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말미잘
작품명 : 왕은 웃었다
출판사 : 파피루스에서 출판 예정
※ 평어체인 것을 양해 바랍니다.
[왕은 웃었다]의 1, 2편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시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오래전 읽은 일본의 소설이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딱히 표절이라든가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당시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비록 처음 들어가는 설정이 유사하다 해도 읽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관이 펼쳐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재분을 다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왕은 웃었다]가 결코 십이국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점지해서 한 나라와 그 백성을 책임지는 왕, 그리고 그 왕과 운명공동체가 되는 최측근, 왕이 없으면 삶 자체가 불가해지는 백성…. 이 정도의 아이디어와 설정을 스스로 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철학과 기본 개념이 바닥에 깔렸어야 할 정치라는 것, 군신의 알력이라는 것, 그리고 정쟁과 주인공의 환결설정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설상가상, 몇 줄 앞에 써놓은 중요 설정을 깡그리 뒤집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경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스스로 생각해냈고 스스로 설정집을 짜거나 자료수집을 했다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일관성 있어야 할 개념과 설정이 그렇지 못 했다.
1. 왕과 관리, 그리고 유능함에 대해
왕이 없으면 나라가 성립되지 않는 세계에서, 아무리 왕이 무능하다고 해도, 그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하고 '멍청하시군요. '라고 멸시하다니…. 조금이라도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상식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관리란 존재들이 얼마나 자기 보신에 안간힘인지. 속으로 비수를 품고도 타인을 향한 가면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관료라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고서는 관료 피라미드의 정정이라 할 국가 관리에 오를 수가 없다. 그것이 조직에 속한 인간의 처세술이다.
그런데 일개 사조직도 아닌 산전수전 다 겪고 노회할 한 국가의 '유능하다'는 관리들이 왕을 상대로 은따도 아니고 대놓고 왕따인가? 백보 양보해서 그건 그렇다치자. 궁녀들의 죽음은 어쩔 것인가? 자신들이 그렇게 무시하고 우습게 취급하는 왕이 스트레스 해소삼아 삼일에 한 번꼴로 궁녀들을 죽여없애도록 방임하다니…. 이것이 진곡 관리들의'유능함'인가?
그저 첸첸을 최대한 궁지로 몰기 위한 억지스럽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비친다.
물론, 말미잘님이 그렇게 설정했다면 그것이 [왕은 웃었다] 안에서는 상식이요 법일 것이다. 다만, 왕과 그 측근, 나라와 백성을 중심 소재로 삼은 분이라면, 그 분야에 대한 자료조사를 좀 더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질 뿐이다.
2. 진군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
한 사람 발견할까 말까 하여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진군위를 설명한 바로 몇 줄 뒤에 진군위 가문이 나온다.
진화 왕이 진군위 하나를 만났다는 소문만 떠돌았지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라는 식으로 끝맺어놓고는 진군위 가문의 우월함을 강조할 필요가 있자, 왕들조차 가문의 비위를 맞추려고 귀한 과일 등을 보내오곤 한다는 문장이 나오는 것이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군위, 그것도 진군위가 되어서 가연이 일년만에 왕과 만난다는 얘기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으나, 설정의 기본 중의 기본인 왕과 군위이다. 왕의 곁에서 왕을 바른 길로 이끈다는 진군위가 어째서 일년의 대부분 그 곁을 떠나있는지. 첸첸의 부친인 진곡왕의 군위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다. 운명 공동체인 왕과 군위라는 아이디어를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맞다면 어찌 이리 다루는 데 허술하단 말인지.
3. 진화 왕에 대해
가연을 닮은 라야의 얼굴을 보았으면서, 그것에 의문을 품었으면서, 뭔가 일을 낼듯 독자들 낚시질만 하다가 흐지부지다.
라야가 가연의 친자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평범한 인간인 나도 생각해 낼 수 있는 진실규명 또는 가능성에 대한 진상조사를, 그녀는 생각지도 않고 시도해보지도 않는다. 그저 가연에게 '라야는 너를 닮았어. ' 그 한마디로 끝이다.
자신의 둘도 없을 벗이자 측근인 가연과 그리도 애틋해하는 라야의 일생을 바꿀 수 있는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위치와 지위를 지녔으면서도 말이다.
