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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펌]상전벽해

작성자
Lv.35 김역인
작성
03.02.28 17:42
조회
465

// 안녕하세요...

심심할때 들어가서 읽어보는 축구동의

추천게시물에서 하나 펐습니다...

아..98WC에서의 그 악몽의 네덜란드전의 분위기....

1. 마르세유의 오렌지 물결을 우리는 4년 뒤 되갚았습니다.

한국의 월드컵 출전사 중 처음으로... 관중석이 모조리 홈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경기를 우리는 경험했던거죠...

이후 경기장에서의 유니폼 서포팅이 그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깨달았죠...(당시 TV로 시청할때마저 느껴지던 그 오렌지색

압도감...)

이후 우리는 붉은 물결이 뭣임을 2002년 경기장 뿐이 아닌

거리에서도 보여줬고...^^;

2. 우리에겐 악몽이었지만 세계인들에게는 경탄을 선사한 완벽에

가까웠던 네덜란드의 토탈사커... 지금의 우리 팀의 컬러가

네덜란드를 따라가고 있는 걸 보니...5-0으로 진 것은 분명히

하나의 전기였음에는 틀림없군요... 단 하나의 반격도 허용치

않던 초강팀 네덜란드를 겪으면서 축구팬들 눈이 많이 올라갔고..

무엇보다 '깡으로는 죽어도 안되는 상대가 브라질만 있는게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어 근본적인 축구 시스템의 최적화를 추진하게 되죠.

3. 마르세유에 원정가셨던 붉은악마분들...

경기 후에 얼마나 맘상하셨을까요...

그리고 4년뒤 2002년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생각해보니 참 감회가 새롭군요.

좀 길지만 여러가지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한번들 읽어보세요

원전은 go soccer 14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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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이은호] 붉은악마 프랑스 원정 후기(3)           관련자료:없음  [435]

보낸이:유영춘  (everyou )  1998-09-19 11:47  조회:384

                    98.8.7 23번 게시판의 글.

#10219   이은호   (Fortuna )

[후기] 원정, 그 준비에서 한일공동...(3)      08/07 13:28   394 line

  - 1진 그 준비에서 한일공동응원까지 -

  (3) 오렌지의 파도에 압도당한 네덜란드전

  6월 20일 알람소리에 눈을 떠보니 6시 40분. 간단히 세면을 하고 2진을 마

중하기 위해 같이 역으로 나갈 장재형님과 현관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현관은

밖에서 잠겨있는 상태. 관리인한테 물어보니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는 현

관 뿐인데 밖에서 잠궈 다음 근무자가 오는 정각 7시 30분에야 열린다고 한

다. 정말로 다른 출구가 없나 이리저리 찾아봐도 모두 잠겨있는 상태.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한다. 창문 밖에는 인철님이 응원도구들을 싣고 온 흰색 밴

차량이 보인다. 역시 인철님도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있어서 못들어온 모양이

다. 그래도 무사히 여기까지 온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

  7시 30분이 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올수 있었다. 밴차량으로 가

서 인철님을 본다... 세상에 이건 정말로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몇일간 면도

를 못해 온통 덥수룩한 수염에 헝클어진 머리 게다가 입술은 모두 부르튼 모

습을 보며 네덜란드에서 고생을 엄청했구나 하는게 절로 느껴졌다. 하지만 시

간이 없었다. 문이 안열려서 이미 30분이나 늦어진 상태. 인철님을 깨워서 문

이 열렸으니 안에서 자라는 말을 하고 다시 마르세유역으로 달려갔다.

  현관에서 허비한 시간에 다시 버스가 안와서 20분을 소요하고 허겁지겁 역

에 달려간 시간은 8시가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벌써 갔으면 어쩌나 하는 걱

정에 들어서는 순간 저멀리서 보이는 붉은 옷의 무리들. 아 2진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붉은악마 원조멤버로 파리에 있는 정성우님과 2진 단장인 예성호님이 신경

을 많이 쓴 덕인지 2진 모두는 그다지 피곤한기색 없이 오히려 결전을 앞둔

패기에 넘친 얼굴들이었다. 갖은 고생에 거의 모든 기력을 상실한 우리 1진만

보다 이렇게 보는 2진의 모습은 정말로 든든했다. 이 정도 기세라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 그러나 지나친 흥분은 금물이라는 생각에 먼저 어제 경찰청 사

람들이 말해준 협박성 정보중 엑기스만 뽑아서 간단히 설명했다. 안전문제를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예성호님의 말씀이 있은 후 숙소로 이동하기 시작. 우리

가 탄 버스는 다시한번 한국인 전세버스로 변했다.

