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직계가 아니라도 같은 무리, 혹은 군집체라면 우선 보호를 합니다.
코끼리 무리의 이야기를 굳이 근거로 들어야 할까요?
만약 양육강식의 세계라면
코끼리는 왜 자기 새끼도 아닌데 보호를 할까요?
무리를 짓는다면 일단 생존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곧 무리를 짓는게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더 뛰어나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그걸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요?
아무도 알켜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에서 깨우친 본능이지요.
마하트마님이 말하신
'그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일 뿐입니다...' 로 단순히 격하시킬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본능에 따라 군집체를 보호했으니까요.
그것이 생명을 아낀다는 단순 명료한 사실이지요.
그리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동물들은 신을 믿지 않지요.
신이 있기전에 일단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In the long-run, we are all death.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럼 단기적으로 죽으나 장기적으로 죽으나 상관없으니 다 죽고 죽이면 될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까요?
인권에 대해서는 인권에 대한 역사와 각 국의 법학적인 지식 및 여러가지 사건사고 및 그에 관련된 여러가지 학설들의 목록만 뽑아도 댓글 3천자를 넘길겁니다.
생명이 소중한가?라느 질문에
그렇다면 소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건가?라는 질문으로 답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종교이야기는 정담 금지 사항입니다.
회의론이 과학적이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주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주장하시는 내용 자체가 근거가 없습니다.
물론 저도 그냥 생명 경시 현상에 대한 풍토를 갖거나 혹시 그로인한 사고라도 칠까봐 따끔하게 하는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회의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철학이 나오죠.
동양의 제자백가들, 온갓 사상과 철학이 발전하는 이유는 전쟁, 혼란, 사회적인 모순 등 이러한 것이 가장 심했던 '춘추전국'시대 봄, 가을이면 전국이 바뀌는 그런시대에(?) 나왔다는 것이지요.
공자책인가에 이런말이 있죠.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죽인다. 아비가 물건을 훔치면 아들이 아비를 고발한다. 이런 xx같은 세상에 인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확하게는 까먹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그만큼 그러한 회의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러한 철학들이 태어나는 겁니다.
서양 철학도 똑같습니다.
잉여로운 그리스, 변설자들이 판을치고 괴변과 괴변이 난무하고, 어떤이는 새로운 음식을 먹기위해 먹었던 음식을 토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경기장에서 즐기고 이런 시대에 소크라 아리스 프라톤 이 세명의 사람들이 나왔고, 신학이 어지러워 질때 신학적 철학도 가장 발전했으며, 산없화사회로 넘어가기전의 사회 혼란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왔고, 또한 1차, 2차 세계대전 등지에서도 많이 나왔죠...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사람들을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이것저것... 이런것도 있겠지만 지배계급의 지배수단으로... 여하튼
사회가 혼란해서 철학이 나오고 철학이 어려운말만 하니까 종교가 나오고 생명이 소중함을 알리고 이러는겁니다....
그리고 지금 말하시는 과학적이라는 것이 생물분야, 문리분야, 화학분야, 등등 심지어 사회과학 분야까지 고려하고 하시는 말씀인지 그냥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적 개념을 말씀하시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살아있음으로서 할 수 있습니다. 우연도 살아 있음으로서 보고 느끼고 전달 될 수 있습니다. 우연으로 나은 생명이나 지구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과학이라는 이름 어느곳에 나오는 지 알 수가 없네요. 생명이 우연의 결과이다. 진화론이 내려오면서 유전적인 변이와 세포와 세포의 변이, 물속의 미세 미토콘드리아가 번개를 맞아서 전자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단세포 생명이 되었다가 단세포 생명이 다세포 생명이 되었다고 해서 생명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존재조차 하지 않던 곳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이렇게 살아서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연치고는 너무 소중한 우연이 아닐까요?
우리들이 걸어다니는 고깃덩어리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의학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 사람들을 걸어다니는 고깃덩어리로 보는, 젊은 시절에 큰 충격을 받아 삐뚤어져 버린 의사들도 있기는 합니다. 심지어 요즘 의전이라고 해서 대학을 좀 다니다 가는 동생, 친구들도 삐뚫어져 버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과학적인 시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해보시지요.
인권이 과학적인겁니까?
그리고 모든것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합니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인문과학, 사회과학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인권은 과학적으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사회 계약설에 근거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질과 어쩌구 저쩌구에서부터 나오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떠한 사조에 의해 그렇게 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뭐 이것저것 파고들고 검색하면 더 나오겠지만 요정도만 인권 이야기르 ㄹ하겠습니다.
