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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
16.06.26 21:56
조회
2,332

1~9까지의 단계로 마법을 나누고, 이를 레벨에 따라 나눠 쓰는 방식의 마법 체계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아마 대부분 여기에 대한 답은 알고 계실겁니다.

이는 최초의 TRPG 룰인 ‘던전 앤 드래곤(D&D)’에 등장한 체계로, 마법사(당시 용어로는 ‘매직 유저’)가 레벨업을 함에 따라 좀 더 상위 단계의 마법에 접근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죠.

D&D에서는 마법을 ‘레벨’로 나눕니다. 캐릭터 수준도 ‘레벨’로 부르고, 마법 단계도 ‘레벨’로 말하니 “10레벨 마법사의 2레벨 마법 사용 횟수는 몇개인가?”같은 조금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아마도 이 때문에 ‘클래스’니 ‘서클’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D&D와 그에서 시작된 소드월드에서는 전부 ‘레벨’을 사용합니다. 마법을 클래스로 구분하는 것은 어디서 온 거지? 애초에 D&D에서 ‘클래스’는 캐릭터의 직업을 말하는 용언데...).


그런데 이 D&D에서 레벨제 마법, 그리고 D&D 마법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메모라이즈’를 차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재밌게도 “마법사를 약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D&D 개발자인 게리 갸이각스는 자신의 미니어처 워 게임(채인메일)의 룰을 소규모 파티 운영의 모험물로 개조하면서 ‘캐릭터 성장’이란 개념을 도입합니다. 모험을 거쳐가며 점점 강해지는 캐릭터.

이에 따라 “투석기 룰을 고쳐서 파이어볼을, 대포 룰을 고쳐서 라이트닝 볼트를” 하는 식으로 재한된 마법만을 사용하던 마법사 또한, 성장에 따라 더욱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지요.

또한 ‘탐험’이란 여러가지 위험에 대처하여 각종 유용한 보조마법 등도 익히게 됩니다. 이에 따라 마법사가 마법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늘어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게리 갸이각스는 마법사가 ‘마법’을 ‘자원’으로서 관리하게끔 시스템을 설계합니다.

비슷한 수준의 마법을 같은 ‘레벨’ 안에 묶고, 해당 레벨의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수준이 된 마법사는 따로 마법서를 찾아 그 마법을 배워야 합니다(마법 습득의 제한). 그뿐만 아니라 마법사는 자신의 수준에 따라 각 레벨별로 하루에 사용 할 수 있는 마법의 횟수가 정해져 있고, 이를 아침에 준비하고 한 번 쓰면 잊어버리는 방식으로 사용하죠(마법 사용의 제한).

즉 마법사는 “자신이 사용 가능한 마법 중, 오늘 필요한 마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실제로 머리를 쓰며, 마법의 응용을 고민하는 플레이”를 할 의무가 생긴 샘입니다.


초기에 게리 갸이각스 또한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매직 포인트(MP)’와 같은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했다고 합니다만

1. 종이와 팬으로만 플레이하던 당시 상황 상, 숫자 계산을 하는 것이 매우 번거롭다.

2. 마법사가 MP 한도 내에서 자신이 아는 마법을 모두 쓸 수 있다면, 이는 마법사가 만능이 될 수 있다.


는 이유로, 잭 밴스의 ‘다잉 어스’라는 소설에서 사용된 ‘마법을 기억하고, 이를 쓰면 잊어버린다’라는 방식으 차용하죠. 이 때문에 D&D의 ‘1회성 기억-망각’ 방식의 마법은 ‘밴스식 마법 체계’라고 불립니다.


하여간 이 ‘레벨별 마법’은 게임의 벨런스와 운용 편의를 위한 개념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게 “강자와 약자의 확실한 수준 구별, 성장의 명확한 표현”이라는 한국인 구미에 맞아서 정착되어버렸고.


그와 별개로, 초기 한국 판타지에서 흔히 쓰였던 ‘러너-익스퍼트-마스터’의 구분은 확실히 ‘드래곤 라자’에서 온 겁니다. 마법사의 수준을 말할 때 “1클래스 마스터, 2클래스 익스퍼트, 3클래스 러너입니다” 식으로, 각 클래스의 마법을 어느정도로 통달했는지에 따라 수준을 말했죠. 이 방식은 후에 소드 익스퍼트(혹은 오러 유저)-소드 마스터의 ‘검사의 수준’을 칭하는 용어에도 영향을 줍니다.


하여간 D&D에서는 저 ‘클래스 마스터’라는 개념이 있을수가 없는게... D&D의 마법사는 마법 주문을 머릿속에 전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서에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마법서는 페이지 재한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룰북이 새로 발매될 때 마다 그 룰북에 맞는 추가 마법이 계속해서 추가되는 게임 특성상, ‘그 클래스의 모든 마법을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비효율적이기도 하죠.

