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한국인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발작하는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연구를 거듭하는 마탑이라도 요건 전문가 찾기 힘들거 같아요."
저 책에 마이크로필름판 무예제보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이 5척짜리 쌍수도냐 아니면 일반 3척짜리 환도냐만 확인하면 됩니다.
"근데 DNA, 어족, 문화, 기원부터 틀린데 굳이 증명해야되나요?"
아니요. 증명 했는데도 정신발작을 일으키네요. 말 그대로 우리가 누구냐 어떤 사람들이냐 어디에서 왔느냐를 떠나서 그들과 '다르다' 이것 하나만큼은 아주 명백한데 그거에 정신발작을 일으키네요.
무예제보에서 쌍수도 씁니다. (정확히는 검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삽화는 쌍수도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조선식 짧은 한손 예도가 아닌 양손으로만 쓰는 딥다 큰 쌍수도 맞습니다.)
무예제보는 왜란 시기에 조선이 근접전에서 개발리니까 선조 명령으로 척계광 기효신서 수집하고, 조선에 왔던 명 장수에게 무술 배워서 만든 겁니다. 그래서 무예제보는 중국 무술 맞습니다. 무예제보에 나오는 여섯 무기 중 곤봉과 검(쌍수도)을 제외한 등패, 낭선, 장창, 당파부터가 기효신서 벤치마킹한 거죠. 물론 이 무술을 얻으면서 훈련받은 과정이 좀 시원찮다보니 조선군에서 마저 못배운 부분 같은게 있어서 개정판을 몇번 내면서 점차 한국화하긴 했는데, 무예제보 원래 형태 자체는 중국 무술을 직접 전수받아서 우리 군영의 훈련시스템으로 적용시킨 것이므로 중국 무술로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저로서는 그렇다 해도 나름대로 우리나라에서 개정을 거쳐왔으므로, 수백년이 지난 지금 한국 무술이라고 해도 문제 없다고 봅니다만... 일단 기원은 확실히 중국 무술이고, 무예제보 내용은 조선군이 독자적으로 가진 그런 것과는 관련없습니다.
무예제보에 실린 것이 조선의 독자적 무술이라면 왜란 시기에 왜군에게 근접전 발려서 명 장수한테 굽신거리면서 무술 배우려 하지 않았겠죠.
참고로, 무예제보가 원본 리퍼런스로 삼은 기효신서에 쌍수도가 들어간 것도, 척계광이 왜구 상대하면서 왜구를 통해 배운 쌍수도(일본도)를 채용한 것입니다. 뭐 이쪽도 중국 고유 쌍수도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일본 왜구가 쓰던 양손검 노다치가 중국화된 것이라고 보죠.
무예제보가 기효신서를 그대로 베끼지 않은 이유는, 무예제보는 선조가 조선군용 근접전 병기를 다루는 군사 매뉴얼을 만들라고 명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군이 미군에게 훈련 받아서 미군 군사교범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한국화된 군용 교범을 만들었듯이, 무예제보 역시 당시 조선이 상국이던 명의 군사 교범인 기효신서를 배워다가 나름대로 우리 것으로 소화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우리 식 어레인지가 들어갔을 수는 있겠지만, 일단 기효신서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 자체는 틀림없습니다.
무예제보는 왜란 중에 기효신서 기반으로 훈련도감 설치하고 속오군 창설하는 등의 조선 군사 훈련 시스템 재건 과정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무예제보 → 무예제보번역속집 → 무예신보 → 무예도보통지의 조선 군사 교범의 연속선은 이어집니다만,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를 곧장 같은 것으로 놓으셔서는 안됩니다. 시기적 차이가 엄청나게 컸고, 그 와중에 이런저런 가감이 많이 이루어졌거든요.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이야말로 무술을 자기 문화로 소화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임란기 선조 치하에서 급하게 중국 지원 받아서 근접무술 배우던 시기하고, 정조 휘하에서 나름대로 우리 형식을 정립한 차이, 약 200년 가량의 시간이 차이가 납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6.25 시기하고 21세기 현대 한국군 정도의 차이랄까요? 무예제보 무술과 무예도보통지 무술 간에는 그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중국 아저씨가 한 '무예제보 장도가 중국에게서 쌍수도를 배워서 만든 거'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무예제보에서는 '장도'라고 표현하지조차 않았습니다. 그냥 '검'이었죠. 무예제보의 검을 무예도보통지에서 쌍수도라고 명칭을 달리해서 부릅니다. 무예제보 검(쌍수도)와 무예도보통지 조선세법은 서로 다른 무술입니다.
