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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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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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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터넷신문 편집위원 기고] '서울대 대학국어 폐강' 관련 언론 보도에 부쳐  

미디어오늘 [email protected]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 www.snunow.com  ) 편집위원인 고건혁(심리학과 4학년)씨가 최근 각 언론에 보도된 '서울대 대학국어 20개 강좌 폐강 위기' 기사에 부치는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얼마전 연합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서울대 대학국어 20개 강좌 폐강 위기"(2004. 3. 1)란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서울대 신입생들이 '대학국어' 수강을 하지 않아 대학국어 수업 20개 강좌가 폐강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입생 숫자에 재수강 학생 숫자를 더해 2300명이 들을 것을 예상하고 70개의 수업을 개설했는데 1500명 밖에 신청하지 않아 20개 정도를 폐강해야하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서울대가 '기초교육 강화'를 목표로 내걸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져 난감해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요지이다.

그런데 이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대학국어에 대한 수강 기피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학생들이 편하게 학점을 따고 싶어하는 경향에서 찾고 있다. 고학년이 되어 저학년들과 함께 대학국어를 들으면 보다 학점을 쉽게 받을 수 있어 신입생들이 대학국어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점을 재학생들이 신입생들에게 조언한다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를 하지는 못할 망정 '꼼수'나 가르치고 있다고 개탄하는 서울대 관계자의 멘트를 담고 있다.

물론 실제로 대학국어 수업이 기피 대상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학생들이 학점을 편하게 따고 싶어하는 점에 있다는 점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대학국어 수업을 기피하게 된 원인이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일단 수업의 질이 문제다

일단 커리큘럼 자체가 고루하다. 2000년까지 대학국어-당시는 국어작문이었다-수업은 교과서에 나온 지문을 중심으로 강사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고등학교 때의 주입식 작문 교육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지문도 한참 오래 전에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이니,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기 이전에 과연 이러한 글을 읽는 게 실제로 언어 능력을 배양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지 의문이 될 정도였다.

2001년 국어작문이 대학국어로 바뀌면서 상황은 다소 나아졌다. 강사와의 상호작용이 더욱 중시됐으며 커리큘럼도 예전에 비해서는 실제적인 글쓰기-읽기에 도움이 되게 변화했다. 하지만 커리큘럼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한 수업을 수강하는 인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밝힌 바에 따르면, 2300명을 위해 70개의 강좌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1강좌 당 33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셈이다. 수강인원이 1500명으로 줄어 20개를 폐강한다고 해도 수업 하나당 30명 꼴이다. 언어교육의 특성을 감안해볼 때 강사와 학생간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인데, '강사 1:학생 30'의 비율로 이런 것이 가능할까? 과제물을 받고 그에 대한 코멘트만 해줘도 수업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학생들 개개인의 글쓰기-읽기 실력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려면 학생 각자의 개성에 맞춘 지도가 필요할 텐데, 이런 환경에서 그게 가능할 지 의문이다. 특히 말하기의 경우에는 30명을 데리고 토론을 진행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조별 토론의 형태로 진행해보긴 하지만 역시 강사의 적절한 지도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국어 수업은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되니 매주 하나 꼴의 과제는 부담이 될 뿐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싫어한다는 얘기를 하기 전에 일단 대학국어 수업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서울대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대학국어 기피 현상은 오히려 서울대생이 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새 서울대생은 공부 '열심히' 한다. 예전 같으면 졸업할 때까지 도서관 한 번 안 간 것을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 요새는 1학년 초부터 도서관에 틀어박히는 이가 대부분이다. 수업 빠지고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캠퍼스의 낭만은 이제 일부의 얘기일 뿐이다.