진화 왕은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곳에서 대국을 일으킨 다부지고 능력있으며 어진 왕이다(라는 설정이다). 기본 이상의 상황판단력과 실천력 그리고 의지가 있는 자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설정은, 라야의 출생비밀을 밝혀내지 못하(않)고 그냥 떠나보내면서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4.무무(아기에)
무무는 일본 라노벨의 오글캐릭터라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철저한 신분사회인 [왕은 웃었다]의 세계관에서 물 위 기름처럼 이질적인 이 안하무인 노예(?)와 라야는 일본 소년만화에서 히어로나 그의 절친이 중얼거릴법한 대사를 좔좔 읊어대며 서로 우정을 과시하고 자신을 희생하려 할 때부터 오글오글거리더니, 무무가 '이 내가{=고노 와다시[오레]가} ~!'를 외치며 납치범(?)들을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 뒤의 첸첸과의 대치장면은 그야말로 무무에 의한 무무를 위한 무무의 활약극이다. 그런데 그 대단할 장면이 지금 내게는 '자기연민에 쩌든 주제에 온갖 폼은 다 잡는 자위행위'라는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일본 라노벨 소설이나 애니 속 중2병 캐릭터들이 하나로 짬뽕 된 결과가 바로 무무가 아닐는지? 이 외에 무무라는 캐릭터에 대해 달리 뭐라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유감스럽게도.
5. 로퓐에 대해
로퓐은 [왕은 웃었다]의 중요 안타고니스트다. 라야를 멸시하고 증오하여 단둘이 있을 때는 은근 무례의 도를 넘는 모멸적인 단어를 사용하지만, 제삼자가 옆에 있을 때는 어디까지나 '집안의 장자'인 라야의 명에 따르며 결코 반항하지 못한다. 본문 글에서 묘사된 로퓐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감옥에서 어떻게 했나.
무사들과 시종은 물론이요 죄수까지 있는 그곳에서 라야와 단둘이 있을 때 이상의 모욕적인 언사로 라야를 멸시한다. 묻지도 않은 진실을 제 흥에 겨워 나불나불댄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라야에 의해 반병신이 되어버린다. 느닷없는 변모다. 라야를 폭발시키기 위해 로퓐이 도구로 이용된 것은 알겠는데, 중간에 그럴듯한 에피소드 하나 넣어주었더라면 '얘(로퓐)가 갑자기 왜 이러지?'라는 의문은 안 들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리얼'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리얼리즘'은 대부분 '개연성'으로 해석된다. 조금 느슨하게 해석한다면 '소설 속 설정의 일관성'이라 하겠다.
작가가 한 번 글 속에서 'A는 B이다. '라고 언급했다면 그 글이 완결되는 시점까지 'A= B'여야 한다. A가 Z나 C가 되려면, 독자가 이해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캐릭터 묘사에 현명하다고 했으면, 그 캐릭터가 '현명하지 못한' 행위를 했을 때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글의 개연성이고 캐릭터의 일관성이다.
첸첸과 무무의 대결도 그렇고, 진화 왕의 어물쩡도 그렇고, 결국 라야가 폭발하는 감옥 장면도 그렇고,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대사와 행위가 앞에 써놓은 설정과 어긋나거나 순간의 필요에 의해 억지로 비튼 느낌이 너무 강하다.
스스로 본문이나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낸 설정이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혀있다. 그럼에도, 워낙 자극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상황극 같은 에피소드의 커다란 갈등에 가려져 대부분 미처 인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간다.
6. 라야라는 캐릭터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그는 뛰어난 능력과 성품과 용모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기에 제대로 된 인정을 받기는커녕 멸시당하고 폄훼 당한다.
그는 부친의 친자가 아닌 모친이 부정을 저질러 태어난 사생아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의 소재감이다.
그런데 사생아로 알려지고 본인도 그렇게 알며 자격지심에 괴로워하는 그가 실제로는 부친의 친아들이라면?
게다가 그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듯 밝혀지지 않고 여운을 남긴 채 시청자를 잡아둔다면?
우리는 유치하다고, 진부하다고 출생의 비밀이 소재인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TV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 드라마가 아무리 유치하다 해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아야 한다.
안 그러면 궁금하다. 주인공이 억울하게 당할 때마다, 속 답답해하며 안타까워한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주변인물들이 어떤 '꼴'을 할지 미리 상상하며 그 순간의 쾌감을 기대한다.
독자들에게 라야는 충분한 대리만족의 대상이 된다. [왕은 웃었다]의 팬은 사실상 라야의 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독자가 라야에게 감정이입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나도 인정하는 심리묘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말미잘님의 한계를 본 기분 또한 금할 수 없다. 언제까지 가정파탄극이나 피학대자의 심리묘사로 연명할 생각인지.
출생의 비밀을 휴화산처럼 남겨놓은 2부의 마무리나, 그 잘나고 자유정신에 충만할 아기에(무무)를 얌전히 제 아버지가 만든 감옥 속으로 돌아가게 한 3부를 보자.
라야의 집에서 일어난 가족 간의 갈등과 감춰진 비밀과 부당하게 박해당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배경만 좀 달리해서 되풀이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의 가연과 로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릉가와 진화 왕과 일기장에 낚여 파닥였던 조바심을, 이번에는 아기에를 중심에 두고 되풀이해야 하는가 싶으니 짜증이 인다.