그 중국 아저씨의 한국에 대한 편견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만, 일단 맞는 말을 한 부분은 인정하고 싶군요.
아울러 무예제보의 국립중앙도서관 마이크로필름은... 말씀하신 「조선중기 무예서 연구」도 있지만, 웹에서 찾기에는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무예문헌자료집성」으로 검색하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기효신서, 무비지까지 전자서적으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효신서에서 가져온 것은 낭선을 포함한 중국 무기들 쓰는 법과, 단어 표현들과, 군대 전략들 등 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뿐인에 조선세법을 중국 무술에 근원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요. 임진왜란때 정부에서 중국 검술을 배우고 싶었던건 중국 검술이 실속은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 현혹하는건 잘해서 정부 사람들이 혹했었던 겁니다. 그냥 칼싸움/검법보다 검술이 더 좋은건가 해서요. 검술같은건 우리나라에 없었으니까요. 중국에서 전해진 검술은 무예도보통지에 제독검이라는게 있습니다.
<a href=http://muye24ki.com/muye24ki/muye24ki.php?cat=2&sub=14 target=_blank>http://muye24ki.com/muye24ki/muye24ki.php?cat=2&sub=14</a>
참고로 본국검법은 신라에서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a href=http://muye24ki.com/muye24ki/muye24ki.php?cat=2&sub=15 target=_blank>http://muye24ki.com/muye24ki/muye24ki.php?cat=2&sub=15</a>
"『이언』에 전하기를 7세에 백제에 들어가 거리에서 칼춤을 추는데 구경꾼이 담장을 이루었다. 백제왕이 그 소문을 듣고 불러 당에 올라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황창랑은 이로 인하여 왕을 찔렀다. 그리하여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고, 신라인들은 그를 애달프게 여겨 그의 얼굴을 상으로 가면을 만들어 칼춤을 추는 모양을 지금까지 전하게 하였다"라 하였다."
저는 지금 무예제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예제보에 대해서 말이 나왔습니다. 무예제보의 마지막 장은 장도입니다. 중국에서는 장도가 쌍수도를 뜻하는데 그 아저씨는 장도가 중국에게서 쌍수도를 배워서 만든 거라고 하더군요."
무예제보 이야기를 하시길래 무예제보가 이렇다고 말한 겁니다. 귀하께서 그 중국 아저씨에게 무예도보통지 기반의 이야기를 하시고 싶으신 듯 한데, 처음에 무예제보 이야기를 하셨고, 그래서 저도 무예제보 이야기를 한 겁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제독검이 중국에서 배운 것이다, 본국검(조선세법)이 우리 고유의 것이다, 그건 맞는 말이고 저도 이견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논지는 무예제보이고, 무예제보에 나오는 검이 쌍수도 맞냐고 질문하시길래 쌍수도 맞다고 답변드린 겁니다.
「무예문헌자료집성」이라는 구하기 쉬운 자료까지 알려드렸으니, 직접 찾아서 확인하시면 될 일입니다. 링크도 걸어드릴까요?
걸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그곳과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거기에 무예제보의 장도 삽화가 쌍수도인게 나온다는 거지요? 더구나 거기에 무예제보의 장도 검법이 모예도보통지의 쌍수도 검법과 같다고 나오는 거지요?
그렇다면 조선세법은 중국 무술과 아무 관계가 없군요. 아무런 끈이 없네요. 조선세법은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쌍수도가 아니라 예도쪽이거든요.
무엇보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칼싸움/칼 쓰는 법 (검법)/칼 다루는 법/칼재주는 있어왔고 문헌상으로도 역사 기록으로도 다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조선세법은 우리에게 있던던 우리 검법들을 정리한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안드네요.
한마디로 모용휘인가가 무예제보가 쓰인 30년 후에 썼던 모비지에서 "조선세법은 우리 중국의 옛날 검술인데 우리가 오늘날 잃어버렸던 것이 조선에서는 계승되어온 것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망상이군요.
본국검이 신라거라는건 거짓말이군요.