약육강식에 적자생존에 과학이라는 이름이 있습니까? 동물들에게도 과학이 있습니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은 무었입니까? 이성? 아닙니다 글을쓰고 읽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고등하다 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하는것은 동물들에게나 맞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회의론이 과학적이다.
누가그럽니까?
과학이 회의론으로 갈 수는 있습니다. 회의론은 말 그대로 회의적인 의견, 의견에 불과 합니다. '론'이라는 것은 'Theory'즉 이론에 불과한 아직 증명되지 않은 말을 하지면 '비과학적'인 것이지요. 회의론이 과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회의학이 아닌한은..
회의학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그 현대의 인권설의 기본 베이스와 신학적 사상 모두 '서양'이야기이고, '동양'의 경우는 철학에서 시작.. 그리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철학'은 너무 어려워서 '종교'적으로, 계속적으로 피 지배계급을 세뇌하기 위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 철학을 '종교'로 바꿨다는 소리도 있고...
여하튼 인문과학에서 말하는 인권이 주로 '서양 철학'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서양보다 더 일찍 '동양철학'에서도 인권에 대해서 다루었지요 심지어 한국에 있는 천부인권이니 뭐니 이런거 까지..
뭐 어떻게 보면 지금와서 다 짜집기해서 때려맞추는 거일수도 있지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지 못했으니, 신을 통해서 증명하겠다는 것은 증명에 대한 강박같네요.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마하트마님이 믿나요? 만약 믿지 않는다면, 신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믿나요?
생명이 소중하다고 마하트마님이 믿는다면, 굳이 신을 통해 생명이 소중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윤리는 옳다고 믿는 보편적 현상을 규정하는 것이지, 그것을 증명해야할 영역이 아니죠. 현상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증명되면 무엇이 충족되나요?
인간은 몇 개의 공통적인 윤리기준을 가지죠. 만약 신이 이것이 맞다고 지정을 한다고 해서, 다른 윤리판단기준이 다 틀려지나요?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판단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상대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덜 옳아진다고, 그것이 틀린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정답이 명확한 과학문제가 아니니까요.
그.. 그냥 이건 좀 드립인데 제가 정신없이 하는 말이니까 신고는 말아주세요
위에 누군가가
누가 니 뺨을 떄리거든 반대쪽 뺨을 내밀라고 했다는 말...의 뒷이야기, 절대 전해지지 않을 이야기 내 머리속에서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신 이런거랑 아무 상관 없는거임 잘들어보세요
어느날 제자가 뺨을 맞고 돌아왔다.
"제자야 누가 너를 때렸느냐?"
"억울합니다 스승님!"
'아니 내가 질문을 했잖아.'
"그래 말해보아라."
"제가 이렇게 뺨을 맞고도 참아야 합니까?"
'아놔 이놈 질문을 하니까 계속 질문하네.'
"누가 너의 뺨을 때리거든 다른쪽 뺨마져 대주거라."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아는것------
"그렇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누가 여기가 끝이라고 했느냐?"
"그렇다면?"
"It`s your turn(이제 너도 대)!"
...
그랫다고 합니다...
마하트마님은 기본 전제에만 생각을 두고, 사고를 전개하니 인권의 시작은 신학에서 시작되었으니 신학의 근본인 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인권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시는겁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인간이 어떤 인과 관계를 가져 오지 못하더라도 존재하죠.
인간이 인권이란 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신학이 기본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신학이 가장 앞선 학문이고, 신에 대한 믿음은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사회였죠) 인권의 기본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이 아주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겁니다. 신이 동물을 먼저 만들고, 인간을 마지막에 만들었는데, 그래서 신에게 인간이 더욱 특별하다고 의미를 준 건 인간이죠. 동물에게도 신이 너희는 나의 아들이요 딸이다. 자연스럽게 살다 죽어라 라고 했을지 아닐지 인간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가 마지막에 특별한 사랑으로 우릴 만들었을 거라고 믿는 거죠.
신을 믿지 않아도, 그래도 인간은 내가 특별하다고 가치를 줍니다. 다른 동물, 생물과는 월등하다고 믿죠. 가치는 상대적이면서 또한 주관적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내가 남보다 훨씬 소중하죠.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존재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주는 거구요. 그걸 스스로 별거 없네, 공기 속의 먼지와 내가 뭐가 달라.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잘하면 해탈하는 거고, 못하면 자살까지 가죠.
