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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5 프리맨
작성
03.03.19 00:00
조회
453

게시판의 성격에 안 맞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4시간후에 자동폭파 하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디지탈조선의 통달인의 바둑의 위성웅氏가 쓴

바둑영웅전과...칼럼들이...

넘 무협스럽더군요..

얼마나 무협을 읽으면 저런 내공이 되는지..

오늘은 이창호 국수? 최고수? 기성? (호칭은 차치하더라도)가

세계제일을 다시금 확인한 날입니다..

기분 좋아요..^^

아랫글은 인용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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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의 무림천하(武林天下)를 지배하고 있는 당금의 천하제일고수 이창호.

그의 무공(武功) 수위가 천하를 오시할 만한 개세무비(蓋世無比) 절대무적(絶對無敵)의 경지에 도달 했음은 만인이 공인하는 바 이다.

이렇듯 수 많은 협성괴걸(俠聖怪傑)들과 와호잠룡(臥虎潛龍)의 신진기예들이 장강(長江)의 모래알처럼 도사리고 있는 반상의 승부세계를 독보군림하며 신비(神秘)하다 할 정도로 극강(極强)함을 보이는 이창호의 무학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지에서 많은 평론이 있어왔으니, 그 중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것들 중의 하나는 박치문씨가 평한 '검고 뭉특한 선' 이라는 이미지와 한 때 왕위전의 관전기를 썼던 소설가 김성동씨가 말한 '흑도류의 고수'라는 감상일 것이다.

과연 이창호의 무학(武學)은 흑도류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 까?

먼저 이창호의 바둑을 흑도류로 예시한 대목들을 살펴 보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창호의 바둑은 여전히 음울(陰鬱)하다. “이창호와 이창호의 바둑을 보면 저 중세의 고성과 그 속에서 살고 있음직한 검은 망토를 두른 성주가 연상된다”는 한 바둑계 인사의 비유는 정말 실감난다.

이창호는 같은 천재라도 조훈현9단이나 유창혁 6단과 비교할 때 개성이 확실히 두드러진다. 조훈현, 유창혁은 언제나 번쩍 번쩍하고 화사하다. 밝게 빛나는 재주이다. 그에 비해 이창호에게서는 둔중하고 둔탁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날렵하고 예리하며 감각적인 조훈현이나 유창혁은 천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보아도 ‘과연 천재처럼 생겼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고정관념에서 본다면 이창호는 분명히 이질적이어서 잠시 곤혹스럽게 된다.

바둑평론가 박치문 씨는 이창호에 대한 총체적 느낌과 분위기를 ‘검고 뭉툭한 선’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창호는 날카로운 펜의 선은 결코 아니다. 구리스 펜이나 크레파스 같은 것으로 그은 선이다. 송곳처럼 찔러오는 그런 격렬한 자극은 없다. 그러나 굵고 뭉툭한 힘으로 송곳을 감싸버리며 송곳으로 하여금 질식케 한다. 상대는 아픔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 힘에 밀리다가 골병이 들어버린다,

왕위전의 관전기를 담당했던 소설가 김성동 씨는 이창호의 바둑을 ‘흑도’로 명명했다. 흑도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흑도’라고 하면 뉘앙스가 좋지 않다. 그러나 결코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백도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흑도라는 것이다. 백도는 맑고 가볍다. 흑도는 어둡고 무겁다. 조훈현, 유창혁은 확실히 백도 쪽이다. 그렇다면 이창호는 저절로 흑도가 된다."

해서 박치문씨는 일찍이 이창호의 전관제패를 저지한 유창혁의 왕위전 방어기를 총괄하면서 " 여름햇살처럼 강렬한 유창혁의 바둑이 겨울 산맥처럼 웅혼한 이창혁의 바둑을 무너뜨렸다." 는 명문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평자들의 시각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사실상 이창호의 첫 스승이라 할 만한 전영선의 이른바 '전류(田流)' 에서 그 뿌리를 찾기도 한다.

...실전적이고 치열한 수법들을 즐겨 썼으며 암수에도 정통한 전영선의 바둑 스타일을 바둑계에선 '전류(田流)'라 불렀으며 홍종현 8단의 '홍류(洪流)' - 홍종현 8단은 계산과 끝내기에 탁월하여 '홍소금'이란 별명도 갖고 있었다. 洪流란 단어는 소금같이 짠 끝내기 이미지와 함께 싸움을 피하고 집내기를 중시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 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는데, 이 '田流'라는 것은 한 마디로 기세를 중시하는 싸움바둑으로서 끊을 곳은 반드시 끊고 무디고 느슨한 수를 두지않는 싸움바둑이었다.

