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북성 무한의 뒷골목, 무자로.
천애고아인 소량은 밑으로 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주먹밥 한 덩이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무자로에서 아이들에겐 하루 하루가 지옥이요, 한 끼 한 끼가 전쟁이었다.
하늘도 그들을 딱하게 여긴 것일까. 어느 날, 천애고아인 아이들에게 자신이 너희들의 할머니라는 한 노파가 홀연히 그들의 집에 나타난다.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난데없이 나타나 "내가 늬들 할미다." 라고 하는 노파의 말은 겨울에 털 난 개구리를 봤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어떠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구부러진 허리, 지독한 광동어 사투리, 기막힌 요리 솜씨, 그리고 마르지 않는 사랑.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시는 것 같긴 하지만, 이제 저분은 우리 할머니다.
그런데 가만 보자니 우리 할머니, 범상치가 않다. 평범한 노파인 줄 알았는데, 칼 좀 쓴다는 강도를 싸리빗자루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고, 도끼로 찍어도 안 넘어갈 나무를 밀자 뿌리째로 넘겨 버린다. 저건 어디 가서 만년설삼 처먹고 자신 보고 해 보라고 해도 못 할 일이다.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
"내 손주를 한 번만 더 걷어차면 넌 고자리에서 죽는 겨. 창자를 뽑아다가 목을 졸라버릴 눔. 넌 내 손주한티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두 뒤지게 맞아야 혀. 고 발로 내 손주 귀한 몸 한 번만 더 쳐보더라고. 그라믄 맞는 수준이 아니라 참말로 조사뻐릴테니께."
"조사뻐려?"
"북경어로 말하자면 뒈진다는 뜻이여. 자, 말이 너무 길었구먼. 인자 늰 맞아야 혀."
피비린내 나는 비정강호의 이야기가 아닌, 훈훈한 가족애가 묻어나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이야기.
지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할머니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백두옹전 (죽은자의꽃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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