기본 사상을 글자 그대로 파고 드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사상이나 주장은 사회와 시대가 변하면, 따라서 사유 자체를 유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리에 근본을 두고, 우리의 가치를 쌓는 게 쉽기는 하지만, 진리가 아니라 파생으로 우리가 의미없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치는 스스로 쌓을 수도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가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비와 바람에 따라 위치 선정을 잘하면 그 무엇보다 가치있는 돌멩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래 인권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기때문에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이 최초의 인권 헌장이었죠. (서양쪽)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자 과학적 사고를 하다보니 신이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허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인권에 관련된 학설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제말이 틀렸나요?
=>네, 완전히 틀렸습니다. 최초의 인권헌장이라는 것이 몇 세기에 있는 이야기인지 아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빨리 잡아도 11c 마그나카르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마그나카르타 역시 초기에는 단순히 귀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령이였으나 17c 왕의 폭거에 맞설 구실로서 인권적개념을 확대시킨 것 뿐입니다. 즉,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약 17c~18c에 들어서 나오는 개념입니다. 근대에 들어오고 신의 허구성을 알고 과학적 사고를 하다보니 평등적사고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상공업의 발전으로 부루주아 계층이 발달하여 자신에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과 보호가 필요했고, 평등적인 개념을 발견한 것이죠. 그러한 개념이 필요해 것이죠. 이에 관심을 가진 홉스나 로크, 루소 등의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혁명이 이루어졌고 확대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통해 혁명과 인권헌장이 이루어졌죠.
사실상 혁명의 인권헌장에 신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것은 가장 대중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죠. 기독교 신자인 대중에게 전파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이라는 존재를 차용하는 것이 좋았을 뿐입니다. 애초에 자연권이라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시대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후 스콜라철학에 영향을 받지만 그것이 신학에 관련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홉스의 자연권에서 인간의 생명권이 우선되는 이유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는 무엇에 제약되지 않고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그 행동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권리임을 발견한 것이죠. 로크의 재산권과 저항권 역시 사회의 계약에서 준 것으로 보지요.
자연권 말고 이 글의 초기 주제와 더욱 적합한 칸트의 윤리학으로 넘어가 보면, 칸트만 해도 신이 있다고 믿으나,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칸트가 자연권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정언명령의 두번째 형식으로 인간을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이야기는 이야기죠. 칸트의 입장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이유는 인간이 선의지를 실행할 실천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칸트의 주장에 있어서 신은 필요합니다. 보편적으로 옳은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를 모든 사람이 타고났다는 있다라는 가정을 했기 때문이죠. 내가 보편적인식을 타고 났고, 타인 그런 인식이 있다는 현상에 따라 귀납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보편적인식을 타고 났구나라는 인식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증명 가능한가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기에 신이라는 대상을 차용하죠. 하지만 신의 대상은 애초에 증명불가능하니 다시 그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으로 되돌아옵니다. 즉, 현상적으로 그러하기에 신은 있을꺼라는 믿음에 근거하게 되죠.
반대 예를 들어보죠. 니체처럼 신의 존재가 인간의 도덕의 권위를 하락시킨다고 생각 할 수 있을 수도 있죠. 19c에도 여전히 기독교는 유럽사회의 주류였고 그렇기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죠. 신의 종으로서 따라야할 도덕이 아닌, 주체적인 도덕이 더 높은 윤리라고 보는 것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하면, 신과 윤리, 신과 인간의 존엄 같은 것이 처음부터 개별 개념이라는 것 입니다. 보통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의식인 자연권은 고대 그리스시대에 자연권 사상에 찾아볼 수 있고, 신의 개념은 애니미즘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겠죠. 다르게 시작한 두 가지 개념에 어떠한 유사성이 없는데, 연관되어야 할 이유는 없죠.
그 이유를 신에게 찾는 것은 더욱 더 궁색한 일이죠. 인간 존중이라는 그 자체를 증명하는데, 아무 상관없는 개념을 들고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믿는다는 것은 잘못된 권위에 대한 오류지요.
그리고 과학적이지 않은 세계이기에 약육강식이며, 적자생존인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성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라기 보다는 동물의 본성이겠죠.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공산주의 사회건설이라거나 장기적 합리성 통해 이상 세계를 추구 할 수 있었겠죠.
사실 인권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죠. 왜 그것이 옳은가를 증명하는 것은 옳다라는 기준에 대한 상호 동의가 필요하지만, 옳다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상대적이지요. 그렇기에 인권의 개념을 옳다고 믿는 것도 특정 다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권이나 윤리와 같은 표준 신념은 믿는다는 행위에 관련된 요소이지요. 굳이 설명될 필요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을 왜 믿어야 하는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나요? 인권과 윤리가 이론적으로 부족해서 회의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회의론에 빠져서 인권과 윤리가 이론적으로 필요해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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