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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3

  • 작성자
    Lv.20 연쌍비
    작성일
    04.10.16 03:50
    No. 1

    을지문덕, 연개소문, 명림답부, 흑치상지, 부여복신.
    여러분, 이 이름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오늘날 일본식 이름과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은 지금처럼 지나식 이름을 쓴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본래는 현재의 일본식 이름이 우리 고유의 이름과 거의 흡사했다고 합니다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잎렌
    작성일
    04.10.16 07:31
    No. 2

    으음... 그쵸.. 출생지야 어쨋든.. 그는 고구려 사람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빨간머리N
    작성일
    04.10.16 11:10
    No. 3

    지나식 이름이라뇨?????
    고구려의 왕족은 고씨였고, 신라는 박석김, 가야는 김씨였습니다..
    물론 백제의 부여씨가 있지만 백제의 8대성 귀족만 보더라도
    사씨, 연ㅆ, 협씨, 국씨, 목씨, 백씨,,,등등...
    지금의 성씨와 별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을지씨나 부여씨 등의 두자의 성이 존재했었지만..
    거기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은 성이 '연'입니다..
    개소문은 이름이고요..
    흑치상지는 정확히 이름이 맞습니까??
    그 장군이 팔에 이빨문신을 했다는데서 나온 명호 비슷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까지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문신의
    풍습이 있었다는.. 물론 국사 전공자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명립답부는 조금 생소하군요..
    명림대부라는 관직명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두자성이 지나식에 가깝지 않냐고 항변해 봅니다만..
    일단, 저 지나족의 시조가 공손씨였고 남궁씨나...
    아... 이건 아니군요..
    지나족에도 외자성이 넘 많아서..

    생각해보니..
    우리민족 역대왕조의 사성정책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라나 고려 조선(?) 등의 왕조에서는 큰공을 세울경우
    왕족의 성을 하사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다 외자성이지요..
    그리고 성이 없던 백성들이 조선 말기로 와서 너나 없이
    성을 만들거나 할때 대다수가 권문세족이나 유력한
    양반가의 성을 차용했으니...
    우리의 성이 김이박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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