  정류장을 착각한 나의 실수(^^;)로 마르세유의 강렬한 햇빛을 한차례 느끼고

서야 우리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다른인원들은 식사를 하는 중이

었다. 곧이어 리용에서 헤어져야 했던 김시문대리님 그리고 저멀리 한국에서

온 2진과의 해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1진은 그동안의 고생때문에 그다지 반

가운 감정표현은 하지 못하는 상태. '어... 왔구나... 그래 고생은 안했고...?'

2진

은 이런 우리들의 뜨거운(?) 환영에 다소 섭섭했었을 것이다.

  장거리 여행을 마친 2진 인원들은 각자 방으로 가서 샤워 및 휴식을 취하게

하고 우리들은 밴으로 가서 응원도구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리용에서의 쓰라

린 패배 속에 비를 맞으며 접었던 통천, 걸개유니폼, 그리고 태극기... 다시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다시 떠오르는 아쉬움.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었다. 어떻게 되든 오늘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전 나이지리아가 스페인을 3:2로 이겼다고 한다. 그런 나이지리아를 5:1

로 이겼다는 네덜란드... 정말로 우리가 할수 있을까... 한편으로 자꾸 떠오르는

불안한 잡념들을 애써 지우며 계속 차에서 응원도구들을 내렸다.

  응원도구를 다 내리고 접고 정리한 후 다시 차에 실으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모두 모여 먹는 점심. 메뉴는 2진이 가져온 온도락이었다. 처음 보는

온도락이 신기한지 몇명은 포장을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만 한다. 그러나 이

온도락마저 바닥나 사발면과 빵으로 연명해야만 했던 우리... 간단한 시범을

보인 후 허겁지겁 먹을 뿐이었다. 모처럼 따뜻한 온도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니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경기는 저녁 9시. 여기서의 출발은 4시였다.

무사히 2진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그동안의 쌓여왔었던 긴장이 일순간 풀린 탓

일까.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온다. 얼마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장재형님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선발대 인원이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랜다. 멕시코전 선발대로 응원도구를 혼자 다 챙기며 맹

활약했던 윤종현님이 몸살로 쓰려졌기 때문에 내가 대신 선발대로 가야 한다

는 것이다. 보니 정말로 종현님은 이불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한명이 들어도 무거운 우리의 짐박스를 혼자 두세개씩 들며 리용에서 밀라노

에서 그리고 로마에서 뛰어다니시던 윤종현님. 무슨 일이 있어도 끄덕없을 것

같던 체력의 종현님마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정말 힘든 여정이라는 것이 다

시한번 느껴졌다.

  선발대는 한번의 경기를 통해 현지사정을 어느정도 파악한 나와 반우용님,

조승옥님, 장재형님 이렇게 1진 인원 4명과 전남서포터이신 박숭범님으로 구

성되었다. 밴을 경기장 입구 최대한 가까이 대고 가능하다면 게이트 앞에까지

응원도구를 옮기는 것이 임무였다. 쉬워보였지만 경기장 주변의 도로는 모두

교통통제에 걸려있어 모르는 일이었다.

  경찰에 걸린다는 말을 듣고 짐칸 창문에 모두 신문지를 붙여 막은 후 짐칸

에 올라탄다. 응원도구로 가득찬 짐칸은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억지로 몸을 쑤셔넣고 밖에서 문을 잠궜다. 드디어 운동장

으로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흔들리는 짐칸에서 우두커니 서로의 얼굴을 얼마나 쳐다봤을까.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며 차가 멈춰선다. 무슨 일인가 싶어 운전석으로 기어가 밖을 내

다보는 박숭범님. 얼마후 끄악~ 소리를 내시더니 질린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

이었다. 왜그러냐는 물음에 대답은 못하고 한번 밖을 내다보라는 손짓. 창문에

붙은 신문지를 약간 들어서 밖을 보는 순간. 나도 그냥 끄악~ 소리를 내는 수

밖에 없었다.

