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배경이 되는 소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판타지’의 시대가 왔죠. 문피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판타지-무협 장르가 대세이지만 적어도 그 이전의 유행이었던 게임판타지의 자리는 확실히 현대판타지가 빼앗았죠.
저도 참 현대판타지 좋아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현판이고요. 그런데 아무리 현판을 읽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현대판타지는 소위 어반판타지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주로 일반인들 모르게 이능력자들이 도심 속에서 싸우는 이능력자물, 초자연적 존재들이 나타나 세상이 뒤틀어지는 퇴마록 같은 소설들. 따지고 보면 배경만 현대지,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 등과 별반 다를 거 없는 글들입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현대판타지를 보면 대부분 능력자는 주인공뿐이고, 그 주인공 혼자서 기업을 세계 1위 수준으로 키우고 연예계 진출하고 조폭은 다 때려잡고 그러더군요 ㅡㅡ 뭔가 이상했습니다. 사실 이런 대리만족형 먼치킨 소설은 무협이랑 판타지, 겜판에도 있던 거긴 한데, 현대 배경에서 벌어지니 그 병맛스러움이 더 눈에 띄게 드러나더군요. 마치 인생막장의 백수가 판타지 소설 읽다가 ‘아, 현실에서도 이런 능력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머릿속으로 하는 망상을 그대로 옮긴 듯한 느낌이랄까요. 뭐 이런 망상이 소설로 쓰여지면 안 될 이유도 없지만, 하나 같이 다들 그러니 이상하더군요.
무협이나 판타지는 기본적으로 ‘모험’의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주인공이 먼치킨이어도 미지의 세계와 마주치게 되는 부분이 존재하죠. 하지만 이런 현대판타지는 그냥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로 그 세계가 배경입니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설명따윈 필요 없고 주인공이 어디에서 뭐를 해서 성공했다 같은 스토리의 반복만 나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차원이동물 퓨전판타지를 예로 들죠. 주인공은 먼치킨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내용들이 나열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뚜렷한 최종보스와 목표가 존재합니다. 뭐 사악한 마왕을 무찌른다든가 아니면 미친 드래곤을 죽인다든가 말이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반면 현대판타지는 기연을 얻었든 회귀했든 간에 일단 개인 영달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건들이고 성공하고... 이런 내용만 반복된다는 겁니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만 주구장창 올리는 것 같은 스토리 전개말이죠. 이런 종류의 글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결말은 보통 어떻게 나는지 궁금하군요. 세계 1위의 기업을 세웠다, 부자가 되었다로 끝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아니면 제가 몰랐던 복선과 스토리가 있었을 지도요.
더 이상한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어른’들에 의해서 쓰여지고 향유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중딩 고딩들이 취준생 백수가 능력을 얻고 회사에 들어가서 사장까지 올라가는 그런 소설을 쓰고 볼리가 없죠. 소위 말하는 현대경영물말입니다. 기존의 중2병적인 장르소설의 주요 독자였던 중고등학생이 아닌 어른들이 독자인데도(이건 제가 잘못 아는 거일 수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중2병 글이 시장에서 읽혀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독자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쓰여지는 소설인 것 같은데 말이죠. 학생들 대리만족 소설의 전형이었던 겜판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어른들의 대리만족 소설이라니, 웃기기도 하네요. 차이점은 학생들의 경우 그들이 접하는 게임 속에서, 어른들은 회사나 연예인, 정치 같은 현대 조직 사회 속에서 그 욕망을 푼다는 것이죠.
제목에서 던진 질문의 답은 알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자체가 우리 현대인이니까 그러겠죠. 양란을 겪은 조선인들이 한 아녀자가 오랑캐들을 무찌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그 당시의) 현대판타지인 박씨전을 쓴 것처럼, 그만큼 지금 현실이 힘들고 암울하기 때문에 현대판타지가 대리만족성 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겠죠... 다 쓰고 나니 이건 그냥 제 일기장에나 쓸 글인 것 같군요. 뭔가 횡설수설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올립니다.
ps. 모든 게임판타지가 중2병 대리만족성 글이 아니듯이 요즘 현대판타지가 모두 제가 말한 성격의 글은 아닙니다. 또 대리만족 소설이라는 것이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저도 그런 소설을 읽고, 쓰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작가님들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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