어쨌거나 제가 했던 말은 바뀌는게 없네요. 우리는 검술은 없었지만 옛날부터 칼 쓰는 법(검법)/칼재주/칼 다루는 법/칼싸움은 있어왔고 익히고 배웠으며 역사기록과 문헌으로도 있다는 거요.
지금 여기에서 초점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조선세법입니다. 무예제보는 거기에 엮인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중국인은 조선세법을 무예제보가 아닌 다른곳에서 카피해왔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른 무예서적이 출판되었던 기록이 있습니까? 당시 모용휘는 2만여권의 무술 서적들을 통틀어서 무비지를 썼다는것 같은데요?
제가 예전에 배웠던 거를 말하자면, 무예제보는 일단 중국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출발했으며, 무예제보에다가 일본고 4기를 더해
무예제보속집이 편찬되었으며, 거기에 약 225종의 자료를 추스려
만든것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특히 조선세법의 경우 중국에까지 알려져 조선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으며, 제독검 역시 명장 이여송으로 부터 조선으로 들여와
완성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본국검, 조선세법, 제독검의 진수는 실전이 되었으며, 후대에
알려져 오지 않았으며 70년대에 제가 검법을 배울시 본국검 전승이
되지 않았으며, 본국검이라 알려진것은 검농 김재일 선생이후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깔끔했을 텐데."
그 계속 조선세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그 아저씨가 탐내는건 조선세법쪽이라고요. 그 아저씨가 탐내는건 검법 그 자체지 무예제보에 뭐가 실려있느냐를 탐내는게 아니에요.
모용휘도 그 중국 아저씨와 똑같습니다. 조선세법을 탐내더군요.
그러나‘조선세법’의 내용 중의“有好事者, 得之朝鮮其勢法, 俱備固知中國失,而求之四商不獨西方之等韻, 日本之尙書也. 備載於左.”를 보면, 본래 알고 있었던 중국의 것을 잃어버렸으나, 이것을 병법이나 무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다시 명으로 구해서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본래 중국의 검술인‘조선세법’이 조선에 도입이 된 후, 다시 조선에서 명으로전해지게 되어《무비지》에 기재 되었으며, 이로 인해 조선에서도 그 연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a href=http://www.nfm.go.kr/_Common/Download.nfm?filename=mu02.PDF&dir=22&seq=305
target=_blank>http://www.nfm.go.kr/_Common/Download.nfm?filename=mu02.PDF&dir=22&seq=305
</a>
무예제보입니다. 무예제보 검과 무예도보통지 쌍수도는 같은 무술로 보시면 됩니다. 200년의 세월 동안 조선 군관들이 세법을 시행하는 형태가 조금 달라졌을수는 있겠지만, 일단 기록 상에 세법의 명칭과 총도 순서는 거의 동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조선세법 이야기가 나온건 귀하가 말을 잘못 꺼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국 사람은 무예제보 이야기를 하고, 무예도보통지 조선세법 이야기를 한 것은 귀하가 아닌지요?
저는 중국 사람이 조선세법을 배우고 싶어서 탐을 낸다고 하면 기특하면 기특하지 별로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외국인이 태권도나 택견 배운다고 기분나빠해야 할 이유는 없겠죠.
그리고 모용휘가 아니라 모원의겠죠. 무비지를 쓴...
무비지 모원의와 조선세법 이야기는 대충 이런 골자입니다. 모원의가 쓰기로, 중국이 양손검법을 원래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실전적이던 그 양손검법을 어느새 잃어버렸다. 다행히 조선의 무술가에게서 그것(원본인 양손검법)의 검보를 얻어왔다. 조선의 무술가가 잘 보존한 덕분에 원본에 가깝게 잘 보존돼있었다. 고 쓴 것입니다.
모원의가 한 말은 조선에서 무술을 배워갔다는게 아니라, 중국에서 잃어버린 문화재가 조선에 원본으로 잘 보존돼있더라, 그래서 얻어왔으니 다시 복원하자는 뜻입니다.
무예도보통지 본국검 항목에서 모원의 이야기를 한 것은, 「자기 나라의 원래 검술조차 잃어버리고 딴 나라에 가서 간신히 원본 얻어와 복원한 모원의 꼬라지를 우리나라가 따라해서는 쓰겠느냐, 우리도 좀 무술 제대로 보존하자」고 한 말입니다. 무예도보통지 조선세법이 곧 중국 양손검법이라고 연결하시면 곤란하지요.
