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올린 식상한 제목에 대한 답글에 다시 답글로 올리려다가, 내용이 좀 길어져서 별도의 글을 하나 더 올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웹소설 공모전을 미술전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크고 개방된 공간이 있는 미술관에 신인 작가들의 그림이 쫙 걸려 있고, 관람객들이 훑어보고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멈춰서서 좀더 자세히 감상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경험해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군요. 웹소설 공모전에서는, 일단 원하는 작품을 클릭해서 작품별 연재 게시판을 찾아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프롤로그나 1편을 클릭해야 겨우 내용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즉, 작품을 감상하려면, 독자가 적극적으로 ‘추가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웹소설 공모전을 미술전에 비유하자면, 대형 빌딩에 수천개의 문이 닫힌 개별 전시실이 존재하고, 문밖에는 큼직한 ‘제목’과 기껏해야 간단한 소개문 정도만 붙어 있는 상황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인지도가 없는 신인 작가는, 전시실 안에 열심히 준비한 자기 작품을 걸어놓고,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요? (물론 인지도가 있는 작가라면, 몇층 몇호실에서 신작 전시를 하고 있으니 놀러와 주세요 하고 자기 팬들에게 알릴 수 있을테니까 상황이 더 낫겠지요.)
독자의 입장에서도 자기가 직접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보는 행동’을 하기 전에는, 그 문안에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이 존재하는지 어떤지 전혀 알 수가 없고, 기껏해야 오로지 제목만이 눈에 들어오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독자가 노력한다고 해도, 수천개에 달하는 개별 전시실(즉, 개별 작품 게시판)을 일일이 열어보고 확인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독자도 먹고 살아야 하고, 유튜브나 다른 즐길 거리도 있는데, 24시간 내내 웹소설 신작만 찾아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문을 열어서 안을 확인할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전시실부터 우선 선별해야 하는데, 그 선별 수단은 지금으로서는 ‘제목’이 굉장히 유력한 수단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식상한 제목은 뒤집어 말하면 친근한 제목이란 뜻도 되고, 참신한 제목은 뒤집어 말하면 낯선 제목이란 뜻이 됩니다. 그래서 신인 작가들 중에는, 문 앞을 지나가는 독자가 전시실의 문을 열어보고 싶게끔 만들 위해, 밖에 ‘친근한 제목’의 간판을 걸어놓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닫힌 문 안에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문 밖의 독자의 심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제목’이니까요. 물론, 그게 좋은 생각인지, 안좋은 생각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습니다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비교적 낯선 제목에 가깝게 제목을 지었습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제목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작가는 자꾸만 식상한 제목을 지으려는 유혹에 빠지고, (일부 독자는 거기에 질려 합니다만) 바쁜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식상하지만 친근한 제목을 먼저 클릭해 보게 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튜브처럼 추천 알고리즘을 도입하든, 태그를 도입하든, 하여튼 뭔가 ‘제목’이외에도, 신인 작가의 닫힌 전시실 문 안에 독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주는 ‘힌트’가 많이 제공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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