좀 더 파고든다면, 오라비처럼 따르던 남자와 그 가족의 억울한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친자식을 제물 삼는 라야의 모친이나, 가모의 부정을 흔적까지 지운답시고 일가족을 잔혹하게 고문살인하는 로퓐의 행위나 오십보 백보로 막장스럽기 그지없다.
그저 라야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치닫는 주변인물과 배경설정이다. 중요사건이 스토리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보다는 그악스럽게 비틀어짠 작위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주인공인 라야의 억울한 처지와 심리묘사와 시크함을 묘사하는데 공을 들이고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해도, 그 기본바탕이 될 배경설정이 이래서야...
설정의 일관성 없이 들쑥날쑥한 활용, 글 속에 녹아들지 못한 중요 캐릭터[무무], 앞서 언급한 내용을 뒤집어가며 써먹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에피소드의 연속….
스스로 짜낸 설정이라면, 그리하여 그 개념이 확실하게 본인 머릿속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군데군데 구멍 뚫린 설정과 번복.
마치 까마귀가 잔칫집에 가기 위해 다른 새들이 떨군 화려한 깃털로 장식하였지만, 꽁지깃을 날개 깃 사이에 끼운듯한 어색함과 부조화, 거슬림이 [왕은 웃었다]에서 발견된다.
말미잘님은 아직 십이국기 설정과의 유사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자 한다.
세상의 작가들이 다른 작가 소설의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캐릭터를 쉽게 갖다쓰지 않는 것은 결코 그것을 가져다 활용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개중에는 자신이 다룬다면 훨씬 더 멋지게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아이디어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로서의 양심과 자존심이 있기에 스스로 아이디어와 설정을 짜내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설사 도용한 것이 아닌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라 해도 누군가 이미 써먹은 설정임을 알게 되면, 피눈물을 머금고 폐기하거나 독자들 눈에 표절로 비치지 않도록 새로이 뜯어고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절의혹으로 스스로와 상대작가와 독자가 괴롭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배려이자 자기방어이다.
그리고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와 독자 앞에 떳떳하다.
말미잘님은 과연 어떨까….
스스로 모티브를 얻었음을 인정하여 주위에서도 부드럽게 받아들여 건필을 기원해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여겨진다.
많은 독자가 댓글로 십이국기를 언급했을 때, 꼬리말이든 리리플이든 [십이국기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말미잘식으로 글을 풀어나가겠다]라고 강단있게 소명을 밝히거나 [십이국기와는 상관없이 이러저러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스로 창작해낸 설정이다]라는 떳떳한 해명 글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댓글이든 감상글이든 추천글이든 빼놓지 않고 읽는다는 말미잘님은 그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추천글과 감상글에 꼬박꼬박 감사의 인사를 하는 분이 십이국기 설정과의 흡사함에 찝찝함을 느꼈다는 의문제기글에는 일언반구 해명도 반박도 않는다. 한담란의 자추의혹 관련글에는 당당하게 불쾌감을 표시하던 분이 자신의 글에 대한 심각한 의혹이 올라왔는데도 모르쇠로 일관이다.
십이국기를 모르는 다수의 독자는 왕과 군위, 국명부, 하늘이 정해주는 숙명적인 동반 관계라는 설정에 참신하다고 환호한다. 자칫하면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주말드라마나 일본라노벨의 소영웅심리드라마로 치부될 수도 있는 [왕은 웃었다]에 무게와 참신함을 부여한 것은 '왕과 군위, 국명부'의 설정 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현재로는.. 그 설정으로 하여 말미잘님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얻었다. 그리고 인기에 힘입어 출판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취미삼아 올리는 글이 많은 장르소설 사이트에서 설정 차용 의혹을 받는 것과 출판되어 책으로 인쇄된 글에 대한 표절의혹제기는, 그 파장과 영향력의 차이가 심각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왕은 웃었다]를 다시 훑어보았다. 여전히 십이국기 설정과의 유사성이 느껴진다.
이런 상태로 인쇄된[왕은 웃었다]을 읽은 독자가 훗날 십이국기를 읽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될 배신감이나 의혹에 대해 말미잘님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또는 십이국기 애독자가 [왕은 웃었다] 책을 보고 표절의혹을 제기할 경우, 대답할 말은 준비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글을 수정해서 출판하든 그대로 엮어내든, 글을 쓰는 한 앞으로도 계속 '십이국기'가 꼬리표처럼 말미잘님을 따라다닐 것이다.
만약 [왕은 웃었다] 후에 새 글을 올린다 해도 글쓴이가 말미잘님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적지않은 사람들이 그 글에서 '나올지도 모를' 다른 작가의 설정과 캐릭터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왕은 웃었다]로 하여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해 치르게 될 대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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