  창문밖에 펼쳐진 광경은 오렌지색 바다였다. 우리차가 있는 부두전체가 그

야말로 온통 오렌지색. 세상에... 수백명의 인원이 모두 오렌지색 옷을 입고 돌

아다니는 광경. 그냥 너무 기가 막혀서 입만 벌어졌다. 모두 이렇게 창문에 붙

어 그냥 멍하니 밖만 보고 있는데 술에 취했는지 약에 취했는지 오렌지 떡대

두명이 우리 차 앞에서 비틀비틀 걷다가 갑자기 옆의 바다로 풍덩 빠지는 것

이었다. 저거 빠져죽는거 아닌가 생각하는 순간 다시 비틀비틀 물에서 기어나

오는 두사람. 완전히 눈동자가 풀려있었다. 도저히 술을 마셔서 그렇게 되었다

고는 보이지 않는 상태. 약을 한것 같았다. 그래도 낄낄거리며 서로의 옷을 벗

어 물을 짜고 있는 이들 곁으로 젊은 프랑스 아가씨 한명이 총총걸음으로 지

나가려한다. 갑자기 여자를 와락 껴안는 오렌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여자는

놀라 비명만 지르는데 오렌지는 그녀를 번쩍 들어리더니 바다에 내다던지려고

한다. 완전 경악 - 그 자체였다. 건너편에 있던 프랑새 청년 두명이 이 광경을

보고 사색이 되어 달려와 오렌지를 걸어 넘어뜨린다. 한바탕 격투 끝에 간신

히 여자를 구출. 오렌지는 뭐라 쏭알거리며 사라진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짐칸의 창문을 통해 바로 코앞에서 이를 지켜본 우리에게 있어 이

광경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오늘 언제 우리 일행 누구에게 저런 일

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모두들 굳은 표정. 머리속에는 오늘 살아서 돌아

가긴 글렀다는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에라~ 그래 오늘 죽자!' 라고 소리치는

'부산싸나이' 반우용님. 그랬다. 사람수마저 적은 상황에서 기마저 죽으면 안된

다. 반웅용님의 한마디에 무슨일이 있어도 기는 죽지 말자는 결의를 하며 차

는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걱정했던 대로 운동장 주변 도로라는 도로는 온통 교통통제에 걸려있었다.

재불한인회에서 얻은 대사관용 신분증으로 간신히 들어는 왔지만 우리의 게이

트는 반대쪽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 사방이 일방통행인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

하게 되었다. 다른 인원들에게 게이트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장재형님과 반

우용님이 내려 '고구려의 孫' 깃발을 깃대에 걸어 먼저 게이트쪽으로 가기로

했다. 단 둘이서만 가는 상황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응원도구를 옮기는

일이 더 급했다. 경찰한테 가서 다시한번 사정사정해 차를 돌리고 우리 게이

트가 있는 쪽으로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여기도 게이트에서 200m나 떨어

진 지점. 한명은 짐을 지키고 나머지 세명이 응원도구를 옮기는 수밖에 없었

다. 게이트에서 검사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빠듯했다. 빨리 옮겨야 한

다는 생각에 양 어깨에 걸개유니폼이 든 박스를 들고 게이트로 뛰며 혹시나

도와줄 한국사람이 없나 찾아보지만 사방에 보이는 것은 온통 오렌지뿐. 온세

상이 오렌지로만 덮여 있었다.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표준이었고 오렌지색 청소부 복장에서부

터 오렌지색 티셔츠 오렌지색 장갑까지... 하여간 누구든 어떻게 하서든지 오

렌지색으로 된 물건 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멕시코전때 이

미 숱하게 봐왔던지라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정말로 쇼크를 먹었던 장면은

어디 경로당에서 온듯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리들이 내 앞을 지나갔을 때였

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들은 모두 오렌지색 양복에 오렌지색 넥타이

를 메고 할머니들은 모두 오렌지색 빵모자를 쓴체 지나가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오렌지 유니폼을 입은 떡대들이 수십명 내앞에서 뭐라 소리쳐

도 기는 죽지 않았었다. 까짓거 내가 오늘 죽기로 각오하고 너네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면 된다는 생각. 우리도 IMF만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와서 얼마든 맞설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 그래 지금은 머리수에서

만 안된다 뿐이지 몇배로 노력을 하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에 계

속 버텨왔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니까 문제는 단순한 머리수

가 아니라는것이 순간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 나이의 사람들까지 오렌지색

옷을 입고 오는 그네들 축구문화의 깊이... 거기에 나도 모르게 기가 질려버리

는 것이었다. 멕시코전때 우리가 아무리 목에 피터져라 소리쳤어도 모든 멕시

코 관중이 발을 구르며 보내는 파도 한방에 KO되었던 일. 리용 광장의 멀티

비젼 앞에서 모든 프랑스 사람들이 외치던 '알레~ 라~ 프랑~' 의 위용... 프랑

스에 온후 계속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혼자 아무리 이를 악물고 날뛰어도 맞

서기에 너무나 벅찬 이 '축구문화' 라는 것의 거대함이었다. 유니폼을 주겠다

고 해도 흰 면티를 고집하는 레드타이거즈 군단... 유니폼이 안되면 붉은 티셔

츠라도 입고 와달라고 하자 왜 그래야 하느냐고 멀뚱멀뚱 쳐다보던 교민들...

역시 모두 우리에겐 제대로 된 축구문화가 없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서러움들

이었다.

