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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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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3

  • 작성자
    Lv.10 문원
    작성일
    10.03.29 17:51
    No. 1

    저도 추천란 보고서 읽었죠..
    어지간한 책들은 다 읽어놔서..
    아 못봤던 대작인가 하구서 빌려봤습니다.
    그런데 참 ㅡㅡ 헛점이 많은 글이더군요.
    어떻게 이걸 다른 책과 비교할수가 없을거라는 수준의 대작이라는 것인지.
    무슨 약하나 주어먹으면 1갑자 내공이 확 늘어나구.
    아무 힘도 없는 주인공이 그런 귀한 약을 빼내서 동내 무관에서 애들한테
    가르치는 넘한테 걍 막 줘버리고.
    무림에서 배척당한 배교의 최고의 심법중 하나라면서 그걸 막 알려주면..
    무림에거 금지당한 마교 최고의 심법을 동내 꼬마들이 배우러 무관다닌다는 건지..
    글도 모르던 사람이 글도 제대로 안배우고 한 일주일도 무공서적들 달달 외우고 한두달도 안돼서 서고의책들을 달달 외우고 있고..
    그 정도의 천재가 그 전에는 글을 왜 몰랐던건지.
    주인공의 무공의 수위도 수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감도 안잡힐 정도로 들쑥날쑥 하고. 한 문장 내에서도 대화가 존대였다 반말이었다..
    쓰잘대기 없는 섹스 장면만 부지기수로 집어넣고.
    초기에 강북을 먹었네 어쩌구 하던 무림 4대세가..
    글이 이어지다 보니 바로 옆동내에 다른 세가가 살고있고..
    더 이어지다 보니 정파무림맹이란 애들도 옆동네에 살고 있고 ㅡㅡ
    시장 하나를 두구서 일명 남부맹 하고 정파무림맹애들 10여개 문파가
    아옹다옹하고 있어서 헐 했더니 결국
    한 난징이란 도시 하나에 사는 4대세가..것도 모용이나 남궁이니 하는
    하 지역의 패주들이 도시 하나에 살면서 거기 시장 하나를 두고
    남북으로 갈라서 정파맹와 무림굴지의 4대세가가 경쟁질 하고 있는거 보고이게 동내 조폭쌈이지 무슨 무림인들인가 하고 어이가 없더군요.
    일단 3권까지 빌려와서 읽긴 했지만 더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책일뿐.
    이게 과연 비교할 책들이 없는 대작일까 싶네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프리저
    작성일
    10.03.29 19:09
    No. 2

    10대후반 20대초반에선 대작이 될수 있습니다. 이게 장르소설의 현상황..
    30대이상분들은 아마 그냥 시간때우기용으로 즐길뿐일거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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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 ssenja
    작성일
    10.03.29 20:15
    No. 3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뭐.. 그럭저럭...
    시간이나 때우면서 읽어내기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보는,
    그런 정도의 평가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무협소설의 내용을 이해할 때,
    구체적인 이야기 내용이나 중심이 되는 줄거리의 인과관계를
    살피는 데 있어서
    그 개연성을 면밀히 따져보는 성향은 아니고
    그냥... 어느 순간, 내용의 전개나 흐름에 있어서
    대체로 개연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
    책장을 빨리 넘겨버리는 습관이 발동됩니다. ㅋ

    이 책도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적절한 수준에서 몰입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상태'(대충 넘기는 상태)로
    읽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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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맥주병
    작성일
    10.03.30 02:12
    No. 4

    솔직히 전 별도 하면
    붕가씬밖에 기억이 안납니다.

    제게 비슷한 이미지의 작가로는
    나한, 임영기등이 있죠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22 영아의별
    작성일
    10.03.30 07:05
    No. 5

    음..살짝 껄끄럽습니다만 개인적 감상평을 남기자면..저도 그렇게 강추의 작성글인가 댓글을 봐서 제가 안 읽은 다른 작품이라 생각하고 찾아봐야지 기대하고 있었는데..바로 그 우희가 나오는 작품이었군요.
    신무협으로 나온 소설치곤 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배경자체가 굉장히 좁다 느꼈으며 그림자무사로 택한 건달의 능력이 강호정복을 노릴만한 수준인데? 싶었고..딱히 별다른 분장도 없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는 게..남경이 서울시내의 인구쯤 되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스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댓글들을 통해 우희도 빈틈이 많다 할진 몰라도 제겐 꽤나 인상적으로 남아서 한때 저도 그녀와 비슷한 케릭터를 꼭 넣어봐야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그와 더불어 이름은 생각안나는데..주인공과 남궁세가의 그녀석 앞에선 잘만 청순백치미인 척 했던 그녀가 알고보니 어떤 세가의 늙은 가주와 몸섞는 왕행주(언어순화 ok?)였다는 것도 뚜렷히 기억하구요.
    ' 아앙..아빠..'
    나름 순백의 면모를 지향하던 독자로서 알고보니 기루의 꽃 식의 묘사는 충격이었음 ^-^; 덕분에 우희의 주가가 올라가긴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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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3.31 09:52
    No. 6

