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순신이 명장인 것은 몇개 해전의 결과로 나타난 전술이 아니라 좀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사전에 준비되었던 전략 및 수군 육성책, 행정 ,대민정책의 달인이었다는 점입니다. . 거기에 중앙으로 부터의 보급을 기대할 수 없는 점을 예측해 둔전 및 자가 병기창,기술창을 통한 보급의 확보 등은 전시 행정 및 정책의 걸작입니다.
다만 이순신이 한가지 뒤떨진 점은 정치적 인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가 가진 정치 끈은 죽마고우 유성룡에게만 대다수 의지되어 있었고 그 외 정치세력들에게 정치적인 작업을 전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원균이 용장이었다는 것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나 일개 돌격장이나 군관이 아니고 전체 수군을 지휘하고 전략,행정,정보,보급,훈련,재편성,전술,대민,사전 사후처리 등을 담당할 총사령관(통제사)에 못 미치는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분의 말씀
잘못아시는것이 있는데 판옥선은 느리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해전 기록에서 일본 첨선을 추격하여 섬멸한 기록도 있구요.
그리고 판옥선은 그 높이가 높아서 일본의 대선(대장선으로 주로 쓰인 배입니다. 아다케라고 하죠)에서 조차 조총을 위쪽으로 겨냥해서 쏴야했습니다.
때문에 조선군이 비록 활로 무장했더라도 꽤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었구요. 위에서 아래로 쏘는 이점이죠.
//선조가 그냥 육군해라고 한게 아니라. 힘들것 같으면 육군으로 싸워도 좋다~ 였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해전에서 이순신의 함대가 병력의 우위에 있었습니다.
이건 확실한 사실입니다.
뭐라뭐라 해도 이순신이 '성웅'인건 사실이죠 =_=
판옥선은 일본배들에 비해 느렸습니다. 판옥선은 평저선(밑바닥이 평평한 배)로써 일본배들의 침저선(밑바닥이 뾰족한 배)에 비해 직선 스피드는 느릴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대신 회선력이 좋아서 돌아서 포를 쏘기엔 유리했겠죠.
일본 배의 배경 자체가 노략질하고 바다를 건너와야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 중,소형 배를 선호했죠. 보통 기록에 보면 일본배가 빨라서 쫒아가지 못한다라고 쓰여있는것으로 압니다.
현대식 배들은 대부분 침저선으로 배의 아랫부분이 뾰족하게 되어있고 그 길이도 길어서 빠른 속도를 내기에 적합하게 되어있지요.
판옥선은 평저선인것 외에도 두꺼운 나무를 사용하고 크게 만든데다가 대포까지 많이 실었기 때문에 일본배보다 속도가 빠를수 없었을것 같습니다.
이런 판옥선의 느린점을 보강하기 위해 좀더 작고 속도가 빠른편인 거북선을 앞세워서 적진을 어지럽히고 포격을 했던 셈이죠.
선조가 육군으로 포함시킨다고 어명을 내리니까 상소를 썻지요...
대다수 해전에서 이순신의 함대가 병력상 우위에 있었다니요...(도대처 어디서요?)
그리고 해적이 배 갑판 높다고 못올라 갑디까? 사다리를 걸치거나 갈고리를 걸어서라도 넘어가야죠, 그것도 한두대가 아니라 4~5대가 둘러싸서 올라온다면 아무리 판옥선이라도 GG아닐까요??? 자료는=>
<a href=http://www.warfog.net/books/wave/waveappe/ships/%C0%D3%C1%F8%BF%D6%B6%F5%20%C7%D1%C0%CF%BC%B1%B9%DA.htm target=_blank>http://www.warfog.net/books/wave/waveappe/ships/%C0%D3%C1%F8%BF%D6%B6%F5%20%C7%D1%C0%CF%BC%B1%B9%DA.htm</a>
판옥선이 평저선이고, 화포를 실었긴 하지만 그에 걸맞게 격군의 수 또한 많았습니다. 격군의 수를 노의 수에 많게는 4배정도 까지 보여했다는 설도 꽤 인정받고 있고요. 단순한 첨선 평저선의 비교가 아닙니다.
거북선이 실제 출격한 사례는 얼마되지도 않습니다. 보유수도 3대정도였구요.
일본배와 단순히 숫자 비교를 하면 당연히 밀리는게 맞죠. 일본은 고깃배수준의 배까지도 다 끌고나왔으니까요. 그런배들 말고 전투를 위한 배들을 말하는겁니다.
배 갑판 높아도 올라가는거 맞습니다. 전 원거리에서의 조총,활로 응사하는 형태에서의 유리함을 말하는거구요. 실제로 근거리에서는 거의 허무하게 일본에게 무너진 사례도 많죠
격군의 수또한 안택선 같은 경우 80개의 노가 있어 80명정도로 예상되고
판옥선 또한 80-120명 정도까지 격군을 태울수 있었다네요.
안택선은 크기도 판옥선 만하고 격군도 80명 정도로 태워 판옥선과 비슷한 편이지만 일본배중에선 느린편이지요. 판옥선이 선회회전 말고 안택선과 직선코스에서 더 빨랐을지는 의문이군요.
일본의 주력인 세키부네또한 노가 40-50개가 보통이였고, 일본배는 원체 해적질을 위한 배이기 때문에 전투시에는 거의 노를 저어 빠르게 움직일수 있었을 것입니다. 판옥선이 120명 격군을 꽉채우더라도 일본의 중,소형 배보다 빠를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판옥선 자체가 대함주의를 통해 나온것이고 일본또한 기술력으로는 큰배를 만들수 있었지만 빠른속도로 항해를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을것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선조가 원균을 높이 평가하고 이순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한데에는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서 정치적인 고려도 있지 않았을까요?
자기는 임금이면서도 패전소식이 들리자 의주까지 몽진했고
여차하면 요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 의사타진까지 했었는데
겨우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연전연승하고 수륙병진까지 봉쇄하면서
적군의 보급과 진출을 저지하였으니 상당히 쪽팔린 일이죠.
실록 기록 중에 선조가 원균을 유달리 칭찬한 기록도 나오지만
신하들이 없을 때는 무능하다고 혼잣말로 원균 흉을 본 기록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교활한게 선조죠.
서인들이야 유성룔하고 가까운 이순신만 영웅이 되는 것보다
자기들도 맘에 안들긴 하지만 어쨌든 자기 당파쪽인
원균도 나름대로 라이벌(?)쯤으로 인정받으니 싫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원균이 아주 무능하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일본수군의 책략에 놀아난 선조와 권률이
일본해군과의 일전을 종용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면전을 회피하다가
권률한테 친히 곤장까지 맞고서야 나선걸 보면
나름대로 위험한 싸움은 피하려고 했다고 봅니다.
어쨌든 칠전량에서 처절하게 패하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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