그러나 田流란 단어속엔 능란한 잔수 접전과 상대를 못살게하는 온갖 맥점, 암수와 함정수등의 이미지가 진하게 녹아있었으니 내기바둑과 방내기, 뒷골목등처럼 어둡고 칙칙한 흑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온갖 수법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창호 스스로도 본격적으로 바둑을 접하게 한 전주의 이정옥씨나 전류의 영향이 자신의 바둑과 맥이 닿아있다고 했으니, 그들의 괴초식에 당하지 않으려고 몹시 고심하던 과거를 회상하며 아직까지 자신의 바둑이 포석과 행마에 다소 약하고 부분전투와 수 읽기에 강미를 드러내곤 하는 것을 예로 들기도 했다.

물론 현재도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는 이창호의 바둑을,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그 심원함을 한 마디로 단정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니,

“예전에는 ‘음(陰)’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능동적으로 신수를 구사하고 선제공격을 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창호를 이제 어느 한 틀에 가두어 논할 수는 없다.”고도 말한다.

이제까지 바둑세계에 등장한 역대 위대한 기사들의 장점을 모조리 망라한 것 같다 고까지 극찬되는 고금의 최강자 이창호이지만 실제 그의 바둑이 기량과 전적에 비해 응당한 찬사를 받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린 느낌이다.  

"행마나 전투감각도 좋은 것 같지 않고 약한 데가 많은 바둑인데 잘 이긴다" "이창호는 다만 기다릴 뿐인데 왜 다른 기사들이 지레 무너지는 줄 모르겠다" 는 입단 초기의 평가도 그러했지만 무명의 낯 선 상대에 가끔 어이없이 패점을 기록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른바 '물 징크스' 라 해서 이창호의 바둑에 대한 고도의 집중성을 흐트려 놓게 하던 해외 대국에서의 부진등이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다만 탁월한 형세판단과 신산(神算)의 경지에 달한 끝내기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 였지만 전대의 제일인자인 스승 조훈현을 이기기 위한 바둑일 뿐 독창적인 새로운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바둑판을 차고 앉아 장구하게 괴괴한 승부호흡을 토해낸다는 식으로 해석하였으니,

실상은 이창호 바둑의 본질을 제대로 세인들이 헤아리지 못한 데에도 큰 이유가 있지 않았던 가 싶다.

이창호가 흑도류에 속한다고 본 것도 그가 도달한 심오한 경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러한 오독(誤讀)에 기인한 것이 아닐 까 하는데...

그렇다면 흑도류라는 것은 무엇일 까?

물론 여기서 흑도라는 개념은 그것이 내포하는 이념이나 행태가 아닌 무공노수와 관련된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무협에서 흑도류라는 것은 백도(白道) 정종무학(正宗武學)의 양대원류인 불가(佛家)와 현문(玄門)의 이단(異端)인 방문좌도(房門左道)에 연원하는 것으로 보는 데,

역천역행(逆天逆行)을 바탕으로 상생(相生)과 조화(造化)가 아닌 상극(相剋)과 파괴(破壞)를 추구하는 것으로 해서 속성(速成)이 가능하며 무공노수가 음독신랄(陰毒辛辣)하고 편격궤이(偏格軌異)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반해 정도의 무학은 천지간의 정도(正道)에 따라 순리순행(順理順行)을 지향하는 것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연마해야 상승지경(上乘之境)에 도달할 수 있으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하고 정기심후(精奇深厚)함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겠다.

해서 '십저(十低) 삼십동(三十同) 육십고(六十高)' 란 말이 있으니, 곧 백도의 무학은 십년 연마해서는 흑도에 뒤지지만 삼십년을 고련할 경우 비등해 질 수 있으며 일갑자(一甲子)를 넘게 참오한 다면 능히 대성하여 흑도무학을 압도할 수 있음을 의미 한다.