아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계속 그 조선세법을 말씀하셨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과정 중에 조선세법 어쩌고 하는 글을 봤어도,
본문의 메인 임팩트로 이해되는 질문은 마지막에 무예제보 질문입니다.
그냥 그거만 물어보시는 걸로 보였다고요.
댓글로 조선세법 어쩌고 계속 쓰셨는지 몰라도,
본문에서 그걸 메인으로 묻는 걸로 보였는데 그럼 뭐라 하겠습니까?
저만 오해한 게 아니라 위에서도 무예제보 답하신 분이 있는 걸 보니
다른 분도 그러신 것 같은데요.
무슨 말씀을 하시건 남이 보기에 그게 아니면 의도 전달이 안 된 거죠.
듣는 남을 탓할 게 아니라.
그리고 찾으신 책도 「조선 중기 무예서 연구」 아닙니까? 이 책은 무예제보와 무예제보번역속집의 번역 역주본이지, 무예도보통지 책이 아닙니다. 애초에 질문부터 무예도보통지가 아닌 무예제보로 하셨는데, 왜 무예도보통지를 저에게 들이대면서 "제대로 알고 하시는 소리입니까?"라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그래서 묻겠습니다. 무예제보의 마이크로필름을 번역한 조선중기 무예서 연구를 읽으신 분 있습니까? 단 하나만 묻지요. 거기에서 조선세법이나 무예도보통지의 예검처럼 일반 환도를 씁니까? 아니면 5척짜리 쌍수도를 씁니까?"
귀하께서 하신 질문글입니다. 저는 이거에 대해 답변드린 겁니다.
"조선세법 이야기가 나온건 귀하가 말을 잘못 꺼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국 사람은 무예제보 이야기를 하고, 무예도보통지 조선세법 이야기를 한 것은 귀하가 아닌지요?"
아니요. 애초에 조선세법이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그 검법 자체를 탐냈던 거에요. 무예제보의 장도가 쌍수도냐 아니냐는 그 검법을 탐냈기 때문에 그 아저씨가 꺼낸겁니다. 그런데 도구만 쌍수도일뿐만 아니라 검법까지 쌍수도니까 애초에 성립이 안된 거고요.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바랬던 망상은 이겁니다. "우리가 조선세법을 중국인에게서 쌍수도라는 도구로 배웠다." 이게 그 아저씨가 바랬던 망상이에요. 그러니까 그 아저씨의 망상을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했던 겁니다. 하나는 무예제보의 장도가 쌍수도일 필요가 있었고, 또 하나는 무예제보의 장도를 쓰는 검법이 조선세법과 똑같을 필요가 있었지요.
"모원의가 쓰기로, 중국이 양손검법을 원래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실전적이던 그 양손검법을 어느새 잃어버렸다. 다행히 조선의 무술가에게서 그것(원본인 양손검법)의 검보를 얻어왔다. 조선의 무술가가 잘 보존한 덕분에 원본에 가깝게 잘 보존돼있었다. 고 쓴 것입니다.
모원의가 한 말은 조선에서 무술을 배워갔다는게 아니라, 중국에서 잃어버린 문화재가 조선에 원본으로 잘 보존돼있더라, 그래서 얻어왔으니 다시 복원하자는 뜻입니다.
무예도보통지 본국검 항목에서 모원의 이야기를 한 것은, 「자기 나라의 원래 검술조차 잃어버리고 딴 나라에 가서 간신히 원본 얻어와 복원한 모원의 꼬라지를 우리나라가 따라해서는 쓰겠느냐, 우리도 좀 무술 제대로 보존하자」고 한 말입니다. 무예도보통지 조선세법이 곧 중국 양손검법이라고 연결하시면 곤란하지요."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중국이 양손검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잃어버렸다. (조선세법은 양손 한손 다 쓰는거 아니던가요?) 조선의 무술가가 잘 보존한 덕분에 원본에 가깝게 잘 보존돼 있었다. 중국에서 잃어버린 문화재가 조선에 원본으로 잘 보존돼있더라. 이 말이 조선세법이 중국 검술에 기원이 있다는 망상과 어떻게 다르다는 겁니까?
