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제가 도올선생의 말을 인용했던 사람인데요.
탕평론의 본질은 정치적 균형 관계를 다시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 균형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 붕당이 자율적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거나 , 왕권에
의해 타율적으로 조정되어야만 했습니다. 17세기 초에 서인과 남인이 공존 관계를 이룬 것은
자율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오히려 타율적인 것이 요구되었으므로
탕평론은 왕에 의해 주도되었지요.
결국 왕에 의해 주도된 탕평론으로 인하여 이것이 실패(왕권약화)해서 세도정치로 같이 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정도도 모를 사람인것 같지 않아서 그렇거든요. 도올이라는 사람이...
자율 -> 타율로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한듯...
실언이 아니지 않을까 라고 생각되서 글을 올리네요.
다시 한번 말씀 드리자면 노론 일당 독재를 영조와 정조는 막지 못합니다... 이미 붕당이 커질대로 커져서 왕권은 약화되고 신하들이 왕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되어 버립니다...
영원한 제국..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조는 이러한 노론 일파의 공세에 못이겨 사도세자를 죽여버립니다...(굳이 영원한 제국이 아니라 역사 평론을 보셔도 됩니다만...^^; 가장 쉬운지라...)
정조 역시 이런 노론 일파의 세를 눌러보고자 당시 실학자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남인들을 대거 고용하나 일찍 죽고 훗날 순조대에 이르러 천주교 박해를 노론이 일으켜 남인들은 또다시 몰락해 버립니다...
이후 세도정치 시기를 지나 흥선대원군이 등장해서야 다시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는 다른 붕당들의 후예들이 정계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지요...
타율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영조와 정조 시대가 지나면서 결국 노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안에서 세도정치화 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구요...
영조와 정조는 이렇게 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몸부림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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