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현대판이 양판이 되는 이유가 식상한 부분을 꾸준히 따온다는데 있습니다.
주인공만 먼치킨, 그것도 어떤 노력이나 댓가없이 기적으로 얻으면 그야말로 막장테크지요. 이런 현판은 안봐요.
능력이 생기는 당위성을 충분하게 주어야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가지고 성장하면서 경쟁자와 비교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장하는 모습은 흥미를 더해 줍니다.
그와 더불어서 주인공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수 없는 특이하면서, 우리의 정서에 부합되는 행동을 할때는 대단한 만족감을 느끼죠.
특히나 거대한 단체나 정부기관의 부조리를 타파할때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정도이죠.
그래서 대리만족도 우리 일반인이 하지못하는것을 개혁하고 고치는 부분에서 대단한 대리만족을 느낄수 있지요.
조폭이 나오면 마음에 안든다고요? 그럼 조폭이 왜 현실에 존재하는지 원인을 살피세요.
양아치가 나오면 이상하다고요? 양아치를 박멸하고 현실에 없으면 됩니다.
이런 저런 따지는 부분이 아닌 현실을 자세히 알다보면 그부분에서 일반인이 혼자 할수 없는 부분을 콕콕 찍어서 타파할때의 쾌감을 얻는것이죠.
하지만 소설이 비슷하게 나오면 이른바 클리셰라는 보호장벽을 덧친 글들은 진짜 짜증이 나죠.
한번 본것을 비슷하게 재편성하여 또 본다는것은 짜증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글은 새롭게 쓰여야 재미 있는것이죠. 비슷한 설정이나 비슷한 주인공은 참 답답함만 불러와서 안 보게 됩니다.
주인공이 다르면 같은 내용도 다르게 보여지지만, 엇비슷한 성격의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의 현판전개는 답답함이 가중됩니다.
댓글로 길게 썼지만, 게시글의 횡설수설을 납득합니다. 게시글 작성자 분이 문장가는 아니니까요 ^^
현판이라 쉬울 줄 알고 쓰던 글이 있는데, 쓰다 보니 더 어렵더라고요. ^^; 그래서 연중.
저는 현대를 배경으로 이능력자들의 배틀 또는 괴생명체들과 이능력자들의 대결 등이 취향입니다. 그외의 종류는 본적이 없어서(안 보게 되어서) 달리 의견을 드릴게 없네요.
다만, 그런 대리만족형? 현판들은 나름의 틈새를 잘 노린 것들이라 생각됩니다. 초용운님이 본문에 말씀 하셨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그런 망상을 제대로 건드렸다고 볼 수 있겠죠.
기존의 장르가, 작가의 손에서 잘 꾸며지고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그런 대리만족형 현판들은 작가의 손으로 독자의 속살을 꺼내여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찌 보면 막장 같지만, 그런 막장 같은 망상을 사람들은 종종 하기도 하니까. 거부감이 없는 것 아닐까도 생각하게 되네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소설 속의 화자와 작가를 동일시하면 안 되지만 장르문학에서는 두드러지게 그런 면이 보입니다. 작가 자체의 억압을 현실에서 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거지요. 다만 나의 스트레스 원을 다른 곳으로 이식하는 겁니다.
김 대리는 능력도 없으면서 항상 갈구기나 잘하는 멍청이, 제 일이나 잘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실제론 굽신거리면서 비위맞추는 거죠. 그것이 소설 속에서는 힘만 세고 무식한, 그래서 주인공에게 덤벼들지만 내가 때리면 한 방에 나가떨어질 캐릭터로 변신하는 겁니다.
비약인가요. 이러한 대리만족은 개인의 카타르시스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같은 사회에서 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온전하게 해소할 길이 없는 다른 이들의 욕망의 출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식 속에서 특이한 점은 실제로 나를 억압하는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병변을 그려내기에는 그 그림이 크고 또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것도 있습니다. 유기체와 같은 단 하나의 암세포만 떼어내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서 디스토피아로 여기고 아예 리셋 시켜야만 하는 사회가 출현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강력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를 못살게 굴지요. 그를 못살게 구는 사람들은 누구나 악이라고 판명할만한 대상(조폭 등)이고 사회적인 억압을 가하기 쉬운 기득권 계층입니다. 이 역시 선악에 따라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선악의 구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피아의 구별은 따로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유치하다고 여길 수 있는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살다보면 모두 우리는 세상이 선악의 기준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심지어 기준마저 희미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연과 변명을 모두 가리고 드러난 것만을 부각시켜서 너와 나의 구분, 그것을 가르는 세계. 이렇듯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한 쪽을 지우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깨끗한 세계입니다.(권선징악이든 디스토피아든 마찬가지로)
이 세계는 철저하게 단순하며 지극히 명료한 세계입니다. 나는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그것은 발본색원은 요원하고 그것을 대리만족할 상대의 적으로는 이미 이런 세계의 기반 위에 있으므로 깊지 못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주인공 자신의 입신양명입니다.
어쩌면 작가가 단순하게 그려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까지 나오는 것이 편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이러한 특징이 있는데 이래서 이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조금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처음 말씀하신 능력자물 같은 어반판타지 역시 대리만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대리만족이란 것은 각종 신화, 설화나 민담에 내포되어 원초적으로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요. 물론 대리만족이란 부분 자체가 전부를 차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작가란 등장 인물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것이고 특별한 주제를 담지 않는 대다수의 판타지, 무협, 라노벨 작품들은 전부 대리만족을 추구하고 있지요. 그것이 이곳 문학의 본성이고 읽지 않는 사람들이 하위문화다, 심하게는 자위물이다. 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왜 현대판타지는 대리만족을 추구하는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저급하고 말초적인 방식으로 추구하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죠. 물론 그런 것들도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곳에선 쓰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데 더 큰 문제는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란 것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힘을 얻고 히로인들과 사귀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적과 싸우는 건 구운몽 이전부터 있어온 이야기 구조입니다만 그것을 다루는 시각과 과정에 차별은 추구해야하는데 그럴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죠.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선 비판할 수 없지만 추구 하는 방식이 허접하다고는 이야기하기 충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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