    코끼리손님, 문피아를 떠나기 위한 명분을 쌓는다는 이해도 안가는 뻘글 올려 분란 일으키시더니 아직 안떠나셨네요?? 떠나는 것도 남는 것도 본인의 의지이겠지만 최소한 사과멘트 정도는 다시 올리는 글 말머리 정도에 한번 남겨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림자무사 읽은지 오래되서 두어가지 반론만 올리겠습니다.

    1)천재설정 ~ 우리나라에 송유근이라는 천재가 있지요. 초등과정 1년만인가에 끝내고, 지금은 석사까지 마치고 박사과정 들어간답니다. 저도 알만한 공대 출신이지만 정원 60명에 전공 제대로 이해하고 졸업하는 사람 5명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무공에서 중요한 것이 깨달음이란 설정이라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숙련이나 실전경험을 중요한 설정으로 잡는 작품도 한 축을 형성하긴 합니다. 이건 작가맘이겠죠.)

    2)장소설정 ~ 남경을 우리나라 중소도시 정도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남경은 크기 자체가 서울의 열배가 넘는 광활한 지역입니다. 4대세가가 나눠먹는 것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 서울 사시는 분, 동네에서 벗어나서 아는 사람 만난 적이 얼마나 되시는지요? 그것도 현대는 대중교통이라는 수단이 있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주로 걸어서 다닌다고 생각하면?

    이야기 진행 과정 중의 오류는 읽은지 오래 되서 기억이 안나는군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03.31 22:44
    No. 7

    ㄴ 중국의 부성급 시는 우리나라의 광역시와 비슷한 특별지구를 이야기합니다.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내부에 하위 지역단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난징은 부성급시죠.
    즉 구 난징을 중심으로 한 행정구역 전체를 말하는 겁니다.

    뭐 명대에 인구 40만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당시로서는 중국 최대의 도시인건 맞습니다만 실질적인 시가지는 난징성벽 정도의 범위 아니었을까요.(명확한 자료는 못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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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03.31 22:50
    No. 8

    단순한 학문습득, 무공습득이라면야 천재라고 할때 이해가능하지만..

    세력간의 인맥이나
    권력관계, 자금처 등등... 일개 파락호가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시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동감이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3.31 23:32
    No. 9

    소봉님//남경은 변방에 위치한 성이 아니므로 성 안뿐만 아니라 성 밖에도 생활권 있고, 안팎이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물론 시가지야 성안에 형성되어 있겠지만, 시가지에 국한되어 있는 설정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그리고 글에 묘사되는 현당이 일개 파락호던가요? 일개 파락호라면 당연히 시야가 좁겠습니다만, 현당은 인맥도 있고 정식단체는 아니지만 한 무리를 이끄는 리더쉽이 있는 인물로 묘사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여기에 천재라는 설정이 연결되면 일개 파락호라고 한정짓는 것은 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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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묘로링
    작성일
    10.04.01 00:18
    No. 10

    시가지의 국한되는 성격은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송 초 수도 개봉같은경우는(수도가 맞는지도 가물가물하군요.) 성외에는 살수 없게 했습니다. 모든 인구는 성내에서 살게 되었죠. 하지만 단일 도시로서 이후 40~50만의 인구를 가지는 규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대신 장안처럼 공간이 넓지 않은 협소한 곳이라 현대의 연립주택같은 다층 집이 많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미즈료우
    작성일
    10.04.01 00:55
    No. 11

    갑자기 댓글에 남경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거같은데..
    물론 남경이 작은 도시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 전체를 놓고봤을때는 참작은 지역이란 말이죠..
    아예 범위를 작게 잡으려면 차라리 무림4대세가 이런거 말고 새로운 세가나 집단을 잡아서 했으면 좋았을텐데
    다른 무협들.. 세가가 무슨성단위로 주름잡고 이런식에 익숙해져있는데
    그걸 고대로 가져다가 좁은데서 아웅다웅하면 굉장히 답답하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 ssenja
    작성일
    10.04.01 01:06
    No. 12

    북송(北宋) 시기의 국도(國都)인 개봉에 대한 설명과 관련해서
    한가지 첨언하고자 합니다.