"그리고 찾으신 책도 「조선 중기 무예서 연구」 아닙니까? 이 책은 무예제보와 무예제보번역속집의 번역 역주본이지, 무예도보통지 책이 아닙니다. 애초에 질문부터 무예도보통지가 아닌 무예제보로 하셨는데, 왜 무예도보통지를 저에게 들이대면서 "제대로 알고 하시는 소리입니까?"라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아까도 말했지만 애초에 그 질문이 나온 이유가 그 중국인 아저씨가 조선세법을 중국걸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한 거에요. 서운하셨다면 미안합니다.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 했습니다. 그 중국인 아저씨는 망상과 욕망에 쩔어계신 분이라는걸요.
이게 지금 제 윗집에 사는 중국인 아저씨와 똑같은 400년 전 중국인 아저씨가 쓴 망상입니다.
"《무비지》의‘조선세법(朝鮮勢法)’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원의는《무비지》‘진련제(陣練制)’의 검 부분에서‘조선세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한 해석은 무예 연구자 간에 많은 이견이 있다. 현재 일부 무예 연구자들은‘조선세법’이 원조인 조선에서 명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조선세법’의 내용 중의“有好事者, 得之朝鮮其勢法, 俱備固知中國失,而求之四商不獨西方之等韻, 日本之尙書也. 備載於左.”를 보면, 본래 알고 있었던 중국의 것을 잃어버렸으나, 이것을 병법이나 무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다시 명으로 구해서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본래 중국의 검술인‘조선세법’이 조선에 도입이 된 후, 다시 조선에서 명으로 전해지게 되어《무비지》에 기재 되었으며, 이로 인해 조선에서도 그 연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외국에 사셔서 그런가요ㅇㅇ? 정말 답답하네요.
질문의 요지는 분명하게 무예제도 였습니다만... 어떻게 질문과 질문의 요지를 다르게 가지실수 있죠? "
무슨 의미이신지? 사태의 근원이 있었고, 거기에 따른 질문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했고, 대답을 들었고, 그래서 재차 확인을 하였습니다. 뭔가 복잡하신 건가요?
"기요신서->무예제도->무예도보통지
중국에서 가져간건 무예도보통지가 아니라 무예제도를 가져갔다는 게 답변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무예도보통지가 기요신서라는 결론을 얻으실 수 있는지..."
무예도보통지가 어떻게 기요신서가 됩니까? 지금 제 윗집에 사는 중국인 아저씨와 400년 전의 그 중국인 모운휘가 매달렸던 망상과 욕망은 조선세법이 조선에 전해졌던 중국에서는 실전된 중국의 검법인데 도로 수입해온 것이다라는 겁니다.
"모자(茅子)가 말하기를 옛날의 검은 전투에 쓸 수 있었기에
당태종은 검사(劍士) 천 명을 두었으나, 지금은 기법(技法)이
전하지 않는다. 단간잔편(斷簡殘篇)1) 중에 결가(訣歌)가 있기
는 하지만, 그 설명이 상세하지 않다. 최근에 어느 호사자(好事
者)가 조선에서 (그것을) 얻었는데, 그 세법(勢法)이 구비되어
있다. 진실로“중국에서 잃으면 사예(四裔)2)에서 구한다는 것”
을 알 수 있으니, 서방의 등운(等韻)3)과 일본의 상서(尙書)4)뿐
만이 아닌 것이다. 이어 (그 내용을) 싣는다."
아주 재미있는 인간이네요. 400년 전 인간도, 제 윗집에 사는 인간도. 혹시 직계 후손 아닐까 몰라. 성이 모용씨냐고 그리고 본관은 어니냐고 물어봐야겠네. 어디 모용씨일까요.
41 번 글 복붙하신 그 내용, 중국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무예 연구가들이 쓴 말입니다. 해당 부분은 제가 사료로 들어드린 무예문헌자료집성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발췌한 것이군요. 저 또한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모원의는 모용 씨가 아니라 모 씨겠지요.
서로 이야기가 오가면서 엉뚱한 조선세법 이야기가 들어가서 꼬인 것 같은데. 대충 이런 흐름이 됩니다.