음독신랄하고 편격궤이하다는 것은 정법(正法)에 기초하지 않고 상궤(常軌)를 벗어난 기괴한 초식으로 상대의 역량을 실험하거나 항시 무서운 암중 노림수를 깔고 일격에 제압하려 한다는 것이니 바둑으로 말하자면 온갖 변칙수나 무리수, 함정수등을 주된 기풍(棋風)으로 한다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바둑에 흑도류라는 것이 있다면 내기바둑이나 아마추어에서는 통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대성(大成)하기 어려울 것이니,

프로기사라면 사실 누구나 정법에 기초한 내공과 초식으로 상승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로 봐야 하지 않을 까 싶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프로에 입문하지 않은 '잡초류'의 서봉수처럼 기풍상에 흑도류의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일가를 이룬 드문 예(例)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기풍의 차이를 흑백도(黑白道)가 아닌 특성의 차이에 따라 음(陰)과 양(陽)으로 나눠보는 것이 차라리 사실에 근접하고 묘미(妙味)가 있지 않을 까 생각된다.  

다만 음양을 흑백으로 단순하게 구분짓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는데

'화려하면서도 강렬하게 번쩍이는 양강(陽剛)'이 백도류의 정화(精華)라면

다른 한편으로 '깊고 그윽하며 유연하게 물처럼 흐르는 음유(陰柔)'도 역시 백도류의 정수(精髓)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기풍의 차이가 곧바로 강약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니,

흔히 무협에서도 말 하듯 어떤 무공을 익히는 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무공을 얼마나 극치(極致)의 경지까지 터득하였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것처럼 요는 바둑에서도 기풍의 문제가 아니라 음유지학(陰柔之學)이건 양강지학(陽剛之學)이건 간에 어떤 것이든 완벽하게 소화하여 자기류의 바둑을 둘 수 있는 냐의 여부가 실력의 고하(高下)를 결정짓는 것이리라.

하나의 길에서 절정에 달한 고수달인이 음양전변(陰陽轉變) 물극필반(物極必返)의 이치대로 전혀 새로운 질(質)과 양태(樣態)로 자기를 갱신(更新)하게 된다는 것은 동양적 사유의 극치(極致)로서 이론상으로는 그럴듯 하지만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추상적 개념으로 나와 같은 범인에게는 현실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세계로 보여지는데,

그럼에도 진정한 절대고수, 신의 경지에 달한 바둑이라면 음양(陰陽)이 상생(相生)하고 강유(剛柔)가 조화(造化)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원만(圓滿)하고 천균(天均)을 이룬 완벽한 경지일 거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는 바,

고금을 망라해서 바둑의 고수들 중 그와 같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 있으며 또한 거기에 도달한 가능성을 거의 유일하게 품고 있는 바둑은 이창호의 바둑이 아닐 까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이창호지만 분명 그의 바둑 원류는 '밝고 강렬하며 빠르고 가벼운' 양(陽)이 아니라 '어둡고 부드러우며 느리고 무거운' 것을 본령으로 하는 음(陰)의 계열에 속한다.

그러한 이창호바둑의 특성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이정제동(以靜璪)'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움직임을 제압한다.

이창호는 말한다. 느림에도 가치있는 느림(두터움과 같은...)이 있고 그러한 느림은 능히 빠름을 이길 수 있다고.

주지하다시피 이창호는 실제 그러한 바둑으로 포석과 행마등의 속도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승 조훈현을 무수히 이겨왔다.  

무협으로 말하자면 지검(止劍)으로 쾌검(快劍)을 제압한다고 할 까.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 수를 내지 않고 이기며 무변으로 다변을 제압한다.

물론 이창호도 형세가 불리한 바둑이라면 무리성을 수반한 승부수를 던지기도 하며 상대의 도발이 한계를 넘어설 때는 강력한 응징으로 맞대응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드물지 않은 실전 예도 있지만 대체로 이창호의 바둑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로, 복잡하고 어려운 변화를 피해 알기쉽고 간명하게 승부를 결정짓는 길로 향한다.

고수의 경지를 넘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어 볼 그러한 경지 - 싸우지 않고 이기며 알기쉽게 이긴다. - 는 것을 이창호는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었을 까?

첫 째, 전체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천시(天時)에 부합한다고 비견할 만한 절묘한 타이밍에 적절한 응수타진으로 상대의 의도와 예봉을 사전에 차단하고 무력화시킨다.

둘 째, 항시 정수(正手)와 정법(正法)으로 일관하면서 무리를 범하지 않고 상대가 헛점을 드러내 스스로 파탄에 이르게 한다.

세 불리를 느낀 상대가 어쩔 수 없이 무리수를 날리며 도발해 올 때는 이미 주위 환경과 병력배치에 있어서 지리(地利)상의 이점(利點)을 안고 있는 유리한 여건에서 전투를 개시하는 것이니 대개 싸우기 전에 승부를 결정지어 놓은 것과 다름 아니다.