    위의 猫님의 설명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이전 시기인 당(唐)대에는
    도읍이었던 장안이나 동도(東都)인 낙양의 경우에
    방형의 성벽 안에 도시가 바둑판처럼 구획되고
    각각의 구획 단위인 방(坊)별로 질서정연하게
    주택이 들어서 있으며
    교역 및 상행위는 반드시 시(市)에서만 할 수 있었고
    반드시 낮에만 영업을 할 수 있었으며,
    야간 통행 금지가 있어서 밤에는 성문을 닫아걸었던 것에 비해서
    북송 시기의 개봉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개봉은 거리 도처에 상점, 음식점, 객관, 주루 등이
    아주 번잡하게 늘어서 있었고,
    야시(夜市)도 대단히 번성했으며,
    구래의 전통적인 방(坊)과 시(市)의 지역적 구별도 무너졌고,
    밤낮의 질서도 무의미해졌습니다.
    북송 시대의 성시(城市) 경제는 대단히 발전해서
    과거의 전통적인 도시구획이나 질서 유지 시스템이 더이상
    작동되기 어려워서 사실상 오늘날의 도시와 매우 흡사한 양상으로
    도시가 발전하고 생활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도시 성곽 밖에서 거주하면서
    도시 안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로
    아주 많았으리라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어떤 추산에 의하면 북송 전성기 때에는
    개봉의 인구가 100만명을 훨씬 넘어섰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북송 말기의 화가였던 장택단이라는 인물이 남긴
    유명한 '청명상하도'를 살펴보면
    당시 극도로 번성했던 개봉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후대인 명대의 북경이나 남경을 능가하는
    정도의 규모로 북송대의 개봉이 매우 번성했다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참고로,
    북송 전성기 때의 인구를 추산한 것이 있는데,
    대략 1천700만호로 파악된 기록이 있습니다.
    명대에는 성조(영락제)때 최대의 호수를 기록했었는데,
    대략 2천만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북송시기의 경제와 문물이 얼마나 융성했는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규모와 성격이라는 것도
    이러한 사회 경제의 객관적인 수준에 대체로 조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의 설명은 주로
    중국 북경인민출판사에서 중국 고등교육 인문교재로 발간한
    '중국사강요'에 의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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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04.01 05:22
    No. 13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건 당시로서는 큰도시가 맞지만 현재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삼아서 서울 10배넓이의 메가로폴리스라고 묘사할수는 없다는 이야기죠. 남경 시가는 시가 자체만이 아닌 주변의 거주지등 영향권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남경의 극히 일부라고 볼수 있습니다.(성벽 이야기는 다소여담이고 성내부의 서너배규모 주변거리를 가지고 있어도 서울과 비견될만한 크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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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1 10:24
    No. 14

    소봉님//성벽 이내로 제한하셨다가, 주변 거주지까지 포함하더라도 현재 남경의 극히 일부고 서울과 비견될만한 크기는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극히 일부라는 기준도 애매하고(극히 일부가 1/10일까요, 1/100일까요?) 서울과 비견될만한 크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객관적 자료에 의한 근거가 아니라 소봉님 추정이시죠. 중국의 규모를 자꾸 우리나라에 빗대어 생각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자료를 찾기 어려우니 ssenja2780님이 자료를 올려주시지 않았으면 저도 묘님 댓글이 사실일 것으로 받아드렸을겁니다. 저 역시 추정이긴 합니다만, 개봉이 100만을 훨씬 넘어섰다면 남경도 그보단 작더라도 비슷한 규모로 추론이 가능하고, 그 정도 규모라면 소설의 설정이 억지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한양의 경우는 조선초 10~20만명 수준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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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0 문원
    작성일
    10.04.01 14:23
    No. 15