  이런 생각들... 수많은 짐... 게다가 어디에도 한국사람도 안보인다... 자괴감

마저 든다. 순간 오렌지의 바다 위에 우뚝 솟아있는 '고구려의 孫' 깃발이 보

인다. 아~ 반우용님과 장재형님이 무사히 게이트안에 입장했구나. 한국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모든일은 순간 잊혀진다. 때마침 도착하는 본진. 그래 오늘

은 오늘일만 생각키로 하자. 본진들과 함께 힘을 합해 응원도구들을 게이트

앞에까지 옮기며 다시한번 결의를 다진다.

  이제 입장이었다. 각자 응원도구들을 배분받아 경기장 안으로 이동. 현수막

과 걸개유니폼을 든 우리조는 가장 먼저 입장키로 했다. 역시 이번에도 경찰

검색이 문제였다. 오히려 걱정했던 징은 무사히 통과한 반면 이번에는 걸개유

니폼을 가지고 트집잡는 것이었다. 상표명이 있으면 절대 안된다는 말을 하며

모든 유니폼을 다 펼쳐보라고 하는 경찰들.시간이 없었지만 최대한 협조키로

하고 모든 유니폼들을 펼쳐준 후에야 우리들은 입장할 수 있었다.

  계단을 통해 우리가 자리잡은 골대 뒤 윗자리에 들어간 순간. 다시한번 입

이 벌어졌다. 맞은편 골대 뒤편 그리고 왼편의 본부석 맞은편 자리. 온통 오렌

지색 융단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수천명의 오렌지들이 마르세유의 태양 밑

에서 형광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저속에는 아까 봤던 오렌지 청소부부터 오렌지 넥타이를 맸던 할아버지, 오

렌지 빵모자를 썼던 할머니까지 있겠지... 그러니 저런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에 다시한번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이도 잠시뿐 재빨리 응원도구들을 배치시

켜야 한다. 다행히 이번 우리자리는 한국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태극기 통천을

위치시키고 양해를 구한 뒤 우리가 앞쪽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

깝게도 선수들의 걸개 유니폼을 걸 장소가 없는 현실. 하는 수 없이 한글 '붉

은악마' 기 하나만 통로쪽에 거는 수밖에 없었다.

  경기시작전 관중들을 위해 양국의 가요가 나온다. 네덜란드 노래 몇곡이 나

온후 우리나라의 '손에 손잡고' 가 나온다. 모두들 부르는 손에 손잡고. 경기장

분위기는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둥.둥. 두.두.둥. 대~~한.민.국!' 우리가

디어 응원의 포문을 열기 시작한다. 50명의 인원으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응

원. 어느정도 먹히는 것만 같다.

  얼마후 선수소개가 시작된다. 먼저 한국선수소개. '넘버 원. 김.병.지., 넘버

투. 최.성.용. 넘버...' 한국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한국의 출전선수들을 불러준

다. 이름이 나올때마다 모두들 선수이름을 연호하지만 너무 빨리 부르는 덕에

이마저 흐트러진다. 조금만 천천히 불러주면 좋을텐데... 라는 아쉬움. 그러나

그럴 것도 잠시뿐 곧이어 있는 네덜란드 선수소개는 우리를 완전히 맛가게 했

다.

  '넘버 원~~! 에드윈 반~ 데르르르르~ 사~~~!', '넘버 세븐~~! 로로로로~~~날드

드 보~~~어!', '넘버 에이트~~! 데~~니~~스 베르르르캄프!'... 마치 복싱경기에서

선수 소개하듯 걸걸한 목소리의 아나운서는 목청껏 선수 한사람 한사람의 이

름을 외치고 이때마다 모든 오렌지들이 와~! 하며 여기에 보답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완전 네덜란드 홈 분위기.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한풀

꺾고 들어가는 격이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그냥 네덜란드판이 되는 걸 쳐다보

기만 해야하는 신세에 화도 나지만 아무런 도리가 없었다. 같은 선수소개인데

왜 우리는 저러지 못할까라는 아쉬움. 우리는 한번도 그래본적이 없었다. 그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킥오프. 네덜란드의 응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네덜란드의 관악밴드 '오렌지 후터스'에서 연주를 시작하자 여기에 맞춰 노래

부르는 관중들. 그러나 그 노래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바로 11월 1일 한일전때 울트라 니폰에서 열심히 부르던 '아라아레~ 아

레아레~아 니뽄~~...' 이 네덜란드 응원석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작년 우리 응

원이 일본표절이라며 붉은악마 죽이기에 열을 올리던 영남일보 생각이 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들이 여기와서 이걸 한번 보았더라면...

