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대 인구수
[전국시대]
전국시대 (기원전 5-3세기) 2000만명 추정
[한漢]
한 초 (기원전 200년 무렵) 1,500~1,800만
한 무제 초기(기원전 134년) 3,700만
한 무제시기(기원전 87년) 3,200만 내외
서기 2년 (한서지리지) 5,900만
후한 광무제 (57년) 2800만(28,529,108명)
명제 시기 (75년) 3400만(34,125,021명)
장제 시기 (88년) 4300만(43,356,367명)
화제 시기 (105년) 5300만(53,256,229명)
안제 시기 (125년) 4800만(48,690,789명)
순제 시기 (144년) 4900만(49,730,550명)
충제 시기 (145년) 4900만(49,524,183명)
질제 시기 (146년) 4700만(47,566,772명)
환제 시기 (157년) 5600만(56,486,856명)
[삼국시대]
삼국 전체 760만(7,672,881명: 통전의 기록)
263년 촉나라 94만
280년 오나라 230만
263년 위나라 440만(4,432,881명)
[진晋]
280년 진나라 1600만(16,163,863명: 진서 지리지)
-> 실제인구 4,500만 추정
302년 영가의 난 시기 1322만
동진 (317-420) 최 전성기 1,700만
[남북조]
464년 송 460만(4,685,501명: 통전 식화지)
510만(5,174,074명: 송서 주군지)
580년대 진 말 200만(50만호)
-> 실제 인구 1500만에서 2000만 추정.
5호16국시기 후기 북방 인구 2000만(약 400만호)
(410년경 전후)
520년 이전 북위 2500만(약 500만호)
북위 전성기 약 600만호 가능.
동위 효정제 연간(543-550) 750만(2,712,879호, 7,591,654명)
서위 문제 후기(543-550) 659,229호.
북제 멸망 시점(577년) 2000만(3,032,528호, 20,006,880명)
북주 통일 직전(579-580) 900만(359만호, 9,009,640명)
=> 인구의 모순. 해석 난이함.
그래서 수나라가 선양 받을 때 인구는 690만호, 2,900만명이므로, 수정한 북주의 화북 통일시 인구 2900만(4,622,528호, 29,016,484명).
[수隋]
수 개황 9년(589년) 진 멸망 전 3300만(33,579,000명)
수 개황 9년 진 멸망 후 3600만(36,678,600명)=>겨우 60만호 300만명이 늘어남
수 대업 2년 (606년) 4600만(46,019,956명)
수 대업 5년 (609년) 4600만(46,854,540명)
[당唐]
당 정관 13년 (639년) 1200만(12,351,681명)
신룡 원년 (705년) 3700만(37,140,000명)
개원 14년 (726년) 4100만(41,419,712명)
개원 22년 (734년) 4600만(46,285,161명)
개원 28년 (740년) 4800만(48,143,609명)
천보 13년 (754년) 5200만(52,880,488명)
천보 14년 (755년) 5200만(52,919,309명)
[5대10국]
5대 10국 시기 (906-960년) 약 3000만 추정
[송宋]
송 신종 함평 6년 (1003년) 1400만(14,278,040명)
인종 천성 7년 (1029년) 2600만(26,054,238명)
가우 6년 (1061년) 2200만(22,683,112명)
가우 8년 (1063년) 2600만(26,421,651명)
영종 치평 3년 (1066년) 2900만(29,092,185명)
신종 희녕 2년 (1069년) 2300만(23,068,230명)
신종 희녕 5년 (1072년) 2100만(21,867,852명)
신종 원풍 원년 (1078년) 2400만(24,326,123명)
신종 원풍 6년 (1083년) 2400만(24,969,300명)
철종 원우 3년 (1088년) 3200만(32,163,012명)
철종 소성 원년 (1094년) 4200만(42,566,243명)
철종 원부 3년 (1100년) 4400만(44,914,991명)
휘종 숭녕 원년 (1102년) 4500만(45,324,154명)
휘종 대현 3년 (1109년) 4600만(46,734,784명)
[남송]
고종 소흥 31년 (1161년) 2400만(24,202,301명)
효종 순희 5년 (1178년) 2800만(28,558,940명)
광종 소희 4년 (1193년) 2700만(27,845,085명)
영종 가정 16년 (1223년) 2800만(28,320,085명)
[요(거란, 키탄)]
요 (907-1125) 900만 내외(정확하지 않음)
[금]
세종 대정 초년 (1161년) 1900만(19,650,000명)
세종 대정 27년 (1187년) 4400만(44,705,086명)
장종 명창 원년 (1190년) 4500만(45,447,900명)
장종 명창 6년 (1195년) 4800만(48,490,400명)
