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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봄은 가혹하다.
이정표처럼 곳곳에 세워진 낮은 산줄기가 만든 계곡들은 차가운 북서풍이 초원에서 그 힘을 잃지 않도록 길을 만들어 주고, 어느덧 따뜻해진 햇빛은 돌풍처럼 휘몰아 올라가는 골바람을 만든다.
그 난폭한 바람에 휩쓸린 모래가 폭풍이 되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연막이 될 지니, 곧 초원에는 쓸쓸한 황량함만이 남아 맴돌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금발의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에도 메이지 않은 저 자유로운 모래가 부러운 것일까, 아니면 초라한 울타리조차 없어 강하고 돌발적인 외풍에 이리 저리 휩쓸리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일까.
복잡한 표정으로 초원을 눈에 담고 있는 그에게 한 명의 병사가 달려 와 군례를 올렸다.
“누르하님, 준비 끝났습니다.”
누르하라 불린 남자는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누구 하나 잡아주지 않아 이리 저리 부는 바람에 휩쓸려 버리는 초원의 모래들처럼, 우리는 제국의 강대한 힘과 이간책에 휩쓸려 서로 으르렁거리며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자유롭다고 생각했지. 초원에 가득한 저 바람처럼….”
그리고 누르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청년을 넘어 장년(壯年)을 향해가는 젊은 군주가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오늘부로, 우리는 바람이 될 것이다.”
누르하 0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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