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요즘 자기가 입맛이 통 없어 보여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나를 위해 스테이크를 준비한다며 분주했다. 모두들 즐겁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스키장이지만 그녀는 이곳에서도 바빴다.
리조트 안은 지방과 단백질이 만들어내는 고소한 냄새의 이중주가 가득 채웠다. 고깃덩어리, 살아있을 때와 죽어있을 때의 느낌은 너무도 달랐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사람이 먹어야 사는 거야." 그녀가 흰색 플레이트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사람 고기를 먹으며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팔다리를 수갑에 묶인 나 대신 그녀가 나이프로 썬 스테이크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씹지 않으면 나도 스테이크가 될 것 같았다.
요란한 소리가 내 입안에서 울렸다. 쩝쩝 크게 소리를 내며 고기를 씹었다. 그냥 먹는 시늉을 하면 그녀는 귀신 같이 알아 채곤 입을 벌려 목구멍이 찢어져라 고기를 밀어 넣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리와인드를 했다. 일이 어떻게 이 지경으로 흘러갔는지. 그녀를 만난 것은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였다. 레스토랑에서 부킹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녀는 혼자 식사를 하고 있던 나에게 샤또 20년 산 와인 한 잔을 보내 합석을 요구했다.
사양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니라 덥썩 그녀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실수였다. 이유 없는 호의란 없는 것인데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수갑을 채운 손목이 너무 아파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있었다.
요리사 지망생이었던 그녀의 도시락이 생각났다. 비밀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가 음식을 비울때마다 즐거운듯 유난을 떨었었다."엣헴! 얼마든지 있으니까 많이 먹어."그녀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리본으로 정리되있던 그녀의 머리와 옷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악몽과 같은 현실속에서 나는 이미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고 혀위에서 으깨지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눈알을 굴렸다. 좀 전에 마주친 전 여친이 도움을 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스키장을 가로지르는 피웅덩이 사이로 듬성듬성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떨리는 눈으로 훑어갔다.
사람이었던 고깃덩이들이 팔다리가 잘린체 개구리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그 사이로 잠시 익숙한 실루엣을 본 것 같았다. 제설차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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