장종 태화 7년 (1207년) 4500만(45,816,097명) 혹은 5300만(53,532,151명)
[서하와 대리]
서하(1032-1227) 350만 - 400만명
대리( 937-1253) 130만
[원元]
세조 시기(1260-1295) 5300만(53,654,337: 원사 식화지)
세조 지원 28년 (1291년) 6000만(60,491,230명: 원사 세조기)
원 말 8185만 (지리지에 의거)
전국 인구 1억 438만 (총계 추정)
[명明]
홍무 14년 (1381년) 5900만(59,873,305명)
홍무 24년 (1391년) 5600만(56,774,561명)
홍무 26년 (1393년) 6000만(60,545,812명)
영락 원년 (1403년) 6600만(66,598,337명)
영락 8년 (1410년) 5100만(51,795,255명)
홍희 원년 (1425년) 5200만(52,083,651명)
선덕 10년 (1435년) 5000만(50,627,569명)
정통 10년 (1445년) 5300만(53,772,934명)
경태 2년 (1452년) 5300만(53,433,830명)
천순 원년 (1457년) 5400만(54,338,476명)
성화 8년 (1472년) 6100만(61,821,232명)
홍치 17년 (1504년) 6000만(60,105,835명)
정덕 원년 (1506년) 4600만(46,802,050명)
가정 31년 (1552년) 6300만(63,344,107명)
융경 3년 (1569년) 6200만(62,537,419명)
만력 30년 (1602년) 5600만(56,305,050명)
태창 원년 (1620년) 5100만(51,655,459명)
[청淸]
순치 18년 (1661년) 7600만(76,550,608명)
강희 24년 (1685년) 8100만(81,366,952명)
옹정 2년 (1724년) 1억1000만(102,939,456명)
건륭 18년 (1753년) 1억 1800만(183,678,259명)
건륭 31년 (1766년) 2억 800만(208,095,796명)
건륭 49년 (1784년) 2억 2800만(286,331,307명)
가경 17년 (1812년) 3억 3300만(333,700,560명)
도광 2년 (1822년) 3억 7200만(372,457,539명)
함풍 원년 (1851년) 4억 3400만(434,394,047명)
광서 27년 (1901년) 4억 2600만(426,447,325명)
우리가 알아둬야 할 것은 청 강희제의 인두세 폐지 전까지는 인구조사때 인구를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강희제 이전 시기는 저 인구수에 약간 플러스를 한 것이 실제 인구수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특히 난세가 도래하면 행정력이 부실하게 되고 전란의 와중에 죽거나 유랑민이 되어 인구가 일정치 않다. 가장 익숙한 삼국시대의 인구를 살펴보자.
[삼국시대]
(7,672,881명: 통전의 기록)
263년 촉나라 94만
280년 오나라 230만
263년 위나라 440만(4,432,881명)
그 넓디넓은 중국 대륙에 전체 인구가 760만이다.
환제 시기 (157년) 5600만(56,486,856명) 바로 윗부분의 자료다. 환제는 황건의 난 직전의 황제다. 삼국지의 주인공들을 포함한 제후 연합군이 봉기한 년도가 190년 이란 것을 감안하면 약33년전 이다. 33년 사이에 5600만에서 760만으로 줄었다.
둘 가운데 하나가 잘못된 자료라는 것이다. 그럼 어느 것이 잘못되었을까? 살펴보자.
280년 사마씨의 진나라 1600만(16,163,863명: 진서 지리지)
오나라가 멸망한 280년 당시 인구수 1600만이다. 삼국 전체 인구가 760만 정도인데 갑자기 인구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환제 시기(157년) 5600만과 비교하면 이것 역시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당시 실제 인구는 추정이라고 해도 오차범위 안에서 약 4,500만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환제시기 5600만과 비교해도 이상이 없다.
정답은 삼국시대 인구수가 잘못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삼국시대전체 760만(7,672,881명: 통전의 기록)
263년 촉나라 94만
280년 오나라 230만
263년 위나라 440만(4,432,881명)
의 기록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것들은 모두 당시 각국 수도와 그 근교의 인구수일 것이다. 즉 수도권 인구가 저 정도라면 납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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