씀을 하오셨으니.. 저도 리플을 달아드리오면.. 은 호송선단 플로테가 역사에서 털린 경우는 4차례 정도로 알고 있사옵니다.
영국 해적에 1번, 영국 해군에 1번, 네덜란드에 2번 말이옵니다. 플로테 자체의 방어력은 유럽 넘사벽급이라.. 공인 금셔틀 수준은 절대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동인도 무역은 약간의 예외가 있사오나, 그 지역 최대 무역국인 중국을 상대로는 멕시코 마제은의 유출이 심각했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아예 유럽산 상품이 안먹혀서 밸러스트까지 은으로 채워갈 단계로 알고 있사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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