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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7.09.18 23:28
조회
857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60년 4월 23일,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성 요르요스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한세대 전에 콘스탄티노스 9세 황제가 성 요르요스의 교회당까지 보도로 행진의례를 집행한 이후 후대 황제들은 요르요스 축일마다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비슷한 행보를 보여오았습니다. 콘스탄티노스 10세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하루 거의 온 종일을 요르요스의 교회당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정보를 가진 일부 음모가들은 쿠데타를 기획했습니다. 이들은 콘스탄티노스가 정부기능이 위치한 황궁일대를 벗어난 점을 기회로 삼고자 했던거죠. 계획은 이러했습니다. 우선, 이들은 대규모로 일당을 동원해 도시 곳곳에서 황제에 대한 불만을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킬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황제는 일단 그 상황을 벗어나야할텐데, 육로는 불안하니 해안가로 움직이겠지요. 하지만 쿠데타 세력은 지방함대와 중앙함대를 모두 통제하에 두었기에 그건 악수가 될 것이었고, 이들은 전함을 동원해 황제를 피난시켜줄 것 처럼 유인한 후 배 안에 들어가면 신병을 접수할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 황제를 빠트려 죽여서 정권을 마비시키고 정부를 장악하면 쿠데타 성공입니다.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사적인 복수심을 갈고 닦아 온 심복의 극적인 배신이라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온 음모의 늪이라던가 뭐 그런건 없지만 원래 현실에는 그딴거 없습니다.


실제로 4월 23일 낮중에 갑자기 수도로부터 일어난 폭동과 시위 소식을 접하자 콘스탄티노스 10세는 급격히 당황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쿠데타를 계획한 자들이 예상한대로 해안으로 나갔습니다. 해로를 통해 황궁으로 귀환할 계획이었지요.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입니다. 하지만 황제는 제국해군의 배 대신 가까운 사이의 행정관이 소유한 배에 올라탔습니다. 여기서부터 계획이 어긋납니다. 간발의 차이로 황제를 놓친 반군 전함은 황제에게 일단은 말로 옮겨타라 하다가, 황제가 그걸 씹자 행정관의 배를 전함으로 들이 받는등 본색을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행정관은 질주의 본능을 깨우친건지 정식 해군의 군함을 추격전 끝에 떨쳐내고 심지어 황궁에 도착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또 계획이 틀어집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축제날에 갑자기 시위와 폭동이 발생하자 일단 집 밖으로 나와 상황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 대다수는 집권한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생정권은 아직 뭐라 평가하기 이르다 생각했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이쯤 되면 슬슬 막장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으로도 부족했는지 황제의 동생 요안니스 두카스 부황제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중앙대로를 따라 움직였는데 시민들이 그에 대해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영의 인사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원래 쿠데타에 줄을 대고 있어서 수도의 소란에 별 조치를 취하지 않던 콘스탄티노플 시장이 ‘아 이제 글렀구나’ 싶은건지 다시 줄을 갈아타 반란 진압을 시작했고, 슬슬 뭐 됬다는걸 온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반란군은 ‘설마 정부에서 내가 가담했다는걸 알진 못하겠지’ 라는 희망만 가진채 집으로 돌아가 해산합니다. 


현실은 정말 수많은 변수로 가득차서 가끔 보면 개연성이 없는 것 같은 일도(예:// 행정관이 불꽃의 질주를 통해 정식 해군 군함을 떨쳐낸다) 벌어지곤 합니다. 그런 것들이 크고 작게 하나씩 쌓여서 음모를 어긋나게 만듭니다. 어긋남이 쌓이면서 점점 예상했던 것과 상황이 다르게 흘러갈 때 그 음모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많은 경우 지지와 운입니다. 


위에 말한 사례에서 만약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면 쿠데타는 그리 어이없게... 정말 어이없게 끝나진 않았을겁니다. 반면 이미 정권이 여러차례 타격을 받아 휘청이는 상황이라면 집으로 쳐들어온 황제의 딸랑이를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성 소피아 성당에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정권이 전복 될 수도 있습니다(실제 사례입니다). 


또한 만약 해안가에 그 행정관의 배가 모종의 이유로 있지 않아서 황제가 반란군 소속 군함에 올라 타는 행운이 있었다면, 시민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해도 일단 어렵게나마 쿠데타는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중 운은 사람이 어쩔 수 있는게 아니니 넘어가고, 음모에 대한 지지는 결국 그 음모 외적인 요인에 의해 지배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황제의 권위가 실추되어 있다거나,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다거나, 정권의 지지세력이 등을 돌렸다거나, 등등. 


음모가가 의도적으로 지지를 얻기 위해 사건을 벌일 수 있지 않느냐고 어떤 사람은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미친짓입니다. 음모에 참가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의 친인, 지인, 그리고 부하들의 운명까지 모두 걸고 벌이는 도박입니다. 만약 음모가 그 자체로는 지지를 얻기 힘들어서 일부러 사건까지 벌여야 할 정도면 애초에 성공률이 그리 높지도 않을겁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도박에 참여할 것이요, 충분한 인원을 모집하지도 못한 집단이 벌인 사건이 얼마나 성공적일까요. 심지어 들키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그게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그냥 운입니다 운. 이건 괜히 계획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안 그래도 낮은 성공확률을 더 떨어트리는 짓 밖에 못 됩니다.


쿠데타가 이루어질 때 많은 경우는 천재적인 음모가가 뒤에서 줄을 교묘하게 조율해서 그렇게 된게 아니라 더 큰 정치적 맥락과 흐름 속에서 기존의 지도자가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걸 이야기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는게 참 아쉽습니다.


Comment ' 4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7.09.19 00:01
    No. 1

    그걸 소설로 그리는 것은 꽤나 힘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맥락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찬성: 4 | 반대: 1

  • 작성자
    Lv.49 악휘S
    작성일
    17.09.19 04:23
    No. 2

    이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적절하게 타는 줄타기가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은 현실과는 다르지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7.09.19 09:34
    No. 3

    큰 변수가 3개 이상 있는 계획은 짜는 게 아니라고 하던가요...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51 無의神
    작성일
    17.09.19 20:29
    No. 4

    현실이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개연성이 없다고 욕을 먹겠지요 ㅡ.ㅡ;;
    개인적으로는 판타지소설의 경우 남성작가 비율이 높다보니 우연적인 전개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로판의 경우는 아마도 작성자님이 말하는 그런 전개가 꽤 많이 등장할거라고 추측합니다. 실제 배경도 비슷한 배경의 로판이 많지요

    찬성: 0 | 반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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