셋 째, 탁월한 형세판단과 계산력을 바탕으로 정묘섬세하기 짝이 없는 끝내기로 판을 닦아나감으로써  더 이상의 변수를 허락하지 않고 승리를 마무리하는 이창호라는 사람(人)의 능력이다.

이렇듯 순리에 따라 간명(簡明)하게 승부를 결정짓는 이창호의 바둑을 보노라면 병법의 대가 손자가 갈파한 핵심원리가 그대로 녹아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바둑은 오직 이창호만이 완전에 가깝게 둘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한 판의 바둑속에 깔려있는 엄청난 변화의 여지를 완벽하게 풀어 버리는 깊고 깊은 수 읽기, 고도의 부동심과 자기 절제력, 신산으로 불리우는 형세판단과 계산력, 오랜 시간 극도의 신경을 소모하게 만드는 지구전을 튼튼히 뒷받침하는 체력, 대국에 철저히 몰입(沒入)하고 승부에 대한 집념을 결코 잃지 않음으로써 무수히 많은 미로와 역경, 유혹과 고난에 흔들림 없이 승리의 한 길을 끝까지 견지할 수 있는 승부사의 기질등, 이 모든 것을 고루 갖추고 있는 기사가 이창호 말고 또 누가 있을 까.  

'이유제강(以柔制剛)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

본시 바둑은 두 대국자가 대립 경쟁하는 것이기에 부단히 상대의 의도를 거스르면서 상대를 압박하고 나의 이득을 챙기는 한 편으로 다른 상대의 손해를 강요하는 제로 섬의 게임이다.

피차간의 의도가 어긋나는 경우 이는 필연적으로 공격과 전투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이러한 숙명을 지닌 반상의 세계에서 전반적인 기량에 비해 전투력이 조금 처진다는 평을 듣는 이창호는 어떻게 그토록 강할 수 있을 까?

루이나이웨이구단은 말한다. 이창호와 대국하다보면 고분고분 내 뜻대로 따라주는 것 같은데도 결과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자신이 손해인 경우가 많다고.

즉, 패도적인 힘을 믿고 사납게 달려드는 상대에 대한 이창호의 응수는 대개 한 발 비켜서거나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하여 다른데서 이득을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균형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무술로 말하자면 이창호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제압하는 유술(柔術)의 달인(達人)일 것이다.

아니 무협에서 인용되는 내가(內家) 상승기예(上乘技藝)로 보다 멋지게 비유하자면 불가의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 - 네 푼의 힘으로 천근을 감당한다' 현문의 '도음접양(導陰接陽)'이나 '이화접목(梨花接木)', 김용의 소설에 나오는 '전도건곤대나이(顚倒乾坤大 移) - 하늘과 땅을 뒤바꾼다' 것등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까 한다.

이렇듯 깊고 그윽하며 완만하고 중후함으로 절정의 경지에 이른 이창호류의 바둑은 고래(古來)로 부터 이어져온 동양적 세계관과 완벽히 부합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제까지 존재했던 어떤 기풍보다도 격조높은 차원을 이루고 있는 백도류의 최고봉(最高峰)이라 감히 단언하고 싶다.

이와같은 연유로 해서 이른바 이창호류는 스포츠화되고 있는 바둑의 승부에 만 강한 것으로 폄하 될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절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독창적인 바둑이라 생각된다.

참으로 고수의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유현(幽玄)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이창호류에 심취하게 되는 것은 단지 성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여 이창호의 바둑이 앞으로 어떤 변화의 궤적을 그릴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이제까지 그 자신이 각고의 노력으로 구축한 심원한 경지를 경시함으로써 무리하게 이질적인 변신을 시도할 필요는 없지 않을 까 한다.

이창호의 바둑은 겉으로 드러난 성적뿐만 아니라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위대한 내용을 갖고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이창호의 바둑을 특정한 기풍으로 정의하고 그에 비유되는 선명한 형상이나 이미지로 잡아본다면 어떤 것이 어울릴 까 하는 점이다.

후세에 20세기를 빛낸 바둑기사들을 꼽는 다면 아마도 화점혁명을 일으킨 다케미야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다 알다시피 중원을 경영하는 호방한 세력바둑으로 일가를 이룬 다케미야의 바둑을 일러 우주류(宇宙流)라고 하는데 정작 다케미야 본인은 90년대 초반 이창호와의 대국을 앞두고 자신의 바둑을 우주류가 아니라 자연류(自然流)라고 불러 달라고 한 기사를 월간바둑에서 오래 전에 본 적이 있다.