    실제 남경이 얼만한든
    소설송의 배경은 가운데 시장을 하나둔 도시내의 사건들이죠.
    그 시장에 남부맹 정파맹 상인들이 오목조목 다 몰려있고.
    4대세가라고 해봐야 1시진 이내 거리에 있고.
    정파맹과 남부맹 중간지점도 저녁에 술먹고 놀면서 천천히 왔다갔다
    할수있는 몇시진이내 지역에 분포되 있죠..
    중간에 보면 밤새 술퍼먹다가..태구내 집에 엎어다 주고 바로 옆이 정파맹지역이죠 ㅡㅡ 바로 옆동네란 소리지
    무슨 서울 10배의 배경이 아니란 겁니다.
    난징 전체가 아니라 그 최 중심가에서 벌어지는 이권다툼이란 소리죠..
    많이 봐줘야 청량리파 여의도파 수준의 범위도 안된다는거죠.
    거기에 초반에 내용에 강북을 먹었네 머네 하는 내용까지 나오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밝혀지는 내용보면 그냥 작은 도읍에서 고만고만한
    작은 문파들이 지들끼리 연합하고 남북무림 어쩌구하는 꼴이란 말이죠.
    거기에 꼭 남궁세가니 모용세가니..정파맹이니 이런 거창한 이름을 넣는거 자체가 좀 우습더군요.
    거기다가 그 시장의 배경이란게 주인공이 도적때로 활동하던 바로 그시장이란것을 보면 참 작은 배경이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주죠..
    관군에게도 잡힐 정도의 작은 도적무리가 윗분말씀처럼 엄청난 정보력과 실력과 배경을 가진것으로 후반에 묘사되는것도 참 웃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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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야율황
    작성일
    10.04.01 19:32
    No. 16

    별도 이분은 연재중단마공을 너무 자주 펼쳐서 조금 짜증이 납니다.
    검은 여우 완결편은 언제 나올까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1 21:28
    No. 17

    문원님//제가 댓글을 단 것이 남경 자체를 작다고 한 본문 내용 때문이었습니다만, 글의 세세한 내용과 연관시킨다면 읽은지 워낙 오래됐기에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전체인구 대비 무림인의 비율이 1%일지, 0.001%일지, 남궁세가 인원이 100명 규모일지, 1000명 규모일지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설정의 문제이지 개연성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싶군요. 실제 남궁세가나 정파맹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추가로 므흣한 장면이 두세번 정도 나왔던 것으로 얼핏 기억되는데, 문원님 댓글로는 섹스 장면이 부지기수라는 표현을 하셨더군요. 각 권마다 서너번씩이라도 나왔던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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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7 안타까움
    작성일
    10.04.01 21:59
    No. 18

    코끼리손님이 배경의 좁음을 언급하신것은 거창한 단체명에비해 좁은 구역안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것을 지적하신건데, 그것에 대고 남경은 실제 좁지 않다 라고 말씀하시는건 그저 '시비'로 밖에 안보입니다.

    댓글 서두 부분에 적힌 글을 보아하니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것 같은데 논리를 벗어난 글을 자제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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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04.01 22:22
    No. 19

    한성부가 10-20만이라고 하는데 그당시의 한양이 서울이 된것은 맞지만 한양=서울은 아닙니다.
    <a href=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Seoul_map_18c.jpg
    target=_blank>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Seoul_map_18c.jpg
    </a>
    한성부의 지도로 성북,중구와 주변 3-4개구의 일부를 포함한 현재 서울 중심부의 극히 일부입니다.(1/10도 안되죠)
    동쪽의 낙타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그 터전으로서, 성 밖의 일부 지역도 관할했지만, 원칙적으로 성 안의 구역만을 한양이라 했고요.
    한양과 비교해보면 제가 서너배라고 묘사한것도 여유를 잡고 한거죠.

    수정하는 과정에서 다툼에 대해서 지적해주신 윗분의 댓글이 위로올라가 버렸네요. 일단 적었던 글이니 이것까지는 올리고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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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04.01 22:36
    No. 20

    성벽이내로 제한한적 없고 성벽안이 아니었을까 하고 한번 예상해 본겁니다.
    앞에서도 그냥 여담형식으로 이야기했다고 적었는데 계속 걸고넘어지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성벽은 현재도 존재합니다.
    성벽의 길이는 총 34km로 정원형이라고 해도 면적은 80-90제곱키로미터?
    서너배 하더라도 서울 절반정도밖에 안되고요.
    예상해서 적은게 아니고 조사해보고 적은겁니다.

    그리고 그림자 무사의 시대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에도 적었듯이 명대에 40만-50만정도의 인구였고 부성급시인 현재에도 인구는 600만정도, 농업인구가 그 절반을 넘어섭니다. 개봉이 역사책에 적힐정도로 특이한 케이스인거지 과거 중국에 100만을 넘어서는 현재의 메트로폴리스급 대도시들이 넘쳤던게 아닙니다.
    하물며 서울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죠.

