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시간 때울거리를 제공해보았느냐.
모 시를 살짝 패러디해봤습니다.
1.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공장제 만화가 그 공장제 만화를 필요로하는 시스템과 수요에 의해 탄생했듯이
양산형 판타지도 그 양산형 판타지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과 수요에 의해 탄생했죠.
아, 물론 더 정확히 말하면 저 수요에서 중간판매자?는 양산형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는 분들이고, 최종소비자가 원한 것은 딱히 양산형은 아니었을 겁니다.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야 본인이 읽을 모든 것이 다 명품이면 좋겠죠.
그러나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죠. 시스템 자체도 명품만을 생산케 하는 시스템도 아니고, 지불하는 가치도 명품에 합당하는 가치가 아닐진데, 손에 쥐는 결과물만
명품만 원한다는 것은.
이글은 양산형이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아닙니다.
많은 다량의 생산물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었고, 명품만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그 수요를 양산형들이 채워줬다는 거죠.
그리고 사실 그런 상황은 유료연재로 시대가 변한 지금도 별반 엄청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달에 한권을 내야한다는 편집장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연재 안하냐?고 묻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대신 다이렉트로 전달되니까요.
2. 명품의 기준은 뭘까? 판매량?
그럼 천만 넘은 영화들은 다 명작이고 명품일까요?
많이 팔리니까, 그게 곧 명품이란 소리는 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타격해서 대량소비를 유도했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마케팅 상품이라고 평해도 무방하지만, 그게 곧 좋은 글, 훌륭한 글이란 소리는 아니니까요.
물론 장르소설의 좋다, 훌륭하다의 기준을 많이 팔린 것으로 둬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별도의 문제입니다만.
3.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 소설의 작가도 양산형을 읽고 자랐을지 모릅니다.
그게 우리나라 작품이든 다른 나라 작품이든. 애당초 좋은 작가의 기준 중에는 다독도 포함되니까요.
또 양산형 = 나쁜 작품이란 것도 꼭 정답은 아닙니다. 대량생산물들 속에서도 간혹 명작은 튀어나오니까요. (총기 생산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좋건 싫건 장르소설계에 살고 있는 작가, 독자들은 양산형의 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 그걸 깨부수자고 말하는 건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선택받은 아주 소수의 책만을 서점에서 구입해 읽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 내가 사랑하는 어떤 책을 위해 그밖에 다른 책들을 비하하지는 맙시다.
그건 그 책의 작가분도 원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 비하의 대상이 과거의 레전드건 장르소설계 주위에 뒹굴고 있는 무수한 양산형이건. 그 양산형의 거름 속에서 명작도 탄생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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