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만 하다 직접 글을 쓰다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 중의 하나가 죽음의 처리 문제였습니다.
무협물을 보면
깐죽거리다 죽는 놈, 겁내다 죽는 놈,
시범 케이스에 걸려 죽는 놈,
괜히 옆에 있다 죽는 놈, 줄 잘 못 서서 죽는 놈 등등..
작품에 따라 틀리겠지만 보통 한 권에서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죽어나가죠.
문제는 대부분이 주인공에 의해서 죽는 편이라는 거죠.
그래서 성격이 좀 다중 인격적인 주인공이 나오면
(이게 요즘 한 물 가기는 했습니다만)
그 무협물은 거의 피의 향연을 벌이고는 하죠.
근데 제가 무협을 쓰다 보니
사람을 못 죽이겠더군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세상의 한 개체로서 살고 있는 나란 존재는
무협의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의 손짓 한번에 죽어 나자빠지는
이름없는 무명소졸에 가깝더군요.
힘도 없고,
능력이 있어도 오를 수 있는 계단은 좁고
사람으로서 최소한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는 어깨에 쌓여 있고...
그러다 보니
감정 이입이 주인공으로 되는 게 아니라
주인공에서 당하는 사람에게 많이 되다 보니
가급적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피하게 되더군요.
무협은 환상이라는 명제와,
현실을 살아가는 실존의 문제가
글을 쓰면서 자꾸 충돌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눈 딱 감고 모조리 쓸어버릴까,
어차리 뻥인데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현실의 반영인데 하는 생각도 들고..
어차피 무협이 뻥인데
현실에서 못 죽인 놈들 통쾌하게 죽이면,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얼마나 좋겠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돌아 보면, 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데
주인공 하나 때문에 '켁!' 이거 하나 세상에 남기고
죽어가는 사람들도 애처롭습니다.
주인공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면,
그들도 당연히 살아가는 이유가 있겠지요.
여러분은 주인공이십니까?
아니면 주인공의 비웃음 속에 죽어가는
별 볼 일 없는 무명의 소졸입니까?
전 무명의 소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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