    제가 명확한 면적이나 당시 사회를 묘사할수 없는 이상 이거다 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인구 40만의 도시가(책에 농지를 걸고 싸웠다는 소리는 없지 않나요?) 서울같은 메가로폴리스로 묘사되는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렵다고 보이네요. 기껏해야 현재의 지방도시 수준이겠죠.
    (현재 남경시는 거의 충청북도만한 넓이인데 설사100만이라고 해도 흩어놓으면 도시 흉내라도 낼수 있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1 22:52
    No. 21

    오늘만님//코끼리손님이 얼마전에 작가들을 폄훼하는 글을 감상란에 올려서 문제가 됐었습니다(지금은 삭제하고 없습니다). 거기서 제가 글을 섞진 않았지만 상당히 보기 안좋았었습니다. 그래서 지적한 부분이고, 코끼리손님 본문에 남경을 작은 것으로 적어놨기에 거기에 반박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감정에 집어 넣을 이유도 없고(솔직히 그런 글 보면 눈쌀 지푸리는 정도이지 흥분하거나 열받거나 할 일도 아니죠), 근거를 들어 반박한 것인데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납득할 수 없네요.

    소봉님//주장을 적어놓고, ssenja2780님의 정확한 자료 글 다음에 여담이었습니다하면 반박하면 안되는 것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도시급들이 넘쳤던 것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입니다만, 남경은 같은 송의 도읍지였고, 개봉에 버금갈 만큼 컸던 도시이니 논거로 사용할 수는 없을듯 합니다. 서로 다른 주장으로 글을 섞는 걸 안좋아하시는듯 하니 저도 소봉님하고는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소봉
    작성일
    10.04.02 00:17
    No. 22

    ssenja2780님의 자료는 개봉에 관한건데 대체 남경에 관한 제 자료는 무시하고 맘에드는 주장이 나왔다고 그걸만 주장하시는 쪽이 전 더 이해가 안갑니다. 근거가 없어서 믿기지 않는다면 최소한 출처를 대달라는 정도의 요청은 하시고 다른 자료를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제시한 수치는 무시하고 마음에 드셨는지 개봉이야기만을 반복해서 주장하시는건 이해가 안가네요.
    거기다 ssenja2780님의 글은 제의견에 대한 반박글도 아니고 묘님의 개봉묘사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제가 성내가 아닐수 있더라도 범위를 넓히더라도 서울정도는 안된다고 적은건 바로 밑에 달린 성밖에도 '생활권이 있지않을까요'에 대해서 그럴수도 있다고 인정한 글입니다.

    <a href=http://geography.about.com/library/weekly/aa011201a.htm
    target=_blank>http://geography.about.com/library/weekly/aa011201a.htm
    </a>
    아래쪽에 Nanking(난징의 오타입니다.)으로 찾아보시면 1358년의 기록에 487000이란 숫자를 보실수 있을겁니다.

    적어도 당시 난징의 인구와 난징성벽의크기, 현재 난징의 특별성에 대해 지적한걸로 명확한 크기는 지적하지 못하더라도 날고기는 세가들이 탐낼정도의 거대한 도시는 아니라는 최소한의 근거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놈들이 농지를 가지고 싸웠다면 별개겠지만 분명 소설중에서는 시가를 가지고 싸웠고 그 옹호의견으로 난징이 서울의 10배크기라는 지적은 단순히 땅의 크기가 아닌 거대도시라는 뜻으로 이야기하신걸로 받아들였고요.
    제가 무리한 주장을 한걸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뭐 명대에 인구 40만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당시로서는 중국 최대의 도시인건 맞습니다만 실질적인 시가지는 난징성벽 정도의 범위 아니었을까요.(명확한 자료는 못찾아서.;;)
    처음 단 댓글에 있던걸 복사한겁니다.
    저로서는 주장이 아니고 추측성발언을 한번 해본겁니다만... 주장이라고 읽히셨다면 제 잘못이겠죠. 다음부터는 더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2 00:22
    No. 23

    소봉님//22,23,24번으로 댓글 다셨을 때보다는 한결 정리되어 보기 좋네요.
    저도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애초에 제가 올린 댓글은 본문 내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남경을 저잣거리 하나 끼고 있는 조그만 곳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2) 그리고 성벽 내로 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소봉님 글이 처음 올라왔고, 3) 제가 생활권은 성벽 안팎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4) 묘님의 성벽 안에만 주거지가 있다는 사실과 틀린 글이 올라왔고(이분 잠수 타신 건가요?), 5) ssenja님이 개봉을 예로 들어 정정해주셨지요. 6) 그리고, 다시 소봉님이 주변 생활권을 포함하더라도 몇배 정도이지 서울과 비견될만한 크기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인구는 4,50만 안팎입니다. 그런데 소봉님이 말씀하신 면적은 역시 소봉님의 추론입니다. 인구는 근거가 있지만 면적은 근거가 없는 소봉님의 추론이지요.