  우리가 자리잡은 상층부는 잠실의 2층에 해당하는 높이였는데 잠실하고는

정말 비교가 안되었다. 관중석을 운동장에 가까이 급경사로 올린 덕에 선수가

잘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라운드 전체가 바로 한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말

로만 들어오던 포메이션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 순간 느껴졌다. TV중계를 백

날 보아도 느낄 수 없는 감정. 아 정말 이것이 전용구장의 위력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실을 고쳐서 월드컵 개막전을 치루자는 작자들이 이런

데를 한번이라도 와봤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경기초반 네덜란드의 탐색전. 우리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뛰었다. 공이 근처

에만 오면 밀착마크. 한사람이 뚤리면 다른사람이 달려와 막고 또 뚤리면 다

른사람이 달려오고. 정말 필사적으로 뛰었다. 이런 와중에 김도훈의 슛이 옆

그믈망을 때린다. 골!!!? 아~! 아니다... 아깝다... 두둥! 두둥!! 김.도.훈! 을

외친다. 잘하면 될것도 같다는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확히 15분이 지나자 네덜란드의 공격진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최종수비 두명은 하프라인까지 밀고 올라가고 양사이드의 윙백이 공격에 가담

한다. 측면의 미드필더 두명은 아예 포워드 위치까지 올라간다. 4-4-2가 아니

라 완전히 상대방을 에워싸는 2-4-4 였다. 이러자 공을 제대로 만져볼 틈조차

없는 한국. 네덜란드는 공을 오른쪽으로 찔러줬다가 다시 뒤로 빼고 왼쪽으로

찔러줬다가 다시 뒤로 빼는 패스만 반복할 뿐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공을 빼

앗기 위해 열심히 쫓아가지만 매끈한 잔디 위에서 이루어지는 패스는 단 한번

의 미스도 없다. 골대뒤에서 보니 오렌지색 유니폼이 에워싼 형태로 푸른 유

니폼의 무리가 공따라 오른쪽으로 우르르~ 왼쪽으로 우르르~ 뛰는 모습만 안

타깝게 보일 뿐이었다.

  이러며 계속되는 몇차례 위기 그러나 김병지의 선방으로 잘 넘긴다. 아 제

발 조금만 더 버텨라 라는 생각. 문득 누군가 10분만 버티면 돼! 라고 외치는

순간. 골문 앞에서 베르캄프의 패스를 받은 코쿠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슈팅을

날린다. 순간 철렁이는 네트. 아~ 골이었다.

  갑자기 스피커에서는 경기장이 무너질듯한 음악이 나오더니 전광판에 온통

번쩍이는 'BUT! BUT! BUT!' 글씨. 뒤집어지는 오렌지들. 난리가 한차례 가

라앉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한번 아나운서가 분위기에 불을 지른다. '필리

리리립~~ 코~~~큐~~~~~!' 다시한번 뒤집어지는 오렌지들. 우리는 목청껏 '괜.찮.

아!' 를 외쳤지만 이 난리에 들릴 턱이 없었다.

  얼마후 네덜란드의 왼쪽 코너에서 상대방의 반칙상황. 프리킥이었다. 한골을

잃은 선수들은 이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에 수비두명만 남기고 전원 하프라

인을 넘는다. 킥. 김도근의 휘어져들어오는 센터링. 그러나 네덜란드의 장신수

비수에게 걸린다. 갑자기 역습으로 들어가는 네덜란드. 순식간에 마치 무슨 파

도가 올라가는 듯 네덜란드 선수 전원이 우리 골대쪽으로 올라온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가슴이 철렁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오버마스가 한차

례 페인팅으로 최성용을 가볍게 따돌리고 슈팅을 날린다. 다시한번 출렁이는

네트. 경기장은 또 뒤집어진다. '마르크~~~ 오버마스~~~~!' 아나운서도 신이 나

서 소리를 지른다.

  얼마후 심판의 휘슬. 하프타임이었다. 전반전 0:2. 이게 정말로 평가전에서

나이지리아와 파라과이를 5:1로 개박살냈던 네덜란드구나 라는 생각. 한편으로

는 94년 독일과의 경기가 떠올리며 '그래도...' 하는 한가닥 기적에 미련을 둔

다. 제발 1골만 넣는다면... 물을 마신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Eastern Soccer

Revolution 통천을 준비한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돌아오고 통천이 올라간다.

아 제발 이 통천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힘을 내라.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후반전 시작.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죽어라

뛰어다니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은 그 와중에 생기는 빈 공간에 정말 기가 막히

게 패스를 계속 찔러 넣는 것이었다. 어 저기 빈공간 막아야 할텐데 라고 생

각하면 어김없이 들어가는 공. 정말 얄밉도록 정확하게 들어가는 그 패스에

말그대로 기가 막힐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잔디에서 차는 것이 이런건가. 개인

기도 패스도 정말 네덜란드는 완벽했다.