물론 모덴카이넨이나 엘민스터 등 쩌는 NPC 마법사들은 “이 캐릭터는 룰북에 있는 모든 마법을 알고 있고, 새로 나온 마법도 어떻게든 알아내서 배워요!”라고 되어 있는 애들도 있지만요.


그 외 한가지 더 잡설을 하자면, 한국 판타지식 드래곤은 드래곤 라자+카르세아린의 조합. D&D의 드래곤은 최대 수명은 확실치 않으나 1000년 경이면 거의 최종 단계(그레이트 웜 혹은 에인션트)에 접어듭니다. 카르세아린은 이를 1만년으로 늘리고 ‘유희’라는 개념을 도입했죠... 솔직히 1만년 설정은 조금 무리수라고 생각하는게,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의 지구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죠(...).


드래곤의 부산물이 엄청나게 가치있는 물체가 된 것도 카르세아린의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드래곤 하트 개념은 따로 원본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 D&D에서 드래곤 부산물은 비늘과 뿔 등이죠.


뭐 하여간, 한판소 설정들은 제대로 된 원본에 대한 정보가 원본에 대한 접근 없이 퍼져나가 짬뽕이 되어가며 발전했죠. 옛날 판타지 소설 연재처(판타지 월드, 삼룡넷, 레드드래곤 등등)에는 소드월드나 D&D,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 등에서 발췌한 몬스터 정보, 레벨별 마법, 무기 정보 같은게 출처 없이 떠돌기도 했고...


Comment ' 9

  •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6.06.26 22:00
    No. 1

    그런데 사실 현판으로 대세가 바뀐 후에는 저런 설정들도 쓰는 경우가 드물어졌군요.
    스마트폰 환경 이후 판소 읽는 사람들은 기존에 판타지/무협을 안 읽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들었으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풍지박살
    작성일
    16.06.26 22:01
    No. 2

    잘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6.06.26 22:02
    No. 3

    검색해보니 '서클'이란 단어는 리처드 게리엇의 RPG게임 '울티마' 시리즈에서 사용했다는 군요. 그렇다면 역시 '마나의 고리'라기 보다는 신비학의 '원'의 이미지(일종의 '그룹'을 뜻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 되었을 확률이 높을 듯. 울티마는 마나가 아니라 시동어와 시약의 조합으로 마법을 썼으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소설만
    작성일
    16.06.26 22:24
    No. 4

    클래스마법은 마법서 이드레브 보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거 같아요. 소설 자체는 그냥 그렇고 주인공도 등신같았지만 거기 등장하는 악당이라고 할 9클래스 마법사가 위엄을 재대로 보여주더라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6.06.26 22:35
    No. 5

    이드레브에 묘사된 방식도 그렇고, '고위 클래스로 성장하는 마법사'의 클리셰적 묘사는 기존 무협에서 무공이 발전하는 묘사의 변조이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9클래스 마법을 깨닫는 장면은 무협지에서 '심득'을 얻는 것과 비슷하게 표현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6.06.26 23:16
    No. 6

    제가 알기로는 드래곤이 등장할 적에는 한국의 용과 구별이 필요했습니다. 같으면서 달라야 했죠.한국의용은 이무기가 수천년을 수련(?)해서 용이 됩니다. 인간을 보살펴주며, 여의주를 물었죠.

    서양용을 모티브로 가져왔을 뿐, 뜯어보면 한국 용입니다. 수천년의 이무기를 대신하여 헤츨링이 되었죠. 한국용은 이무기가 수련을 하고 위험을 넘나들지만, 서양 용은 잠을 자고, 인간따위의 위협에 매우 취약합니다. 이점은 공통되지요.

    용은 여의주에서 신통력을 발휘하는데, 서양용은 드래곤하트를 그립니다. 둘은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용은 여의주가 밖에 있는데, 서양 용은 몸안에 있다는 차이지요. 그리고 몸안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어울릴 만한 곳이 '심장' 이 됩니다. '심장'은 동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가 있는 곳이니까요.

    즉 카르세아린이 시초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고유의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동양용과 서양용을 두고 개념이 잡히지를 않아서 굉장히 많은 설정들이 오가다가 카르세아린에서 본격적으로 섞였던 것이라고 해야 맞다고 봅니다.

    쓰고보니 쓸데없는 댓글이었네요. 이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6.06.26 23:25
    No. 7

    아니요, 재밌는 이야깁니다. 동양용의 영향이란 이야기는 꽤 생각해 볼 만 하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無의神
    작성일
    16.06.30 21:41
    No. 8

    이드레브 나오던 시기에 주인공이 차원 이동하면서 3종류의 마법체계를 익히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그걸 본 이후로 그냥 설정은 설정이구나 하면서 대충 보게됩니다.
    클래스든 서클이든 서킷이든 한국형 판타지에선 그게 중요한게 아니더군요. 실제 외국에서도 판타지는 주인공이 쎄지는 부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6.07.01 00:06
    No. 9

    사이케델리아죠. 한국 이고깽물의 근원....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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