    길디 깁니다만, 소봉님 댓글20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구 600만에 지금도 남경은 서울의 열배 면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구밀도는 그때보다 훨씬 높아졌겠지만요. 제가 말한 서울의 열배 면적은 당연히 지금의 남경 크기이지 그때의 정확한 크기는 아닙니다. 자료에도 없는 걸 제가 어떻게 주장하겠습니까. 하지만 어슷비슷하게 가거나 작아도 1/10단위는 되지 않겠습니까?
    소봉님은 도성벽 내로 남경을 제한하시는듯 한데 도성벽 자체가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규모이긴 하나 그렇게 되면 남경의 인구밀도가 제곱킬로미터당 5000명을 넘어 지금의 의정부시(아파트로 빽빽하죠)를 능가하는 오류가 생깁니다.

    제가 글을 올린 것은 코끼리손님한테 엿먹어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고정관념의 잣대로 작가의 설정을 제한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글을 올린 것입니다. 잘못됐다고 지적한 두 가지 오류(공간,천재)가 사실 작가의 설정 영역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여담으로 소봉님의 올려주신 싸이트에 보면 개봉이 남경보다 인구가 작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만큼 사료가 부족하고 부정확하다는 얘기고, 반대로 그만큼 작가의 설정의 폭이 클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주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2 00:25
    No. 24

    수정이 안되니 불편하군요.
    '길디 깁니다만' -> 제 댓글이 길어져 보기 불편합니다만,
    '엿먹어기 위해서도' -> 엿먹이기 위해서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맥주병
    작성일
    10.04.02 00:29
    No. 25

    코끼리님에 대해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있으시면
    정담란이나 토론마당에 요구하시면 되겠죠.
    아니면 싸움이 났던 그 글에서 싸우시면 될일입니다.
    싸움난 사람에 대해 비난하는글을 그 사람이 쓰는 글마다 쓰면
    비평란은 논쟁했던 사람들끼리 연장전 벌이는 판이 되겠군요.

    그리고 송유근 학생의 예를 드시던데
    주인공이 유생으로서 5살에 관직에 나갔다는 설정이라면 모를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성격의 천재성이 아닌듯 싶은데요.
    그리고 송유근 학생은 주위의 전폭적 지지가 뒷받침되어있죠
    코끼리손님이 쓰신것처럼 이 소설 주인공은 고아에 파락호인데
    머리가 뛰어날뿐만 아니라 통찰력에 현실적 감각까지 뛰어난게
    말이되나요?

    솔직히 말해서 반박해보려고 무리한 예를 들었다고밖에 안보이네요
    소설적인 허구로서 이정도는 용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나물님말처럼 말이된다고 우길정도는 아닌듯 하네요.

    그리고 남경의 규모와 대역가능성에 대한
    코끼리님의 지적도 타당해보이는군요.

    어쨌든..
    논쟁과는 별개로 자기 작품 마무리도 짓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작가로 불러줄 가치도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가 작품에 대해서는 말이 곱게 안나오네요

    찬성: 1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 ssenja
    작성일
    10.04.02 00:50
    No. 26

    음... 주인공인 인물의 성격이나 자질, 능력의 범위를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 기초해서 설정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실...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문제가 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아주 거슬린다고 느끼는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다른 글타래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너무 오랫동안 무협소설을 읽다보니,
    (1975년부터 읽었습니다. ㅋ)
    웬만한 건 '그래 그건 그렇다치고...'하면서 넘겨주는,
    상당히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특정 시기에 실재했던
    남경이라는 도시의 구체적인 규모나 성격에 비추어
    소설의 설정이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도 뭐... '그래! 작가가 설정한 무협소설 속의 남경은
    그런 모습이라 치자'하면서
    그냥 일단 인정하고 읽어주는 거지요...ㅎㅎ


    따라서 이 문제(남경의 도시 규모와 성격)에 관한
    제 의견을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 문제로 인해 대화하시는 위의 여러분께서도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하면서
    넘겨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다만, 소설에서 그 이야기 줄거리의
    구체적인 구성의 정합성이나 흐름의 개연성을
    면밀히 알아보고 평가하는 것이야 뭐...
    열정을 가진 독자라면 당연히 품게되는 일입니다만....