  이렇게 계속 끌려 다니길 25분. 그때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던 베

르캄프가 이제 자기 차례라는 듯 세 번째 골을 터뜨린다. 이민성과 김태영을

가볍게 따돌리고 우리 오른편 네트에 꽂히는 슈팅. 이제는 끝났구나 라는 생

각에 고개가 떨궈진다. 0:2와 0:3. 두 스코어가 주는 의미는 천지차이였다.

  0:3 스코어에서 한국의 교체. 서정원이 빠지고 이동국이 나온다. 경험삼아

데리고 왔다는 이동국... 그 이동국이 정말로 나오다니. 마지막 희망 이동국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지만 차감독도 이제는 게임을 포기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

다.

  얼마후 오버마스의 센터링이 올라오더니 교체해 들어온 반 호이동크가 우리

골대에 헤딩을 꽂아 넣는다. 0:4. 이제는 응원할 마지막 기운도 사라졌다. 몇

명의 눈가에는 눈물만... 자리 곳곳에서는 담배연기만 피어오른다.

  반면 건너편 네덜란드 응원석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야간조명 밑에서 형

광색으로 빛나는 수천명의 오렌지들. 이들이 모두 어깨동무를 하며 아리랑 목

동 비슷한 율동을 하는데 수십미터 높이의 오렌지 파도가 우로 들썩였다 좌로

들썩이는 장면은 사람을 완전 맛가게 했다. 게다가 낮고 장중한 음의 그네들

응원가가 경기장 사방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만명이 넘는 관중 전체가

부르는 노래는 우리가 악을 쓰며 외치는 응원가와는 달랐다. 뭐랄까 사람을

완전히 압도하는 장엄함 같은 무게가 있었다. 정말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선수들은 모두 땅을 쳐다보며 경기를 포기한 상황. 그러나 교체해서 들어간

이동국만 혼자 패기만만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페널티 에리어 밖에서 갑작

스레 날리는 중거리 슈팅. 골키퍼의 선방으로 골대를 살짝넘는다. 얼마후 다시

코너킥애 이은 헤딩슛. 역시 이번에도 선방에 걸렸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패기가 서려 있었다. 아~ 이동국이 있었다. 황선홍이 빠

진 상태에서 공격한번 제대로 못한체 유린당하는 대표팀. 그러나 그 참패속에

이동국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그 가능성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목청껏

이동국의 이름만 외칠 뿐이었다.

  후반 37분 로날드 드 보어의 마지막 골.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더이상의 실

점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화가 난다던지 슬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단지 네

덜란드가 대단하다는 생각뿐. 정말 선수들도 그리고 관중들도... 네덜란드는 대

단했다.

  드디어 주심의 휘슬. 네덜란드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깜피오네~를 합창하고  

우리는 묵묵히고개를 떨구었다. 빨리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만 간절

할 선수들이 그래도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 고마웠다. 한차례 선구자를 부르

고... 청소를 시작한다. 솔직히 정말로 하기 싫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떳떳해

야겠다는 생각. 모두들 아무런 말도 없고 청소를 할 뿐이었다. 경기에 져서 깽

판부렸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다른때보다

더 열심히 청소를 했다. 일반 관중들은 모두 떠난 운동장. 반대편에서는 네덜

란드 서포터들만 목청껏 노래하고 있었다.

  청소까지 마치고 경기장 밖으로 나온 시간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 경찰에

둘러싸인 경기장에 있는 동안 잊고 있었던 안전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여자분

들은 먼저 밴에 태워서 보내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가 있는 부두로 향

했다.

  낮에 오렌지들이 난리를 쳤던 부둣가는 다시한번 오렌지들로 난리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승리의 기쁨에 바에서 맥주 한잔씩 걸치고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노래부르는 광경. 비록 상대방이었지만 승리의 기쁨을 아무런 가식없이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반면 마치 패잔병처럼 풀이 죽은우리들. 너무 처량해 불쌍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누군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경기에서 지면 세상이 끝난 거

야?' 라고 소리치며 목청껏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다른

인원들도 모두 가세. 북은 이미 차에 실어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수한 육성과

박수로만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마르세유의 밤거리에 울려퍼지는 한국응

원가. 우리 응원가가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

다. 경기에선 졌지만 마지막까지 당당하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온세상이

자기네것인양 노래부르던 오렌지들도 우리의 노래에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응원가를 부르는 동안 버스가 도착했다. 오렌지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올라탄 버스에는 우리와 아랍애들

