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소설 1권을 쓸 때였습니다. 살수인 주인공이 처음 살행을 나갔을 때 이 친구가 첫살인에 대해 나름 충격을 받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지요. 그래서 자고 있는 사람을 칼로 찌르려고 할 때 자던 사람이 잠에서 깨 눈을 마주치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당시의 편집자가 개연성이 없다면서 지적을 했지요. 훈련받은 암살자가 기척 없이 숨어들어가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자던 대상이 깨어날 리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맞더군요. 그 때 저는 개연성이 없으면 이야기가 작위적이게 된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대상을 술에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술에 취하게 되면 숙면을 취할 수 없고, 또 갈증을 느껴 자다 깨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시 서술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기에 방 가득히 술냄새가 느껴진다는 묘사로 그가 취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고, 머리 맡에 둔 자리끼(자다 먹으려고 둔 작은 주전자)를 손으로 더듬는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중요한 순간에 눈을 마주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글을 쓰는 게 정말 머리로 계산을 많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감각적인 부분이 필요하지만 이건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 재능이 없어서 다신 프로를 생각지 말자고 다짐을 했지요. 아 갑자기 슬퍼지네요.
Commen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