    사실 저는 중국사에 관해서 다소 지식이 있는 편입니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중국사에 관한 상식에 비추어 판단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읽어내기 어려운 작품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하면서
    그냥저냥 넘어가면서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 ㅎㅎ

    저는 무협소설을 읽는 취미를 가졌다는 것은
    초로의 입구에 서 있는 제 인생에서
    하나의 큰 축복과 행운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문원
    작성일
    10.04.02 02:49
    No. 27

    나물님/ 7권 전체를 다해서 서너번이라구요.?
    각 권마다 3-4번은 나왔냐구 물으셨는데
    간단한 성적 묘사나 성애 장면까지 하면 30-40페이지 마다 한번씩은 나옵니다. 주변에 여주든 부여주든 시녀든 남애집 유부녀든 치마만 둘른 여성이면 일단 다 건들일 정도로 거의 발정난 개처럼 현실보다 과하게 성에 집착하게 나옵니다.
    오죽하면 일본도을 제압하는거 조차 성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묘사되니 말을 다했죠.초반 관계가 없는 우희조차 남성의 성기를 잡거나.굵기가 어떻다는등 성적 묘사가 다분합니다. 양아버지와 시녀를 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약혼녀는 여기 저기 성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챕터의 제목은 여자의 절정에 이른 대사일정도죠..
    이정도면 부지기수라고 표현돼도 되는거 아닌지요
    이렇게 성애장면이 자주 나왔던건 구무협에서나 보았지 최근 본 무협중에선
    가장 많다고 생각이드네요..아 얼마전 논란이 컸던 설봉님 작품도 하나있긴했군요.
    그리고 시장을 중심으로한 소설의 배경은 맹까지 구성할 정도의 무림 최고 문파들의 무대치고 상당히 협소함을 말하기 위함인데
    실제 남경의 크기가 얼마이니 이런 사족은 아무 소용없는 글 인듯 하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2 08:49
    No. 28

    맥주병님//제 댓글에서 놓치신 부분이 있습니다.

    아니면 싸움이 났던 그 글에서 싸우시면 될일입니다. -> 코끼리손님이 삭제했다고 제 댓글에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코끼리손님과 왜 싸웁니까? 무성의한 부분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코끼리손님이 비평란 요 아래도 올린 글이 있는데 거기서도 다른 분이 이 사항을 지적했습니다만 모르쇠 피하시더군요.

    코끼리님에 대해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있으시면
    정담란이나 토론마당에 요구하시면 되겠죠. -> 무슨 말인지 주체가 파악이 안되는군요??

    천재 설정에 대해 말하자면, 송유근 학생이 처음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고군분투하다 어느 정도 인정받으면서 그때부터 지원을 받게 된 것이고, 현당 역시 대역 수준은 해야되기에 당연이 파락호로서는 받을 수 없는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또한 그 이상의 것도 지혜를 써서 받아내는 것으로 글에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맥주병님은 글에 불만이 있으신 듯 한데, 의견을 나누고자 함이 아니라 거의 말싸움 하자는 식이라 부담스럽군요. 비평란에 올라오는 글들 보면 '우긴다', '트집잡는다'식의 표현이 간간히 보이는데 이런 글 나오면 더 이상 토론이 아니라 말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답니다. 전 이만 퇴장할테니 저를 지칭한 댓글을 사절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원님//오래되서 기억이 희미했는데 그랬군요. 잘 알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2 09:05
    No. 29

    ssenja7280님//연세가 많으시군요. 전 이제 불혹이긴 합니다만, 무협을 읽는 것이 저에게도 큰 재미입니다. 어릴 때 읽던 동화책 대신이랄까요. 동화책은 이제 안재밌더군요. ㅎㅎㅎ

    어제 보니 여의도에 개나리가 피어있더군요. 자유로에 신록이 서서히 올라올 준비도 하고 있구요. 행복한 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묘로링
    작성일
    10.04.02 22:26
    No. 30

    일단 위쪽 글은 틀렸습니다. 제가 다시보고 좌절했습니다. 다만 북송 초라고 굳이 언급한 이유는 조광윤이 초기에 개봉 성 밖에서 살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을 교수님에게 들은 기억 때문입니다.
    일단 몇가지 점에서 반박을 하겠습니다.