우주류가 점차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이전까지와는 달리 중앙의 큰 집을 지향하는 세력일변도가 아니라 세력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공격을 통해 세력과 실리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바둑을 두고 싶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사의 결론은 이창호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한 다케미야의 바둑은 아직 우주류일 뿐 자연류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듯 하다는 것이었다.

'대자연류(大自然流) - 어떠한 인위(人爲)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며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 으로 정의한다면

이 대자연류라는 표현이야말로 무위지심으로 순리순행에 따라 승리의 길을 찾아가는 이창호의 기풍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아닐 까 하는데...

비록 먼저 자처한 사람이 있어 꺼리낌은 있지만 내게 있어 '소박하되 졸렬하지 않고 심오하되 복잡하지 않은' 이창호의 바둑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할 말을 달리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자연류라고 이름할 이창호바둑의 특징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이미지나 사물은 무엇일 까?

그것은 자연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물(水)'이라고 생각된다.

예로부터 '상선여수(上善如水)'라는 말도 있지만 군자처럼 선후(先後)를 다투지 않으며 특정한 기세나 형상없이 (水無常勢, 水無常形)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을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避高而墜下) 물이야 말로 이창호의 바둑에 가장 어울리는 속성과 인상을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물이라는 것은 일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을 뿐 더러 '유장하게 흐르다가도 급류와 폭포의 기세를 드러내며 잠잠하지만 때론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노도처럼 밀려드는 힘을 보여주며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않는 듯 하지만 아무리 작은 헛점이라도 파고들어 무너뜨리는 끈질김을 갖고 있으니' 자연속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물질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러한 속성을 갖는 물이야 말로 현재의 경지를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질로 자기를 완성하려는 이창호바둑이 본원적으로 쉽게 동화될 수 있으며(같은 음(陰)의 계열에 속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범으로 삼을 만 한 그 무엇이 아닐 까 하는데.

유수지도(流水之道)라 이름 할 만한 바둑!

특정한 형상이나 기세가 없으니 상대는 방비하기 어렵되 자신은 온갖 기세와 형상을 꾸릴 수 있으며,

정법과 정수에 의거하여 유유히 흐르지만 그것을 가로막으려는 상대는 초수(招數)가 지날 수록 역리와 역행의 처지에 몰려 곤궁에 빠지게되며, 종래에는 굳이 무너뜨리려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너지게되고 이기려 욕심내지 않아도 결코 지는 일이 없는 지극한 경지의 바둑에 이른다면, 우리는 그것을 도(道)의 경지에 이른 완전한 바둑,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천의무봉에 도달한 절대의 바둑이라 할 만 하지 않을 까.

"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다만 자(字)를 지어 도(道)라 부른다. 억지로 이름 붙여 '큰 것(大) 이라고 한다." (老子 道德經)

(이창호의 바둑이 흑도류에 속한다는 글을 보고 오랫동안 마음 먹었던 글이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군요.

비록 취미삼아 쓰는 글이지만 한 달에 두 세번 정도는 글을 올리려 생각하는 데 역시 어렵습니다.

예전에 이 곳에 올린 '이창호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신사천왕은 얼마나 강한가'의 속편들에 해당할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에 관한 글도 언젠가 올릴 생각을 하고 있지만 두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마음 뿐이고요...

그외에도 바둑계의 동향을 개괄하는 내용의 글로서 '풍운을 부르는 2003년 반상의 승부세계'의 속편에 해당하는 글들은 금년중 에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올려 볼 까 생각중입니다.

물론 재미로 하는 일이니 어느정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둑을 통한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은 심정에서지요.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준데 대해 꾸벅 감사드리며 모든 분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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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r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3-19 00:06)


Comment ' 4

  • 작성자
    Lv.1 등로
    작성일
    03.03.19 00:12
    No. 1

    오옷.. 머릿부분 문구가 너무 좋았어요..와하..
    정말 한편의 무협을 보는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어린아이
    작성일
    03.03.19 00:14
    No. 2

    켁....-0-;;
    버들언니 말대로.. 으허허..
    정말.. -_-)b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녹슨
    작성일
    03.03.19 00:30
    No. 3

    천하제일고수 이창호!! 우리나라에도 청소년용 바둑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아메바
    작성일
    03.03.19 16:50
    No. 4

    이창호 9단을 지칭하는 말로 천하제일고수는 다소 박하죠. 고금제일고수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훈현 9단을 더 좋아합니다만.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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