명: 기효신서(1560), 척계광. 조선세법 없음
조선: 무예제보(1598), 선조 시대, 한교. 조선세법 없음
조선: 무예제보번역속집(1610). 조선세법 없음
명: 무비지(1621), 모원의. 조선세법 최초 등장.
조선: 금위영등록(1696). 조선세법 기록 등장.
조선: 무예신보(1759), 영조 시대, 사도세자. 조선세법 등장
조선: 무예도보통지(1790), 정조 시대. 조선세법 등장.
그 중국인이 어떤 속사정을 갖고 있었던 간에, 기효신서와 무예제보 질문 하면서 조선세법을 개입시키셔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그 책들에는 조선세법이 아예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아예 예도 검술도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세법에 대해서는 십팔기협회 분의 글인 다음 내용을 참고하세요.
<a href=http://mir1871.tistory.com/73
target=_blank>http://mir1871.tistory.com/73
</a>
"여하튼 이번에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것은 예도입니다. 본래의 명칭은 단도(短刀)였다고 합니다.
혹은 조선세법이라고도 합니다.
조선세법이라고 하는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때에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를 많이 참조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중 모원의의 무비지에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옛날의 검은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태종 때에는 검사가 1천명이나 있었다. 지금은 그 법이 전하지 아니하고 단간잔편 가운데 결가가 있으나 그 설명이 자세하지 못하다. 근래에 호사자가 있어서 조선에서 그 세법이 구비된 것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며 모원의는 그 세법 24가지를 조선세법이라 명명하여 무비지 검편에 적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당시 조선은 이 조선세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조선에서도 진실로 조선에서 중국에 전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해 받았다는 사람이 말했으니 아마도 조선에서 간 것이 맞겠죠?
이 때문에 이 예도를 조선세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44번 글에서, 조선세법에 양날검을 썼다고 하는 부분.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일단 기록상으로 조선세법을 가장 먼저 남긴 것은 조선이 아니라 중국이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제독검 같은 중국 검술을 예도로 행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자기네 형편에 맞는 무기를 쓰는 거야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정리-
윗집에 어떤 중국인 아저씨와 무예제보에 대한 말이 나왔다. 무예제보는 장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저씨는 무예제보의 장도가 중국에서 쌍수도를 배워서 만든 거라 주장한다.
흰코요태님은 중국은 무예제보가 쓰여진 30년 후 무비지를 통해서 쌍수도가 소개되었으며, 무예제보는 쌍수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무예제보는 중국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으나 참고한 것은 칼쓰는 법이 아니라고 말했고, 조선세법은 기효신서의 검법과 비슷하지 않아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는 예전부터 검법이 존재했으며, 중국이 환도를 쓴 것은 조선세법을 가져간 이후이기에 아저씨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 반박했다.
핵지뢰님은 무예제보는 쌍수도를 쓰는 것이 맞다고 했으며, 명의 장수에게 배운 것과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무예제보를 편찬했다고 전했다. 기효신서와 무예제보의 검이 다른 이유는 군사교범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도 했으며,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를 같은 선상에 놓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본 논쟁과는 그다지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칼싸움 방법/검법"과 "검술"이 무언가 틀린 겁니까?"
틀립니다. 혼동해서 쓰더라도 틀립니다. 이종격투기와 쿵푸만큼 틀립니다. 칼싸움 방법/검법은 싸움법이고 검술은 뭔가 다른거지요.
"무술이란건 나름대로의 효율적인 전투법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여 이름을 붙이면 그때 생기는거잖아요."
Martial Art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지요. 하나는 서양처럼 순수한 싸움법/격투기. 하나는 무도. 이종격투기와 쿵푸라고 하니까 애매하면 무예타이와 쿵푸라고 하면 어떨까요? 권투와 쿵푸라던가.
"윗집에 어떤 중국인 아저씨와 무예제보에 대한 말이 나왔다. 무예제보는 장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저씨는 무예제보의 장도가 중국에서 쌍수도를 배워서 만든 거라 주장한다.
흰코요태님은 중국은 무예제보가 쓰여진 30년 후 무비지를 통해서 쌍수도가 소개되었으며, 무예제보는 쌍수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무예제보는 중국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으나 참고한 것은 칼쓰는 법이 아니라고 말했고, 조선세법은 기효신서의 검법과 비슷하지 않아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는 예전부터 검법이 존재했으며, 중국이 환도를 쓴 것은 조선세법을 가져간 이후이기에 아저씨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 반박했다."
