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ㅎㅎㅎ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시듦을 안다, 푸르름을 안다, 지조를 안다, 혹은 그냥 소나무와 잣나무를 알 수 있다, 모두 통용됩니다.
여기서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만큼 다른 초목들에 비해서 푸르름이 오래가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뒤에 시듦을 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한자가 같은 글자라도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여러 모로 많고 문맥이나 사용하는 이, 읽는 이의 기분에 따라서 다양하게 쓰이는 것은 님도 잘 아실테고요.
여기서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와 한결 같음을 \"뒤에 시듦을 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변함이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고한 추상성이며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호가님.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이 지조를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영원합니까?
여기서는 오히려 그 유한성에 의미를 두고 \"뒤에 시듦을 안다\"라는 표현이 더욱 마음에 와 닿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동양에서는 직설적인 해법보다는 다소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남을 수 있는 표현을 즐겼지요.
예를 들어 불로장생과 불사는 문자로 보면 확연히 의미가 다르지만, 거의 실질적인 사용에서는 그 뜻이 대동소이합니다.
오래 산다는 것과 죽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인간이 오래도록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옛사람들의 간절한 기원과 같은 것이었죠.
이미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세한연후 지송백이란 말은 적어도 서너 개의 해석이 뒤따르기 때문에, 무엇이 올바르다, 무엇이 틀리다라는 말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듯 하군요.
결론적으로 대동소이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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