취직을 위해서는, 고시를 위해서는, 전공 수업 학점을 잘 따야하고 토익 공부를 해야 하고 고시 과목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대생들, 열심히 공부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취직 경쟁력을 높이고 고시에 합격하는 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대학국어를 공들여 들어 뭣 하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경쟁 권하는 사회' 탓이 크다. 서울대생 정도면 사실 어느 정도 생계에서 자유로울(?) 법도 한데. 하지만 그런 그들이 대학국어 같은 수업을 기피하며 열심히 취직과 고시에 매달리는 까닭은, 늘상 들어오는 소리가 '잘 살아야 한다'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학문으로 경쟁력을 높이자고 얘기할 수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언어 능력이 필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너무 한가해 보인다. 우리말로 글 잘 쓰는 것보다 영어 시험 점수를 더 인정해주고 고시 공부 열심히 하면 인생이 펴는데 왜 대학국어를 열심히 듣겠는가. 그저 학점만 따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서울대생이 기초교육 기피해서 문제라고 걱정하는 언론이야말로 '경쟁 권하는 사회'의 주역 중 하나다. 언젠가 한국은행에서 일하는 한 선배가 "기자들이 전화하면 같은 통계 자료에서도 꼭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심각하니까 심각하게 얘기하는 거겠지 생각하면서도 위와 같은 얘기를 들으면 위기가 자꾸 생산되는 것 같다. 거기다 늘 강조하는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목표. 국민소득을 두 배로 늘려야 할 판에 언제 기초교육 공부해서 언제 착실하게 실력 쌓겠는가?

설령 학점을 쉽게 따려 하는 게 대학국어 기피의 원인이라고 해도, 만연한 경쟁 이데올로기가 교육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터이다. 한편에서는 경쟁력을 부르짖으며 한편으로는 기초교육을 강화하자는 한가한 소리를 하는 이중적 태도, 이게 기초교육 망하게 하는 주역 중 하나다.

언론들, 서울대 그만 좋아해라

이 나라 언론에게 서울대는 대단한 관심거리 중 하나다. 그 관심거리 중에도 단연 단골이라 할만한 것은 '서울대생이 공부를 안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신입생 학력 낮아졌다"(대한매일, 2001.4.10) "서울대 신입생 수학실력 저하 심각"(동아일보, 2002.3.11) "서울대 신입생 학력 저하"(연합뉴스, 2003.3.4)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주요 일간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위와 같은 기사 목록은 서울대 신입생의 학력 저하가 지속적으로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 이상한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서울대 신입생 수학실력 뚝"(경향신문 2004.3.3)의 경우, 실제 이 기사는 제목과 달리 공대 신입생 중 입학성적이 높은 5%의 수학실력이 떨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대 신입생'이 서울대 신입생은 아닐 뿐더러 최상위 5%가 서울대 신입생은 아닐 것이다. 의도적인 과장이다.

      

대학국어 수업 폐강에 대한 이유를 단순하게 서울대생들 사이에 학점을 쉽게 따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귀인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걱정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언론은 끊임없이 더 큰 걱정거리를 찾고, 이른바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라는 서울대의 '추락'은 그런 걱정거리에 해당하는, 상당히 선정적인 주제이다. 왜냐하면 서울대생의 학력저하가 곧 우리나라 교육이 망하는 징조라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공대 신입생 최상위 5%의 수학 성적이 떨어지자 바로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문화일보, 2004. 3. 13 외부칼럼)는 걱정이 뒤를 잇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실 서울대는 입학시험 점수 상위 1%에 해당하는 이들의 집단이다. 일종의 특수 교육기관(?)인 것이다. 그리고 전체 대학교육을 논하려면, 이런 특수 교육기관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곳에 시각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마치 이 나라의 사람들은 상위 1%를 위해서는 나머지 99%가 희생되도 좋다고 여기는 듯, '서울대 망하면 이 나라 망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개 대학인 서울대 입학생 중에 특정 지역 학생이 늘어나자 아예 고교 입시 전체를 바꾸자는 발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위 1%가 나머지 99%를 먹여살릴 것이라는 희망? 사실 상위 1%가 가져다 준 것은 날로 늘어가는 빈부격차 뿐인데 말이다.

정말 대학교육,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를 논하고 싶다면 상위 1%가 아닌 나머지 99%를 바라봐야 한다. 상위 1%는 제 몫 잘 챙겨먹으니 혹시나 정해진 몫 이상 가져가지 않나 정도의 관심이면 족하다. 그러니 서울대에서 대학국어가 폐강됐다는 사실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차라리 지방대 혹은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 현장의 붕괴 상황과 그 이유를 다루는 게 교육을 살리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심각하기로는 이쪽이 더 심각하고, 이쪽이 제대로 돼야 혜택받을 사람이 더 많으니 말이다.

고건혁 /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www.snunow.com) 편집위원

심리학과 4학년

제 몫 잘 챙겨먹으니 혹시나 정해진 몫 이상 가져가지 않나 정도의 관심이면 족하다...

요 대목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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