맞는데요, 한가지 참고할건 여기에서 칼 쓰는 법을 얘기할때는 무예제도가 아니라 조선세법을 말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조선세법의 칼쓰는 방법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국인이 어떤 속사정을 갖고 있었던 간에, 기효신서와 무예제보 질문 하면서 조선세법을 개입시키셔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그 책들에는 조선세법이 아예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아예 예도 검술도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아저씨는 조선세법을 우리가 중국에서 임진왜란때 배운 것이라는 망상에 매달리고 싶었고 따라서 무예제보의 장도가 쌍수도일 필요가 있었으며 장도 쓰는 법이 조선세법일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물은거고요.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었지요. 쌍수도는 맞는데, 칼 쓰는 법도 쌍수도네요 조선세법이 아니라.
흰코요테님//전혀 다를바가 없어보이는데요. 무예타이든 쿵푸든, 그것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만들어진 싸움의 방법입니다. 쿵푸만 해도, 배 위의 좁은 공간에서 싸울 일이 많았던 남권은 그에 맞는 형태로 발전했고, 북부는 평지에서의 전투에 맞게 발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로 다루는 무기 또한 북부의 경우 군용 무기, 남부의 경우 평민들이 쉽게 구할수 있는 무기들을 주로 하고요.
이종격투기 또한 '링'이라는 장소와 정해진 룰이라는 환경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하여 각종 무술들의 기술들의 장단점을 취하는 것이고요. '무술'로 취급되는 것들 중에서도 이런 식의 철저한 '실전지향'을 가지는 것들은 많습니다. '크라브마가'는 철저하게 실전에 지향한 전투법을 가르칩니다만, 분명 '무술'로 분류됩니다.
무술이란 결국 전투법의 정리 형태에요. 뭔가 이상한 환상을 가지신게 아닌가 합니다.
"무예도보통지를 만들 당시 조선은 이 조선세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책으로 본격적으로 만들었냐 아니냐 기록으로 남겼느냐 아니냐는 전해지느냐 아니냐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검술은 없었지만 칼 쓰는 법(검법)/칼재주/칼 다루는 법/칼싸움은 옛날부터 익혀왔고 배워왔으며 문헌과 역사 기록으로도 자주 보입니다.
"때문에 조선에서도 진실로 조선에서 중국에 전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처음 듣습니다만, 본격적이고 대대적으로 훈련시키던게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칼싸움꾼 누군가에게서 칼싸움법을 배워갔다거나, 여러명에게서 배워갔다거나, 아니면 마이너한 책을 누가 썼는데 그것 중 하나를 가져갔다거나.
"44번 글에서, 조선세법에 양날검을 썼다고 하는 부분.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일단 기록상으로 조선세법을 가장 먼저 남긴 것은 조선이 아니라 중국이거든요."
조선세법이 양날검을 썼다는게 아니라 중국이 조선세법을 카피해간 다음에 양날검을 멋대로 넣었다는겁니다. 동작 자체를 보면 도법이지 검법이 아닙니다.
"흰코요테님//전혀 다를바가 없어보이는데요. 무예타이든 쿵푸든, 그것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만들어진 싸움의 방법입니다."
달라요. 무예타이는 순수한 싸움법이지만 쿵푸는 순수한 싸움법이 아닙니다.
"무술이란 결국 전투법의 정리 형태에요. 뭔가 이상한 환상을 가지신게 아닌가 합니다."
무술이란 싸움법이지만 무술에는 두가지 다른 종류의 무술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한 격투기고 다른 하나는 무도입니다. 이 둘은 질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명백하게 달라요.
예를 들어서 예전에 어느 쿵푸인에게 "쿵푸는 싸움법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무예타이는 그딴 소리는 없고 순수하게 얼마나 더 잘 패고 얼마나 덜 맞느냐입니다. 그 차이입니다. 굉장히 서양적이지요. 그게 무법(?)/싸움법과 무도의 차이입니다. 둘 다 무술이라도 다르지요. 중국 검술도 명백하게 우리나라의 검법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단지 문화라던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는 단순히 찌고 베르고 막고 이런 것만 생각합니다만 일본은 정신을 생각하고 중국은 자연을 생각합니다. 순수한 싸움법과는 거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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