    야시의 번성이나 객관 등의 모습은 상업적인 번성을 의미하지만 인구적 번성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송대에 인구의 실질적인 증가 요인은 기아의 해결에 새로운 점성도라는 쌀이 도입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진종년간 강소절강의 가뭄 후에 복건성에서 강소절강으로 점성도가 이동한 이후에 점차적으로 대표적인 품종으로 확대되며, 그 이전 시기에서의 인구 증가는 그다지 당대이전 시기와 차이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동인구가 생기는 것은 왕조 성립이 어느정도 안정이 된 이후의 발전상입니다. 동경몽화록이나 청명상하도나 모두 북송 말 시기의 번영을 그린 작품으로 960에서 1000년대 초의 시기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정확한 자료를 찾아볼까하고 논문 3~4개정도를 검토하고 보고 있지만 언급되지가 않는군요.

    제가 쓴 내용을 다시 보니 틀린건 확실하군요. 교생 때문에 피곤한데 쓸데없이 아는 것 나왔다고 달려 들었다가 갑자기 정신줄이 끊겼나봅니다.

    개봉성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송대 支郡의 성격에 대한 내용만으로 충분히 틀렸네요. 그리고 성 밖의 거주기록으로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도 600년대 양만춘의 청야작전을 기술한 사료 등에서도 언급되는게 있군요.

    잘못된 내용을 검토없이 사실인양 써놓은 것 반성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글을 지적해주신 ssenja7280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ssenja
    작성일
    10.04.03 01:19
    No. 31

    음... 猫님의 관활하신 대응에 감사드립니다.

    애초에 제가 문제로 삼게 된 처음의 猫님 글에서는
    '송초'라고만 표현하셔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후대인 남송과 구별되는.
    북송 시기를 전반적으로 지칭하는.
    그런 의미의 표현으로도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어 보였고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猫님께서 새롭게 댓글을 올리신 것을 보면
    애초에 말씀하시는 '송초'라는 것이
    정확하게는 '북송 초기'를 지칭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건대,
    사실 송(宋,960~1279)을 지칭할 때에는
    가급적 북송과 남송을 구별해서 불러주는 것이
    불필요한 혼란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猫님의 댓글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송대의 점성도의 보급을 포함한 농업 생산력의 발전이야말로,
    그 이전 시기의 근 1,000여 년동안 명멸했던 왕조들이
    전성기에 보였던 900만호~1000만호의 호구 수와
    5,000만~6,000만명 정도의 추산 인구의 범위를 넘어서서,
    비약적인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猫님의 설명에 동의합니다.

    송대에는 이러한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기본 동력으로 해서
    농업 노동의 결박으로부터 이탈된
    많은 사회 노동력이
    농업외 다른 분야의 전문화된 제조 산업과
    무역, 상업, 기타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관련 산업의 규모가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해서
    아주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면서 발전하고 융성했던 시기이고,
    이러한 획기적인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해서
    근대적인 도시와 상당히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대도시의 발전과 번영을 가져왔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위에 언급하신
    "야시의 번성이나 객관 등의 모습은 상업적인 번성을 의미하지만
    인구적 번성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이 부분 말입니다.

    저는 당시의 도시 기능에 있어서
    전통적인 기능인 정치적, 행정적, 군사적 기능 뿐만 아니라,
    경제적 기능의 각종 측면이 이전 시기에 비해 획기적으로 강화되고
    그런 경제적인 기능 강화와 맞물려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는 현상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사회 생산력의 증대와 인구의 증가,
    사회적 분업의 확산, 더 나아가 그 이전 시기에 비할 바 없는
    보다 고도화된 상업 유통 기능의 발전 등,
    전반적인 당시 사회의 변동과 팽창 발전 현상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레테에
    작성일
    10.04.03 01:36
    No. 32

    음 이책은 근래에 읽은 책이라서 기억이 좀 나는데..
    자질은..주인공잡은 감옥 간수가 주인공이 만약 다른시대에 태어났다면 왕이될 인재였다고 주인공자질을 암시해줬었고..
    2번은..알기때문에 현당 필요없을 때 수하들 몰살당합니다
    3번은.4대세가중 1곳에서 미리준비된 인원으로 채운거라고 본문에나오죠 거기가주가 문당이랑 사형사제관계
    5번은 공감합니다. 성격쓰레기되서 스케일많이 작아졌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4.03 10:48
    No. 33

    묘님//댓글 정정 감사드립니다. 점성도란 쌀이 있었다는 것은 덕분에 배우고 갑니다.^^
    그리고 농업 발달 뒤의 상업 번성이라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 아닌가 합니다. 전공자이신듯 해서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부담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조선의 경우도 조선 후기 이앙법, 골뿌림법 등으로 농업이 번성하면서 뒤이어 상공업이 크게 번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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