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성상현
작품명 : 이계진입자
출판사 :
사실은 감상에 가깝지만 별로 좋은 소리가 아니니 이쪽으로 왔습니다. 몇건의 (극찬에 가까운)추천이 감상란에 올라왔기에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초반은 현대의 청소년이 이계에 넘어가서 적응하는 모습을 그럭저럭 잘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답게 살인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빠지지 않고요.
문제는 2권 초중반에 그 스캐빈저라는 집단이 나오면서였습니다. 보다가 역겨워서 결국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뭐 명예를 찾기 위해서란 말로 학살을 해대는 놈들인데요, 그 와중에 정적들뿐만이 아니고 양민들까지도 무수히 죽은것 같더군요. 이놈들한테 걸려서 죽은 몰살당한 상단이나 양민들이 수두룩한것 같던데요. 마지막에는 명분도 없이 멀쩡한 성을 공격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죠.
앞으로의 전개야 뻔히 보이는 내용이죠. 뭔가 계기로 주인공한테 감화되어서 개과천선. 이만큼이나 분량을 투자했으니 나중에 마왕과 싸울때 뭔가 비중있는 역할을 맡을래나요.
사실 이런류의 내용은 그동안 장르소설에서는 무수히 많이 다뤄졌습니다. 그만큼 역겹죠.
그리고 여기서 균형이 무너지죠.
주인공이 인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직접 살인 안하는 것도 이해할수는 있죠. 그런데 저런 살인자 집단까지도 발벗고 나서서 구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그 성자에 가까운 흉금에 절로 안습입니다.
장르소설에서는 정말로 인명이 경시됩니다. 사람목숨하나가 파리목숨보다고 가볍죠. 이처럼 주인공이 성자에 가까운 이라면 역설적으로 더욱더 가벼워집니다.
아무리 살인마에 나쁜놈도 주인공 곁에서 알짱거리면 과거는 사라지고 조금 운만 좋으면 착한놈이라는 명예까지도 얻습니다.
이글에서도 주인공은 그동안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군요. 그야말로 파리목숨이죠. '저들도 웃고 울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인데'하는 한마디로 살인마들이 순진해서 억울한 일을 당한 평범한 사람들로 둔갑합니다.
그들의 억울함에 동감하여 직접 안죽이는것 까지는 이해합니다. 근데 오히려 구하려 든다? 마치 요즘 범죄자의 인권을 강조한 나머지 피해자들이 오히려 억울해지는 경우를 떠올립니다.
차라리 주인공의 성격이 무인(기사)에 가깝다면 그들의 명예에 대한 갈망에 경의를 표하고 구하려고 노력하는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오히려 살인에 혐오감을 가진 우유부단한 고교생이 살인마들을 동정하다니요.
결국 형법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개인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를 국가가 대신해주는 것이 그 큰 의의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가족을 잃은 양민들의 억울함은 그저 외면하고 살인자를 오히려 옹호하는 그 위선이란...
흔히 하는 말 있죠.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다면 다냐.
네. 다입니다. 장르소설에서는 그게 답니다.
'미안하다. 내 죽어서 꼭 용서를 빌 것이다.', 혹은
'지금은 중요한 할일이 있어서 못죽어주겠고, 좀만 기달려.' 이 한마디로 끝입니다.
요즘 범죄자가 '어, 내가 좀 바쁜데, 나 한 5년만 있다가 감방들어가면 안될까? 이왕이면 내가 늙어죽기 한 1년쯤 전에 들어가게 해주면 더 좋고.'하는거랑 뭐가 다릅니까.
장르소설은 대체로 중세를 배경으로 하기에 법은 별다른 기능을 못하는 걸로 나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정의니 정당함이 크게 강조되는겁니다.
전 그 칸트인가 하는 사람이 한 말이 참 맘에 듭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반드시 오늘 사형수들을 먼저 사형시켜야 한다고 했던가요?
죄를 지은 사형수가 보통사람과 똑같이 내일 죽는것은 정의가 아니죠. 하루라도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게 정의죠.
살인과 폭력와 야만이 난무하는 장르소설에서는 더욱더 그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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