3명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자 이 아랍애들이 마치 여기가 자

기네 안방인양 크게 소리지르며 우리쪽을 보며 낄낄거리는 것이었다. 아~ 열

받는다... 그러나 인철님이 강하게 말린다. '가만히 있어!' 그러고 보니 정말로

버스는 오느새 시내를 벗어나 인적이 완전히 끊긴 교외의 비탈길을 달리고 있

었다. 여기서 충돌이 난다면... 이런 생각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다. 그러

나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자 이제는 이놈들이 신났다는 듯 담배 비슷한걸

꺼내서 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연기가 온 버스에 퍼진다. 한모금씩 빤 아랍

녀석들은 눈동자가 풀리고 연기에 나까지 어지러워진다. 담배가 아니었다. 마

약이었다. 속이 메스껍다. 이놈들 우리를 완전히 호구로 보잖아... 이래도 참아

야 하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옆에 있던 이광열님이 벌떡 일어나며 아랍애들

한테 소리를 쳤다.

  '야! 이 새끼들아 당장 안꺼?!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갑자기 버스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험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랍애들. 순

간 버스가 끽~ 하고 멈춰선다. 그러자 앞문이 열리더니 나이 지긋한 운전사가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일이 있나. 우리는 모두 벙~해서 앞문만 쳐

다보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버스로 뛰어들어온다. 경찰이었다. 이들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 뒷문으로 튀는 아랍애들. 우리는 그냥 순식간에 벌어지는 이 상

황을 멍하니 구경만 했다. 알고보니 운전사가 무선으로 신고를 한 것이다. 순

식간에 이 외진 곳까지 와서 달리는 버스를 덮치다니... 정말로 번개같은 프랑

스 경찰의 출동에 그냥 입만 벌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깔끔한 마무리는 우리를 다시한번 놀라게 했다. 도망친 운전

사 대신 레슬링선수 같은 흑인운전사가 나타나 운전대를 잡고 경찰 중 한명은

아랍애들이 도망친 곳에, 나머지 한명은 버스에 우리와 함께 동행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처럼 진행되었다. 정말 프랑스 경찰이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말

이 실감났다. 단순히 경기장 주변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 대

비하는 월드컵 치안... 4년후 우리 경찰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런 완벽한 프랑스 경찰 덕에 우리는 이후 아무런 문제도 없이 무사

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다음날 아침. 차라리 어제 경기가 한차례 악몽이었으면 하는 바램에 눈을

뜬다. 그렇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오늘은 전일 자유시간. 그러나 정말 밖에

나가기 싫다. 95년 영국에 있을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황당한 뉴스를

본 후에도 이렇게까지 비참한 기분은 아니었다. 5:0. 한국축구에 이렇게 참담

한 점수가 있었던가. 쪽팔려서 어떻게 나가나... 차라리 오늘 하루 날 중국인이

나 일본인으로 착각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일. 결국 ALLEZ COREE 라 써있는 티셔츠

를 입고 마르세유 시내로 나갔다. 역시 시내에서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티셔

츠를 보더니 키득거리며 뭐라 쏭알대는 프랑스 사람들. 모든 단어가 다 5와 0

으로 들릴 뿐이었다. 쪽팔렸다. 그러나 뭐라 해줄 말도 없는 상황. 그래 오늘

이렇게 당하는 이 치욕을 똑똑히 기억하자. 4년 후, 이 치욕을 씻기 위해 더

열심히 응원하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말없이 계속 걸었다.

  한편 해변가에 아디다스에서 만든 축구테마파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발걸

음을 해변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변가 한곳에 제법 관중석까지 설치

한 축구장이 보이는 것이었다. 축구장 옆에는 대형 멀티비젼에서 독일과 유고

의 경기를 보여주고 그 옆에는 축구에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말

이 실감났다. 비치 사커부터 PK차기, 스피드건으로 킥 속도 재기, 기계가 공

을 쏘면 이를 막는 골키퍼 연습장, 아기축구대회, 그리고 각종 축구 게임기등

축구에 관련된 놀이란 놀이는 모두 모아놓은 광경... 그 기발한 갖가지 아이디

어들을 보며 정말 축구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구경하고 돌아온 숙소에서는 자메이카가 아르헨티나한테 역시 5:0으

로 깨졌다는 기쁜(?) 소식와 오늘 저녁 이란대 미국의 경기가 있다는 정보가

들렸다. 저녁을 먹은 후 모두 모여 보는 이란과 미국의 경기. 제발 이란이라도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간절한 바램에 모두 이란을 열심히 응원했다.

우리의 열렬한 응원 덕이었는지 2:1로 승리하는 이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결

과였다.

