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오늘 또 뭐 하나? 사는 게 고역이지….” 김중건(72·대구시 지산동·퇴직공무원) 할아버지는 잠에서 깨면 “잠은 또 왜 이리 못자나?” 하고 자신을 책망한다. 옆에 누워 있던 부인은 5년 전 세상을 떴다. 잠을 잘 때도 “내일 깨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속에 눈을 감는다고 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김 할아버지의 일과 속에는 삶을 지탱하는 나름대로의 비결이 숨어 있다. “잠에서 깨면 아파트를 일단 빙빙 돌아. 매일.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아파트 관리인들이 나를 제일 싫어해. ‘제발 나오시지 마시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나가.” 오전 9시에는 지하철을 타고 증권사로 가서 저녁까지 이곳 ‘영감 공동체’ 속에서 생활한다. 신문 한 부 가지고 생색내는 할아버지를 원망하고, 함께 2500원짜리 국밥도 먹고.
이런 삶의 패턴이 무너졌을 때 노인들은 엉뚱한 선택을 한다. 전체 자살자 중 61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9.7%에서 2003년 28.1%로 수직 상승했다. 노인 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미국의 경우 18% 수준(65세 이상 기준)이다.
노인수가 늘어난 만큼 건강, 가족관계, 경제력 문제로 삶의 패턴이 무너지는 노인이 많아졌다. 하지만 자살 위험에 노출되는 노인들이 많아진 만큼 ‘황혼병(黃昏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양삼치(64·고양시 마두1동)씨 사례. 생활의 키워드는 운동과 일이다. 아침 5시에 정확히 일어나 1시간30분 동안 인근 정발산에서 운동한다. 허리가 아프지만 거르는 날이 없다. 운동도 좋지만 산은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티’다.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서울 서대문구 ‘경우회’야말로 양씨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적 커뮤니티. 시민들이 와서 고소·고발하면 상담해주고, 민원인들 안내도 해주고, 경우회 회원 관리도 한다.
휴대전화비용 정도만 지원받는 자원봉사다. 양씨는 “내가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황혼병 극복법’은 일부러 일을 만들어 바쁘게 사는 것, 규칙적으로 사는 것,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 소식(小食)하되 영양식을 하는 것 등이다.
경주에 사는 김영만(77) 할아버지 이야기. 김 할아버지는 나이 50에 퇴직, 무역업을 하다 2001년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하지만 작년 5월 4개월 동안 숲 생태해설가 교육을 받고 9월부터 경주 ‘황성숲’에서 일한다. 관광객들에게 숲에 대해 설명해주고 관광객들이 숲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김 할아버지는 “어린 학생들이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해줄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김영만 할아버지 생활 수칙은 그래픽 참조〉
분당서울대병원 김기웅 교수(신경정신과)는 노인들의 ‘황혼병 극복법’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가급적 햇빛이 좋은 한낮에 운동할 것, 둘째 작은 병이라도 생기면 반드시 치료를 받을 것(만성질환을 앓는 경우 우울증 발병률이 2~3배로 높아짐), 셋째 배우자와 사별할 경우 노인정 등을 찾아 적극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 넷째 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세상 일에 관심을 가질 것 등.
http://news.naver.com/hotissue/daily_read.php?section_id=103&office_id=023&article_id=0000110106&datetime=20050126182601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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