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반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던 여자아이와 짝궁이 되었을 때 그녀는 책상에 선을 그었다.
넘어오지 말라고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손녀딸을 보는 것 같아 미소를 머금었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보잘것없던 선이 그녀에게는 베를린 장벽보다 높은 벽이지 않았을까 싶더라.
나에게는 그저 평면에 그어진 낙서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 같은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고 단순한 낙서가 다른 누군가에는 더없이 큰 마지노선일 때 말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상대방은 월북한 사람을 보는 표정을 짓는다.
어제와 오늘 나는 이런 상황을 목격했다.
활활 타오르는 국경지대를 바라보고 있으나 마냥 넋 놓고 구경할 처치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나는 힘이 없다.
발을 디딘 지대가 열기에 녹아내리는 걸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건 그저 보잘것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일뿐이다.
지금 타고 있는 이 선이 완전히 녹아내린 뒤에 새로운 철벽이 세워지는 게 아니라 탁 트인 지평선이 시야에 가득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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