  다음날 마르세유를 떠나는 날. 올림픽 마르세유의 축구샵들을 돌아다니며

마르세유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시내 곳곳에 자리잡은 올림픽 마르세

유의 수많은 축구샵들... 정말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팀이라는 것이 절로 느껴

졌다. 한쪽에서는 우리나라 유니폼도 팔고 있었는데 태극기만 달랑 달아 촌스

러웠던지 거의 팔리지 않고 수북히 쌓여만 있었다. 멕시코전때 엠블렘 없는

내 유니폼이 진짜냐고 물었던 멕시코인 생각에 다시한번 쓴 웃음이 나왔다.

특이했던 곳은 벨로드롬 경기장 건너편, 서포터들이 운용하고 있는 마르세유

의 서포터 축구샵이었는데 구단 상표가 아닌 서포터 자체 상표로 물건들을 만

들어 팔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림의 목도리하며 해골바가지가 그려

진 잠바들... 구단 정식상품과는 완전히 다른 그 물건들이 다소 조잡하다는 생

각이 들었지만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설명하는 주인을 보며 서포터 문화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시내에서는 내일 있는 브라질과 노르웨이의 경기때문에 벌써부터 곳곳에서

유니폼을입은 양국 서포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엊그제 오렌지들이 난리

쳤던 부둣가 역시 모든 바가 노르웨이와 브라질의 서포터들로 북적거리고 있

었다. 각각의 바에 국기를 내다걸고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양국 서포터들. 노

르웨이는 함성과 구호로 브라질은 헌깡통으로 만든 드럼으로 흥을 돋구고 있

었다. 서로 한차례 응원을 주고받은 후 갑자기 노르웨이 서포터의 무리가 맥

주잔을 들고 브라질 서포터들이 모인 바로 들어간다. 노파심에서 혹시 충돌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서로 끌어앉

고 한차례 악수하고 큰소리로 농담 주고받는 서포터들... 그러다 문득 브라질

서포터가 자신이 갖고있는 깡통드럼의 북채를 노르웨이 서포터한테 주더니 쳐

보라는 손짓을 한다. 북채를 받더니 멋들어지게 드럼을 연주하는 노르웨이 서

포터. 대단한 솜씨였다. 흥이 난 브라질 서포터들은 여기에 맞춰 깡통들을 흔

들고 노르웨이 서포터들은 박수를 치고... 바는 어느덧 브라질과 노르웨이의

멋진 합동 연주장으로 변해 있었다. 늘상 서포팅은 전투 비스무레한 것이고

상대방은 적이라는 생각으로 지내왔던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에서 축구는 공갖고 벌이는 무슨 전쟁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단순한 놀이도 아니었다. 말그대로 축구가 하나의 커다란 축제, 그 자체였다.

  저녁에 마르세유역에 모여 기차를 기다린다. 그동안 각 구단 서포터별로 축

구대회가 벌어진다. 깡통을 세워만든 골대에 물병을 찌그러뜨린 공을 가지고

하는 3인조 경기였지만 제법 구색을 맞추었다. 우리가 부르는 A-Match Song

에 맞춰 선수들이 장엄하게 입장하고 주장들은 팬던트 교환, 동전을 던져 양

진영을 정하고 팔짱을 낀정식 기념촬영까지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우

리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곁에 와서 구경도 하고 응원도 했다. 심판은 포항

의 박원범대리님이었는데 각각 노란색과 붉은색의 포스트잇까지 구해 반칙때

마다 여차없이 카드를 뽑는 칼같은 소신판정으로 서포터들의 야유를 한몸에

받았다. 결국 이렇게 진행된 치열한 열전 끝에 수원서포터가 우승, 그 주역인

정종필님은 물병으로 된 영광의 피파컵에 입맞춤하며 대단원 대회는 막을 내

렸다.  

  얼마후 도착하는 기차.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각자의 기차에 오른다. 침대

칸에 들어가자 문득 로마에서 여기 올때, 표문제로 쫓겨났던 생각에 쓴웃음이

나온다. 갖가지 고생 끝에 도착한 마르세유... 그러나 그보다 한국 축구의 치욕

이 있었던 이곳... 나는 평생 여기를 잊지 못하리라... 쓰라린 마르세유의 기억

을 뒤로한체 우리는 처음 도착했던 곳이자 마지막 결전지인 파리로 향했다.

                                        Carmina Burana: O Fort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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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텔 축구동 19번 게시판 담당자 추천의 글.


Comment ' 1

  • 작성자
    Lv.1 소오
    작성일
    03.02.28 17:54
    No. 1

    98년 그날, 새벽에 잠 못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던 오대영. 지금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났지만

    그날을 회상하니 문득 가슴이 아파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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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6 음... +1 검노(劍奴) 03.02.28 335
» [펌]상전벽해 +1 Lv.35 김역인 03.02.28 465
5974 늦게나마 올려본다! 후기지수 정모 후기!(할짓이 없어서...) +10 Lv.1 너굴 03.02.28 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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