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저는 다른 장르의 빙의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판타지 장르의 빙의물은 대략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이 유행했을 때. 판타지 자체가 모순이 있었습니다.
어느 문명이던 고유의 독자적인 단위를 쓰고, 독자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판타지 세상도 마찬가지인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진짜 판타지 다운 판타지를 쓰려면 고유단위까지 가야 했습니다.
1미터를 1큐빗 이라거나, 한시간을 1 클로따위라거나 시작해서 설정이 무지막지 합니다. 완전히 천지창조 수준까지 가야 '판타지 다운 판타지 소설' 이라고 치부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톨킨도 수십년이 걸려서 혼을 불태워 만든 판타지 세상을 작가가 다 무시하고 새로운 판타지 세상을 만들자니 독자에게 익숙하지도 않아서 거리감이 커졌죠.
아이러니 하게도 판타지 다운 오리지널 판타지세상을 만들 수록, 노력은 밑빠진 독에 물붙기처럼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일반독자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것을 구원한 것이 '이고깽' 입니다. 이세계로 현대인이 전이되면, 모든 단위를 현대인에 맞게 쓰니 천지창조까지 안해도 되고, 일반독자와의 거리감도 줄일 수 있었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이고깽' 이면 한국인이니까 흑발에 흑안에 동양인. 하지만 판타지 세상은 중세 서양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죠.
이러면 정체모를 고교생은 뜬금 없이 호의를 받아 환영받거나, 뜬금없이 마족이라고 차별당하는 패턴말고는 시작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나 가족은 어쩌고 이세계에서 지내는지 나와야
했기에, 주로 주인공의 가족은 비명횡사하거나, 현대로 돌아와야 한다는 식이 됩니다.
게다가 고교생인데 지나치게 똑똑하고, 사회생활을 너무 잘하고, 능력이 너무 출중해서 '평범한 고교생' 이라 하기도 민망하게 되지요.
이런 문제들로 인해서 등장한 것이 대략 두가지 형태로, 하나는 어른이 이세계로 전이, 다른 하나가 빙의입니다. 천지창조 없이, 독자와 거리감을 두지 않게 만드는 방법으로 대두되었습니다.
어른이 이세계에 전이하면 능수능란한게 하나쯤은 있을테니 고교생보다 능숙하다는 점은 어필되었고, 어른이니까 이고깽의 고교생과 달리 부모님이 조금 일찍 돌아가셧다고 해도, 말은 앞뒤가 맞게 되죠. 외동이면 남겨둔 가족도 없으니까요. 현대로 돌아올 이유가 고교생과 달리 차이가 있습니다.
이고깽의 문제를 수정, 보완한 케이스죠. 하지만 역시나 고교생의 패턴인 뜬금없는 호의로 가득찬 여정이나, 마족따위로 핍박받는 패턴은 쭉 이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판타지 중세에 빙의를 하게 되면, 겉모습은 판타지 중세인이니까 마음대로 설정이 가능하고, 이고깽이나 그런것과 달리 전이된 세계에 가족이 생깁니다. 평범한 판타지 중세인이 겪는 것을 손쉽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결국 빙의가 판타지에 온 것은 정통 중세 판타지로 오리지널 천지창조로 중세인을 창작해야 하는 난이도와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독자와 멀어지는 딜레마 해결의 발판으로 삼고자 일어난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 수정 보완되면서, 같은 중세인이지만 소드마스터가 농부에게 빙의한다거나 하는 그런 형태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글작성자님이 말씀하시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이 빙의물에서 흔한 패턴이었는데요. 점점 사라져서 이제는 굉장히 드문 일이 됩니다. 애초에 목적이 독자에게 철학을 주자는게 아니었던터라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장르의 빙의물은 잘 모르겠습니다.
요약. - 판타지소설에서 빙의.
장점 : 중세판타지 세상의 평범한 인물을 현대인의 시야로 대체하여, 독자에게 간편한 세상을 전해줄 수 있으며, 중세의 가족이나, 제도, 특기사항을 다른 판타지 주변인물과 손쉽게 버무림이 가능하고, 거리감이나 위화감없이 전할 수 있음.
단점 : 자아정체성의 혼란. (점점 무시되고 잊혀짐)
이런 빙의도 최근에는 수정보완되어 점차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입니다. 대표적으로 같은 중세인이 빙의되는 경우가 있죠. 같은 세상의 소드마스터가 죽고, 같은 세상의 농부로 빙의하는 형태 같은 것 말입니다.
글이 엄청 기네요. (나는 왜 이걸 정열을 불태워서 쓰고 있는걸까요.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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